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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적 거리를 상실한 과거의 재현
비평적 거리를 상실한 과거의 재현
  • 이은혜 기자
  • 승인 2003.11.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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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계 풍경: 국립중앙박물관 ‘조선 성리학의 세계’ 展

▲송시열 초상 ©
조선 5백년 역사를 꿰뚫자면, 언제나 중심사상으로 지목되는 게 성리학이다. 세종과 정조의 통치사상이나, 퇴계와 율곡의 이기론, 송시열과 허목으로 대표되는 서인과 남인 간 논쟁 등이 비추는 건 성리학의 일관된 지배이념으로서의 면모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조선 성리학의 세계: 사유와 실천’(2003.10.21~11.30)展은 성리학의 장구한 역사를 2백40점의 유물로 보여준다. 의 詩書畵들은 학문과 인격의 완숙미를 뽐내고 있다. 이재와 서직수의 초상화는 강한 묵필로 선비의 몸에 배인 성리학의 예법을 전형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퇴계의 묘비 탁본과 율곡의 서간은 일상에 녹아들어간 성리학의 발자취를 찾고 있으며, 왕이 젊은 선비들을 모아놓고 가르치는 경연제도 관련 유품에서는 덕치국가의 한 면모를 엿보는 듯하다. 요컨대 성리학의 도덕, 명분, 의리를 왕과 선비들은 충실히 지켜냈다는 설명이다.

▲이재 초상 ©

하지만 정치적 당파싸움으로 이어지고, 형식 규범으로 변질돼 간 성리학 규범들이 완전한 체계일 순 없다. 순수하지 못한 강직한 결기가 고집스런 이념적 독단과 정치적 배타성으로 흐르기도 했다. 전시는 이런 부분을 과연 얼마나 배려했을까. 기획자는 "오늘날의 시각에서 조선 성리학의 역사를 객관적으로 조명하고자 했다"라며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너무 좋은 측면, 완결성을 갖춘 큰 가지들 위주로 흐름을 정리했다는 느낌이 먼저 다가온다. 물론 전시 후반부는 조선중화주의의 경직됨을 짚어내고 편파적 시각에서 벗어나려 한다. 그렇지만 성리학의 변질과정을 읽으려면 관람자가 시대흐름에 따라 유품들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할 것이다.

 

예컨대 강직한 이재의 초상과 달리 송시열과 주세붕의 초상화는 뭔가 과장된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쩌면 그 당시 화가들도 이미 조선 지식인들에 대한 비평적 거리를 확보했는지 모른다.

고야가 19세기 초 카를로스 4세 가족을 우스꽝스럽게 그림으로써 정치에 대한 예술의 거리를 보여준 바 있거니와, 위선적 권력에 대한 예술가의 고발은 늘 그렇게 애매한 방식으로 남겨졌다.

▲길재의 초서 ©

▲허목의 필체 ©

 

 

 

 

 

 

 

 

 

 

 

'미수서첩'에 쓰여진 허목의 붓글씨와 전각을 베낀 정약용의 유묵은 전시대의 모범을 벗어나려는 예술적 시도와 주자의 해석을 넘어 원시한자로 돌아가려는 실학의 정신을 기운차게 연출하고 있어 눈길을 끌었다.             

이은혜 기자 thirtee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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