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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재난이 일상이 되는 시대, 기본소득은 바로 지금의 문제다
[BOOK] 재난이 일상이 되는 시대, 기본소득은 바로 지금의 문제다
  • 장성환
  • 승인 2020.04.17 10: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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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말한다_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지금 바로 기본소득 | 금민 지음 | 동아시아 | 436쪽

기본소득, 포퓰리즘이나 사회주의적 발상에 불과할까?

인터넷 활동은 우리가 하는데
왜 빅데이터로 얻은 수익은
구글, 아마존이 다 가져갈까?

최근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한 경제 위기로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가 정치권 안팎을 비롯해 사회 각 분야에서 분분하다. 하지만 기본소득의 문제는 코로나 위기 이전에도 끊임없이 제기돼 온 오래된 이슈다. 때맞춰 기본소득의 정당성에서부터 기본소득이 가져올 세상의 변화까지 기본소득 도입 운동의 선구자 등을 다룬 책이 나왔다.

세계 제일의 경제 대국 미국에서는 1주일에 660만 명, 2주 간 무려 1,000만 명에 달하는 실업자가 발생했다. 재난은 전 세계를 함께 덮쳐오지만, 결코 누구에게나 공평하지는 않다. 코로나 팬데믹이 특수한 상황이기 때문이 아니다. 이것은 그저 앞으로 닥칠 미래를 살짝 앞당겨 보여주었을 뿐이다. AI와 자동화의 보급으로 인한 일자리의 상실은 앞으로 심화되면 되었지, 결코 완화되지는 않을 것이다. 앞으로의 사회에서 경제 재난은 이제 일상이 될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는 지금까지의 체제에서 벗어난 새로운 대안이 필요하다. 저자는 "일시적인 구호책을 넘어, 지속적으로 ‘사람다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기본소득을 꺼내들었을 때, 가장 흔한 반론은 “끔찍한 복지 포퓰리즘”이다. 우리는 이제껏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고 배워왔다. 흥미롭게도 현재 자본주의와 노동주의를 옹호하기 위해 쓰이는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라는 말은 과거에 마르크스로 대표되는 공산주의 진영의 구호이기도 했다. 모든 이윤의 원천은 노동이라고 본 마르크스다운 표어다. 하지만 이제 이 오랜 금언(金言)은 금언(禁言)이 되어야 한다. 이제는 불과 수백 년 동안 만들어진 노동에 대한 허황된 신화에서 벗어날 때다.

공산주의자들이 주장하던 노동의 신성성은 그 후 자본가들에 의해 선택적으로 활용됐다. 그들이 보기에 기본소득은 복지 포퓰리즘이며, 일하는 이와 일하지 않는 이를 역차별하는 악독한 발상이다. 그런데 그들은 “동일노동 동일대가”라는 당위적인 명제 뒤에 숨어, 우리가 “동일한 소유” 관계에 놓여있지 않다는 현실을 외면한다. “각자에게 각자가 기여한 만큼의 몫이 돌아가야 한다”라는 말은 분배 정의 차원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이 말을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 이들의 논리에는, 결여된 고리가 있다. 허버트 사이먼이 말한 것처럼, 현세대 소득의 90%는 이전 세대가 축적한 지식을 활용한 결과다. 이를 현세대 개개인의 기여가 아닌, 지금껏 인류가 축적해온 공여의 몫이라고 한다면 그 몫은 마땅히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져야 한다. 모두의 몫을 모두에게 나누어주고 나서야, 각자의 몫을 올바르게 분배할 수 있다. 건전한 분배는 사회의 성장 동력을 만들고, 다시 한 번 경제에 활기를 불어넣는다. 좌우를 막론하고 지금 기본소득을 이야기하는 것은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하버드대학의 경제학과 교수 그레고리 맨큐, 미국의 제44대 대통령 버락 오바마, 스페이스X와 테슬라의 창립자이자 천재 경영인인 일론 머스크, 세계경제포럼(WEF)의 창설자 클라우스 슈바프, 전 세계 굴지의 테크(Tech) 기업 구글의 전 CEO 에릭 슈미트. 이들은 모두 현대 자본주의의 최전선에 선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들이 가진 또 다른 공통점은 무엇일까? 어떤 식으로든 기본소득 제도에 대한 찬성 혹은 지지를 표방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들이 지향하는 기본소득의 형태가 모두 같은 것은 아니다. 기본소득의 지급범위, 지기본소득에 대해서는 지급수준, 지급방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가능성이 병존하기 때문에, 아직도 많은 연구와 정책적 실험을 하고 있는 단계다. 그럼에도 지금 인류에게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것은 결코 부정할 수 없는 공통적인 인식이다.

저자가 시선을 돌리는 곳은 미래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닥쳐오고, 어째서 그 미래에 기본소득이 필요해질까? 기본소득은 우리의 앞날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그가 생각하기에 기본소득은 단순한 복지 제도의 일환이 아니다. 물론 일시적인 포퓰리즘 정책은 더더욱 아니다. 기본소득은 복지와 경제를 바라보는 아예 새로운 관점이다. 소유와 인간의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21세기의 새로운 사회계약이다. 시대는 변화하고, 우리는 시대의 흐름과 그 요구에 따라 새로운 사회계약을 맺어야 한다. 우리를 경제 위기로부터 구해줄 계약을 말이다. 이 책은 그 목표를 위하여, 현존하는 사회 체제를 향해 던지는 돌덩이다. 작은 파문이 겹쳐져 번져나가듯, 한 데 모인 목소리가 새로운 미래를 만들어나갈 수 있기를 바라며 내뱉는 아우성이다.

장성환 기자 gijahwan90@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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