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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52)]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52)]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교수신문
  • 승인 2020.04.01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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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옥과 승강기
사람을 멀리해야 하는 현실
가까이 가는 것 싫어하는 느낌 역력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이름이
인간적 거리두기로 바뀔까 두려워

몇 년 전 타계한 신영복 선생의 삶은 기구했다. 어쩌면 기구한 삶이라는 표현은 그에게 맞지 않는다. 기구(崎嶇)란 산길이 꼬불꼬불하고 험한 것을 뜻한다. 그러나 그의 인생살이가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극단의 삶을 살았지, 말 그대로 그저 꼬불꼬불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고집스러운 장기수, 그 삶을 정리한 베스트셀러, 그리고는 영예로운 교수의 삶이니 고생 끝에 낙이 온 것이니 험난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가치도 지켰고 명예도 얻었다. 어머니 마음 고생시킨 것은 회한으로 남겠지만, 결과적으로 선생은 한국 사회에 기여한 바가 크다.  

먼저, 우리 사회가 그런 비전향 장기수를 용인할 정도가 되었다는 것이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같은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다니 말이다. 소수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사회가 된 것이다. 선생과는 다른 예지만, 비슷한 시절에 북으로 돌려보낸 사람도 있었다. 소수도 아니고 극소수니 그럴 수 있다고 하지만, 그건 국체(國體)의 문제라서 민감하다. 만일 비전향 포로를 전범으로 본다면 보는 시각에 따라 판단이 다를 수 있다. 전범재판의 형기가 다 끝나기 전에 사면해 주는 것이니만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것이다. 

다음, 새로운 한글 서예체를 보급했다. 글쎄, 엉터리 서예학회 이사인 나에게 추사 이후의 명필을 꼽으라 한다면 신영복 체를 꼽지 않을까 싶다. 독자적인 연습으로 자신만의 붓글씨 경지를 이루었다. 그의 서예 공부 과정을 좀 더 살펴보아야겠지만 개성만점의 멋진 한글을 국민에게 소개했다는 것만으로도 그의 공헌은 충분히 인정받는다. 나는 그를 알기보다 그의 글씨를 먼저 보았는데 놀라웠다. 이제는 보편화된 한글 서예체가 되었다. 소주병에 글씨를 써서 실망했는데, 그 돈을 자기를 받아준 대학에 기부했다는 말을 듣고는 안심한 적이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보았냐고 하면 다들 보았다고 한다. 나도 열심히 어머니에게 엽서 쓴 것 말고는 잘 기억나지 않는데 하나만큼은 감동적이어서 그 부분을 물어본다. ‘감방에서 여름이 싫게요, 겨울이 싫게요?’ 신영복을 추종하는 사람들조차 이 문제는 자주 틀린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줄곧 물어보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추운 겨울이 싫지’라고 답하지만, 선생의 입장은 달랐다. 다닥다닥 붙어 살다보니 더운 여름은 사람이 옆에 붙는 것이 싫지만, 겨울은 춥다보니 사람이 가까이 오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까닭에서 그는 여름이 싫다고 말한다. 

참으로 인간적인 감성이다. 사람이 좋아야 하는데 싫어지는 여름보다 어찌 되었던 사람이 좋아지는 겨울이 낫다니 말이다. 그때야 나는 ‘사색’이라는 책 제목을 인정했다. 그전까지만 해도 사색은 웬 사색이라는 불평이 남아있었다. 

그는 층간 소음도 그렇게 해결했단다. 윗집 아이에게 놀이터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줬더니 (그래서 조용해졌다가 아니라) 뛰노는 얼굴이 떠올라서 참을만하더라는 것이다. 귀엽다. 그 아이도 귀엽지만 선생의 마음 고쳐먹는 것이 더 귀엽다. 

2020년 코로나 시국, 아니 마스크 시국에서 내가 참을 수 없는 것은 바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과 통한다. 사람이 싫어지다니, 사람과 멀리해야 한다니 참으로 속상하다. 내가 가까이 가는 것을 싫어하는 느낌이 역력하다. 나도 엘리베이터가 난감한 공간이 되었음을 자주 느낀다. 그녀의 머리감은 냄새를 좋던 싫던 즐겨야했던 출근시간이 그립다. 

정부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라는 이름으로 모임을 자제하라고 한다. 이 말이 앞으로 ‘인간적 거리두기’로 바뀔 것만 같아 두렵다. 인간(人間)이란 말은 본래 사회를 가리켰다. 속상한 인간세(人間世)다.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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