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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후속세대의시선】패러다임의 전환
【학문후속세대의시선】패러다임의 전환
  • 교수신문
  • 승인 2020.03.26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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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부터 전자기기에 관심이 유독 많아서 관련된 과학자가 되리라 생각했었다. 고등학교 시절 목표가 바뀌어 의사가 되었으나, 이후에도 전자기기에 대한 관심은 끝나지 않았다. 의사가 되고, 다시 성형안과 의사가 되어, 환자를 보는 동안에도 관심은 지속되었고, 안구를 포함한 눈꺼풀을 암으로 제거한 환자들이 콤플렉스에 시달리며, 눈을 가리고 다니는 것을 마주하다 문득 든 생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이전에 시도들과는 완전하게 다른 방향이라 방향성을 설명하면 동료들이 응원해 주었다. 문제는 어떻게 구현할지였다. 운이 좋게 좋은 협력자를 만나서 연구를 시작하게 되었다.

기존에 내가 생각해오던 의사이자 연구자는 연구실을 꾸리고, 기초의학과 연관된 연구를 하는 의사였다. 뭔가 복잡하고, 어렵고, 존경스러운 모습의 연구자. 하지만 나의 연구자로의 시작은 좀 달랐다. 아이디어를 이미지화하였고, 공유하였고, 특허를 출원했다. 협력자도 기초 의학자나 다른 임상 의사가 아닌, 공학 박사였다.

연구를 하는 과정이 달라서인지 신선하고 스스로도 더 즐겁게 시작을 했다. 다만 혼자 하는 일이 아니어서 속도를 내기가 어려웠다. 지금껏 많은 일을 혼자 하는데 익숙해서인지, 팀을 꾸려 일을 하는 것은 즐거운 반면, 신경 써야 할 부분도 많고, 조율해야 하는 일도 많았다. 부딪히고 시행착오를 겪는 것만으로도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일이었고, 마음 한편으로는 조급한 마음도 들었다.

그러던 중 외국 학회를 참가하였고, 내가 하는 연구와 비슷한 연구를 하는 연구자들의 발표가 있었다. 그들의 연구는 기존의 보형물을 3D 프린터로 만들어내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새로운 방식이었고 기대되는 연구였다. 하지만 내 연구는 보형물을 만드는 것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접근하는 것이라 완전히 다른 방향이라 생각이 들었고, 2~3년 후 연구가 성공적으로 끝나서 새로운 결과를 가지고 발표를 하게 될 나를 상상하며 다시 힘이 났다.

패러다임의 전환. 완전히 실패로 돌아갈 수도 있고, 성공하여 매우 만족스러운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남들과 다른 방향으로 생각하여 시작한 연구이고, 심사위원들에게 좋게 어필하여 운 좋게 연구 재단 지원으로 연구를 하고 있다. 

의사인 동시에 연구자로 살며, 남들과 다른 연구를 하려 발버둥치고 있으나, 많은 한계에 부딪힌다. 새로운 연구를 하려면, 틀을 깨야 하고,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한다. 이러한 시도는 매일매일 같은 일상을 살고 있는 의사에게는 매우 가슴 뛰는 일이지만, 많은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한계를 극복하려 많은 사람을 만나고, 도움을 청하고, 조금씩 해결하고 있지만, 매일 같은 일상을 살며, 최소한의 시간 동안 최대한의 양적, 질적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그러한 양적, 질적인 성장을 눈으로 확인하던 나로서는, 연구에 있어서는 마음이 조급해지고 초조해짐을 느낀다.

원고 청탁을 받고, 연구자로 살아온 길지 않은 기간을 되돌아보며, 고민을 하던 중, 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된 환자를 또 한 번 마주하게 되었다. 눈을 포함한 모든 조직을 제거해야 하고, 다른 선택은 주어지지 않는 환자에게 나는 어떠한 도움을 줄 수 있을까.

그들의 슬픔, 고통을 눈앞에서 다시 한 번 경험하고, 나의 역할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비록 눈을 제거한다는 큰 고통을 없앨 수 있는 획기적인 치료는 결국 암을 정복하는 것 이외에는 없을 것이고, 이는 많은 연구자들이 노력하고 있으나 단시간에 해결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이에 수술 후 안면 장애를 지니고 살게 될 환자에게 내 연구가 새로운 희망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성공적인 연구 결과를 위해 더욱 노력하리라 다짐한다.

 

한지상 
강북삼성병원에서 안과 임상부교수로 재직 중으로, 성형안과 의사로 일하고 있다. 현재 안와내용물제거술 후 안면 장애로 고통을 겪고 있는 환자들을 위한, 안경형 보장구 개발 연구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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