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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 코로나’ 섬뜩한 두 얼굴
‘포스트 코로나’ 섬뜩한 두 얼굴
  • 교수신문
  • 승인 2020.04.03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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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19 초기 때만 해도 일상이 이렇게까지 바뀌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아무리 초연결사회라고 하지만. 대학교에서만 동영상 강의를 하는가 했더니 초·중·고교까지 온라인 수업으로 바꾼단다. 코로나19가 처음 시작됐던 중국도 마찬가지다. 초·중·고·대 가리지 않고 이미 교실은 인터넷으로 옮겨갔다. 그런데 웃픈 일들이 줄을 잇고 있다. 

  웨이보(중국판 트위터)에서는 최근 ‘정말 힘든 의대생 인터넷 수업’이 화제였다. 조회수가 1억 가까이 됐다. 채팅사이트 QQ를 통해 진행한 장쑤성 한 대학교의 산부인과 강의였는데 교수가 여성 생식기를 해부한 그림을 올린 뒤 불과 몇 초 뒤에 삭제됐다. 교수는 인터넷 검열 기관의 소행이라는 걸 알고는 “내 강의 내용 대부분이 검열 기준으로는 외설에 해당되는데 어쩌란 말이냐”고 하소연했다. 

  허난성 한 고교에서 ‘중국고대정치제도사’를 가르치는 교사는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에 털어놓았다. 이 과목에서는 ‘독재’, ‘군주제’, ‘관료주의’ 등 용어가 등장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런 걸 소셜 미디어를 통해 학생들에게 보내는 건 불가능하다. 정치적으로 민감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국가주의가 앞서는 통제 사회의 모습이다.  

  ‘포스트 코로나’가 벌써부터 관심사로 대두됐다. 국가와 개인 간 관계에서부터 세계 질서에 이르기까지. 이런 주제들은 중국을 빼놓고는 논의조차 할 수 없게 됐다. 먼저 코로나19 전파를 막기 위해 도입한 국가감시체제부터 보자. 중국이 초기 대응에 실패한 뒤 취한 조치의 핵심은 가혹한 통제와 감시와 봉쇄였다. 전국적으로 주거지역별 자체 감시망을 가동했다. 여기에는 중국공산당 기층 조직 간부들의 역할이 컸다. 

  당국은 드론까지 동원했다. 젊은 연인이 데이트하는 것도 금방 잡아냈다. 드론이 이들에게 경고 방송하는 동영상은 웨이보에서 엄청 주목받았다. “거기 분홍 옷 입은 젊은 여성, 지금 뭐하는 거예요? 남자 친구와 연애하는 거 다 봤어요. 마스크도 안 하고. 지금 같은 비상시에.” 나는 이걸 본 뒤 베이징에 있는 중국 친구와 웨이신(위챗)으로 얘기를 나눴다. “좀 살벌하다.” “자유도 살아있어야 누릴 수 있는 거 아니냐. 중국이 사회주의를 하니까 재난 앞에서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거다.” 곧잘 중국 정부를 비판하던 그였지만 이번엔 달랐다. 

  각국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코로나 와중에 예외 없이 개인을 감시하고 있다. 일부 중화권 매체와 미국 학자들은 개방성과 투명성을 보인 한국과 전체주의 국가 중국을 비교했다. 이런 중국이 지금 ‘중국 모델’ 수출하느라 바쁘다. 국가감시체제, 국가동원체제로 대표되는 모델이다. 실제로 유럽 일부 국가 등 중국식 봉쇄를 채택한 나라가 꽤 된다. 미국이 제 앞가림도 못하면서 유럽연합(EU) 동맹국들마저 팽개친 틈을 놓치지 않았다. 미국은 EU발 미국행 여행을 금지하면서 상호 협의는 물론 사전 통보조차 하지 않았다.  

  중국의 행보는 빠르고 치밀하고 전략적이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연일 전화와 전문을 통해 각국 정상들과 접촉면을 넓힌다. 관영 매체들은 코로나 퇴치를 둘러싼 중국의 공헌에 외국 정상들이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고 보도한다. 중국 제도의 우월성 찬양도 빠뜨리지 않는다. 미국과는 ‘중국 책임론’을 둘러싼 비난전을 이어가면서 유럽과는 코로나 퇴치를 위한 공동전선을 구축한다. 

  중국이 의료지원대 파견, 의료물자 지원에다 정보와 경험 공유 등으로 연결을 강화한 나라는 모든 대륙에 걸쳐 있다. 이럴 땐 ‘인류운명공동체’를 꼭 내세운다. 세계질서 주도국을 꿈꾸는 것이다. 포린 어페어즈는 ‘코로나가 세계질서 바꿀 수도’류의 글을 싣고 있다. 이제 코로나 퇴치 자체만 우리의 과제가 아니게 됐다. 코로나 예방 앞세워 문을 걸어 잠근 국가주의, 개인에 대한 감시를 정당화한 국가감시체제는 어떻게 하나? 나아가 움직이는 세계질서에는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정원교 성균관대 초빙교수
정원교 성균관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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