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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의 살림, 역사의 살림
기록의 살림, 역사의 살림
  • 김정근 / 서평위원·부산대
  • 승인 2001.03.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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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수상]
김정근 / 서평위원·부산대

언론에 한번씩 떠오르는 화두가 있다. 우리 사회의 기록물 관리가 허술하다는 것이다. 최근에 한 주간지는 ‘기록이 없는 망각의 제국’이라는 제목 밑에 특집을 꾸며 싣고 있다. 보도대로라면 우리 사회는 그야말로 건망증의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언론의 관심은 줄곧 정부 쪽에 쏠려 있다. 주로 행정부, 그 가운데서도 중앙부처의 기록물 관리가 한심하기 짝이 없다는 것이다. 기록, 정리, 보존 시스템이 총체적 마비 상태라는 것이다. 기록물관리법(1999)이 제정되기 이전은 그만 두고라도 그 이후에도 여전히 문제가 많다는 것이다. 도무지 시행이 제대로 안 된다는 것이다.
지방도 마찬가지이다. 언론의 과녁이 되지 않고 있다는 것 뿐, 실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것은 최근에 나온 한 연구가 생생하게 밝히고 있는 점이기도 하다. 기록물 관리에 있어 입법부와 사법부 쪽의 사정은 얼마나 다른지 궁금해진다. 차제에 입법, 행정, 사법 쪽을 두루 점검하는 종합보고서가 하나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한편 관점에 따라서는 넓은 의미에서 정부 기록물만이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민간 기록물의 영역이 있다, 절, 교회, 언론사, 기업, 비정부기구 등의 기록물은 어떤가. 그 것들은 제대로 관리되고 있는가. 그래서 현재와 미래의 요구에 대비되고 있는가.
특이한 경험을 가진 개인의 기록 역시 중요하다. 따라서 이것도 어디선가 수집되고 관리돼야 한다. 예를 들면 개인의 기록과 관련해 이례적으로 90년대이래 괄목할만한 성과를 보이고 있는 영역이 있다. 민간의 기구가 주축이 되어 구증(oral testimony)으로 자료를 모아 가고 있는 경우이다. 바로 한국정신대연구소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가 공동으로 펼치고 있는 사업으로 일본군위안부 경험을 가진 할머니들의 증언을 채집하는 일이다. 관계자들의 끈질긴 노력의 결과 마침내 입을 연 할머니들이 여럿이다. 증언의 내용은 ‘강제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 1,2,3,4 권에 실려 있으며 이 사업은 계속될 것이라고 한다. ‘중국으로 끌려간 조선인 군위안부들’이 따로 한 권 나와 있다. 이 증언집들은 자칫 망각될 뻔했던 우리 민족의 기억의 한 대목을 회복시켜 냄으로써 일거에 역사적 싸움에 힘을 실어 준 경우이다.
정부와 민간의 기록을 지속적으로 제대로 관리해 갈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답은 우선 기본이 서야 한다는 것이다. 중앙과 지역에 국비와 지방비로 운영되는 기록관(archives)을 활성화시켜야 한다. 그 바탕 위에 다양한 민간 그룹의 참여 공간이 마련되어야 한다. 이 틀이 기록의 살림이자 역사의 살림을 꾸려 나가도록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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