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0-08-07 10:50 (금)
[저자가 말하다] 나의 개화기 외국인 기록의 번역 작업은 '동굴의 우상 탈출기'였다
[저자가 말하다] 나의 개화기 외국인 기록의 번역 작업은 '동굴의 우상 탈출기'였다
  • 교수신문
  • 승인 2020.04.21 09: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 개화기 연구사는 한말외국인 기록 전집의 출판 전과 후로 구분해야 한다"

'한말 외국인 기록' 시리즈(전 23권)는 전 건국대학교 석좌교수 신복룡이 1973년부터 시작하여 27년에 걸쳐 번역·주석한 노작이다. 저자들은 흔히 알려진 하멜(H. Hamel)로부터 여행가인 드레이크(H. Drake)에 이르는 22명의 저자가 격동의 조선조 말기와 일제 시대에 조선을 방문해 목격한 기록이다. 저자에 따라서 관심과 주제가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그들이 기록한 여행기, 문화사, 정치외교사, 선교사, 의학사의 일차 사료들이며, 저자가 직접 그린 그림과 그가 촬영했거나 수집한 사진들은 개화기 조선의 문명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번에 시대적 요망에 맞게 새로운 체제와 편집으로 11책으로 전면 개정판을 냈다. 신복룡 교수가 직접 교수신문에 시리즈에 관한 생각을 기고했다.

사진 : 집문당 제공

원시시대에 혈거(穴居) 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동굴의 입구가 동쪽인 줄 알고 살았다. 해가 동에서 트니 밝은 입구가 동쪽인 줄 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인즉, 동굴의 입구는 대체로 남쪽으로 나 있었다. 남향이어야 햇살을 받아 더 따듯했기 때문이다. 베이컨(F. Bacon)은 이런 현상을 “동굴의 우상”(idola specus)라 불렀다. 나는 왠지 한국사학계를 보면 그 말이 떠오른다. 그 우상은 중화사상(中華思想)이라는 백내장이었다. 나는 그 안과(眼科) 수술을 해보고 싶었다.

나는 《한말외국인기록》 전 23권을 번역하는 데 27년(1973-2000)이 걸렸다. 처음부터 그렇게 오래, 그렇게 많이 번역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 고생을 할 줄 알았더라면 당초에 엄두를 내지도 못했을 것이다. 처음, 내가 국회도서관에서 번역사로 학비를 벌던 1968년도에 첫권 대한제국 멸망사를 발견했을 때 몸이 짜릿했다. 이런 책이 왜 한국사학계에서는 알려지지도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서 멋모르고, 그저 좋은 책 하나 번역해보자는 작은 소망에서 시작한 것이 그리 커졌을 뿐이다.

번역은 그리 어렵지 않았으나, 주석 작업에서 번역만큼의 시간이 걸렸다. 한국과 중국과 일본의 생활상을 한자로 써서 중국 또는 일본 발음으로 읽은 서양인들이 그것을 다시 영어로 쓰고, 다시 프랑스어나 독일어로 옮기다 보니 지명과 인명 등의 고유 명사의 본디 발음을 찾기가 어려웠다. 어떤 주석은 한 달 걸린 것도 있다. 30년 동안 거쳐 간 내 조교들이 고생 많이 했다. 그래도 오류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더 훌륭한 후학들이 나를 밟고 지나가면서 해야 할 작업이다.

내가 영어 몇 줄 안다고 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한국사학계는 남의 기록 특히 서양 기록을 소홀하게 여겼다. 한국사는 을지문덕이나 연개소문, 또는 《삼국사기》나 《삼국유사》, 《조선왕조실록》만으로 풀 수 없는 부분이 있다. “남의 눈”이 필요하고, 조금 비켜서서 보는 조감(鳥瞰)이 필요하고, 내가 못 본 허물과 내가 모르던 우수성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거기에는 자랑스러움도 있지만 부끄러운 부분도 많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서양인의 눈에 보였던 “어두운 역사”(dark history)를 외면했다.

이 전집은 하멜(H. Hamel)로부터 여행가인 드레이크(H. Drake)에 이르는 22명의 저자가 격동의 조선조 말기와 일제 시대에 한국을 방문하여 목격한 기록이다. 필자에 따라서 관심과 주제가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그들이 기록한 여행기, 문화사, 정치외교사, 선교사(宣敎史), 의학사, 민속, 예술의 일차 사료들이며, 필자가 직접 그린 그림과 그가 촬영했거나 수집한 사진들은 개화기 조선의 문명을 이해하는 데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이번에 시대적 요망에 맞게 새로운 체제와 편집으로 23권/11책으로 전면 개정판을 냈다. 그러나 한국개화기 사료 발굴이 여기에서 멈춰서는 안 된다. 내 능력이 부족하여 하지 못한 러시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문서의 후속 작업이 필요하다. 나는 지난 27년 동안 이 작업을 하면서 재주가 없었는지, 줄이 없었는지, 밖으로부터 일전 한 푼 받은 적이 없다. 이제는 국가에서 후학들을 지원해 주기 바란다. 나는 못나서 그렇게 살았지만 내 후학들은 궁핍하지 않게 공부하는 시대가 오기 바란다. 그리고 번역도 연구 실적으로 쳐주기 바란다.

그동안 전집을 내면서 경영의 어려움 때문이든, 다른 이유 때문이든 내가 거쳐 가야 했던 박영사, 탐구당, 평민사, 그리고 마지막으로 엄청난 제작비를 투입하여 이 일을 마쳐준 집문당에게 마음의 빚이 크다. 뒷날 한국사학계가 그 이름을 기억해줄 것이다. 전화와 편지로 도와준 이름 모를 동학(同學)과 독자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지치고 힘들었던 마지막 순간에 어느 서평회에서 처음 본 한 젊은 학자가 들려준 한마디가 나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한국 개화기 연구사(硏究史)는 이 한말외국인기록 전집의 출판 전과 후로 그 시대를 구분해야 한다.”

신복룡
전 건국대학교 석좌교수, 한국정치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