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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인터뷰]『의사대란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몸과마음 刊) 펴낸 이종찬 아주대 교수
[저자 인터뷰]『의사대란이후 무엇을 할 것인가』(몸과마음 刊) 펴낸 이종찬 아주대 교수
  • 이세영 기자
  • 승인 2001.03.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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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03-21 11:39:48

“질병은 언어의 일종이며, 몸은 존재의 표현이며, 醫는 정치적 실천이다” 이종찬 교수(아주대·의학)가 화두처럼 제시하고 있는 브라이언 터너의 말이다. 러시아 혁명가 레닌의 책을 연상시키는 이 책의 제목은 일종의 ‘투쟁지침서’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이 교수가 목표로 하고 있는 투쟁은, 이른바 ‘醫權쟁취’를 위한 것이 아니다. 그는 이 책에서 우리나라 의료계를 지배하고 있는 ‘담론과 그 실천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최근의 “‘근대’와 ‘동아시아’에 관한 연구성과들을 토대”로 하여 한국의 ‘醫 지형도’를 그려내고 있다.

“한국의료를 지배하고 있는 서양의학은 일제가 심어놓은 식민주의적 요소를 청산하지 못했습니다. 19세기 후반은 서구에서 파스퇴르와 코흐의 세균설이 확립되던 시기로, ‘과학적 의학’의 태동기에 해당합니다. 그때는 홉스봄이 말한 대로, ‘자본의 시대’이기도 하지요. 제국주의 시기와 제3세계의 전통의학이 서구의 ‘과학적 의학’에 패배하는 시기는 일치합니다. 이 때 형성된 ‘제국주의 의학’이 한국의 의료를 여전히 지배하고 있습니다.”

‘과학적 의학’은 그가 말한 ‘생의학적 패러다임’의 다른 이름이다. 이 패러다임은 서구의학의 지배적인 패러다임이자 한국의료를 지배하는 담론이기도 하다. 서구의 의료선교사들은 한 손에는 성경, 한 손에는 실험실을 가지고 있었다. 이 교수는 “서구 사회에서 가장 선진화된 독일의 ‘실험실 의학’을 받아들인 일제는 한국을 실험대상으로 삼아 ‘과학적 의학’을 심어놓았다”고 풀이한다. 일제는 식민지 한국에 위생시스템을 구축하려 했고, 위생경찰(medical police)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는 것. 그는 ‘제국주의 의학’의 지배속에서 의사들은 문화제국주의의 충실한 재현자가 되고 있다고 본다. 그들이 모국어가 아닌 영어를 사용하는 것은 단적인 예다.

“과학적 의학이 형성된 시기에 처음으로 병원이 자본의 투자대상이 되기 시작합니다. 모든 병원을 위생화하고, 자본증식의 공간으로 바라보기 시작한 거지요. 문제는 이러한 ‘근대적 병원’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을 의료화(medicalization)한다는 것이지요. ‘전문화된 의료지식’으로 무장한 의사는 ‘생체권력(bio-power)’를 형성하여 환자를 지배하게 됩니다.”

이 교수가 보기에 한국은 의학에 대한 믿음이 과도하게 퍼져 있는 곳이다. 세계적인 항생제 투여율과 주사제 처방률, 조금만 아파도 병원을 찾는 한국인의 습성은 이를 잘 보여준다. 이 교수는 이런 현실이 의사들 탓만이 아니라고 말한다. 이 교수가 보기에, 모두들 “몸과 마음의 주체가 자신이라는 것을 포기”하고 있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자기 몸을 스스로 타자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가 생의학적 패러다임을 규명하기 위해 끌어들이고 있는 논리는 푸코의 지식-권력론이다. 지식-권력론을 설명하기 위해 푸코가 ‘임상의학’을 기원을 탐색했듯 이 교수는 역사적, 사회적 분석을 토대로 한국의료의 담론지형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의료현실을 벗어나기 위해 그가 대안으로 내세우는 것은 전통의학과 보건의료개혁이다. 이 교수는 “서양의학을 하는 사람들은 오리엔탈리즘에 빠져 있고, 한의학을 하는 사람들은 옥시덴탈리즘에 빠져” 있다고 본다. 하지만, 전통의학이나 민속의학은 자기 스스로 몸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안적인 의료체계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의료개혁논의에 대해서는 ‘의료개혁’보다, 건강을 증진시킬 수 있는 ‘보건개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입장이다. 그는 “식품영양, 사회안전망, 노동, 복지, 국토난개발의 규제”와 같은 보건환경의 개혁이 의료문제 해결에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세영 기자 sylee@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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