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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형의 씨네로그]사회적 거리와 고립의 시대정신
[정재형의 씨네로그]사회적 거리와 고립의 시대정신
  • 교수신문
  • 승인 2020.04.16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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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염이란 뜻의 영화 <컨테이젼 Contagion>(2011)은 한 사람 주인공을 중심으로 하지 않는 특이한 구조의 영화다. 굳이 주인공이라고 말한다면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의 부장인데 그의 비중이 그리 크지 않다. 영화는 홍콩을 거쳐 미국으로 들어온 회사 간부 직원으로부터 시작한다. 홍콩, 영국, 동경 등 여러 나라 감염자들의 동태에서 시작한 영화는 그들과 연관된 사람들로 이동한다. 아내와 아들을 졸지에 잃고 남은 딸 하나를 애지중지 간수하는 가장의 애끓는 사연이 이어진다. 질본의 부장은 요원을 파견하여 감염의 동선을 파악하는데 요원마저 감염되는 속수무책의 사태를 맞는다. 3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정부는 갈피를 잡지 못한다. 감염자, 사망자가 늘어날수록 국민들은 패닉 상태에 빠지고 생필품 사재기 및 절도, 폭동이 횡행한다. 

문제를 떠안은 질본은 감염을 확산시키지 않기 위해 지역을 봉쇄해야 하는데 정부, 지자체는 다가올 명절이나 국민들이 느낄 공포감을 우려해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하면서 갈등을 빚는다. 정부는 정확한 원인을 대라고 질본에 추궁하지만 신종 바이러스는 그 원인을 파악하기 어렵다. 정부의 의도는 그런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통해 자신들의 정치적 입장을 공고히 하려는 계산밖에 없다. 국민의 건강을 담보로 위험한 정치적 게임에만 열중한다.  

감독이 강조하는 주제는 재난의 원인이 결국 인재라는 것이다. 처음 발생은 천재지변이지만 진행과정에서 인재로 변한다. 영화의 엔딩에는 의미심장한 장면이 있다. 최초 희생자인 미국 여자가 왜 변종 바이러스에 접촉되었는가를 설명하는 영상이다. 자연을 파괴하면서 건설을 했던 회사의 인과응보적인 과정. 변종 바이러스는 자연재해만은 아니다. 문명 파괴에서 발생한 변종 바이러스에 대처하지 못하는 인간의 무력함을 그린 이 영화는 질본과 의학전문가, 정부, 평범한 시민들의 입장을 각각 따로 그린다. 

인간과 바이러스의 사투는 어쩌면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되었고 인류가 멸종되는 날까지 계속되는 전쟁일지 모른다. 지금 전 세계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최근의 변종 바이러스다.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기이한 감기를 통해 인류는 새로운 통과제의를 거치는 셈이다. 최근 들어 인간은 두 개의 전혀 경험하지 못한 세계를 체험하는 중이다. 하나는 인간보다 더 일을 잘하는 AI 로봇의 세계인 4차 산업혁명의 시대로 접어들어 인간의 무력함과 일터에서 밀려나는 공포감을 겪는 중이다. 다른 하나가 신종 코로나 재난이다. 서로 간의 접촉을 못하게 만드는 코로나19는 어떤 인간도 믿지 말고 자신만을 믿으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장기간의 비접촉과 격리를 경험하면서 사회적 동물인 줄로만 알았던 인간이 새삼 독립적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인간은 관계라는 알에서 깨어나 독립자존이라는 새로운 우주를 항해 중이다. 사회적 거리와 고립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종교적으로 종말론이나 하늘이 내린 재앙으로 쉽게 치부할 수만은 없다. 인간의 영적 진화라는 측면으로 본다면 물질에서 정신으로 점점 이동하는 징후가 아닐까? 물극필반(物極必反)의 원리로 물질이 극하여 반대인 정신으로 옮겨가는 징후가 아닐까?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어떻게 일시에 교실혁명을 이루고 재택근무로 일을 하는 시스템이 가능해질 수 있었겠나. 명상과 독서를 통해 내가 누구이고 어디로 가고 있는가를 지금처럼 진지하게 생각했던 때가 있었던가. 코로나19로 인해 공기까지 맑아졌다. 이제 남은 일은 실직한 사람들과 무너진 기업들을 다시 추스르는 일이다. 바닥까지 내려앉은 물질의 성채를 적절한 수준으로 보수하는 일이다. 

정재형 동국대 영화영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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