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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준 교수의 내가 본 함석헌 28
김용준 교수의 내가 본 함석헌 28
  • 김용준 교수
  • 승인 2003.10.31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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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석헌, 귀국후 공화당 정부에 선전포고

함선생님이 한국에 도착하신 날은 1963년 6월 23일이었다.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산 힘은 늘 선비에 있었습니다. 고구려의 조의선인(皁衣仙人), 신라의 화랑 공부할 때는 산에 있고, 정치를 맡을 땐 서울에 있으며, 노닐 때에는 바다에 있고, 가르칠 때는 마을에 있어 때로는 온달같이 어리숙하고 때로는 처용같이 의젓하며 때로는 검도령같이 씩씩하나 그 진을 찾고 선을 닦고 미를 드러냄에 있어서는 다를 것이 없는 선비였습니다.

조선 부여에 있어서는 말할 것도 없고, 어지러운 고려시대에서도 그 사회의 속 힘은 그들게 있어서 12도(徒)가 있었으며, 두문동(杜門洞)이 있었고, 쭈구러지고 찌그러진 이조시대에서도 그 역사의 알짬은 그들에게 유지되어서 사육신(死六臣)으로 됐고 실학 산림파(山林波)로 됐습니다. 봄에 나타나면 3․1 운동이요, 여름에 나타나면 4․19며 남에 가며는 광주학생사건이요, 북에 가면 신의주학생사건입니다. 그 모두가 다 선비의 일인데 그 모두가 다 하늘 땅 꿰뚫는 정신의 발로가 아닌 것이 없습니다. 참입니다. 밝음입니다. 곧이입니다. 날쌤입니다.>

(전집 14:151)


앞에서 이미 소개한 바와 같이 그 무엇보다도 항상 마음에 그리던 간디의 땅 인도여행까지 취소하고 돌아온 나라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귀국한지 나흘 후인 6월 28일에 쓴 안병무박사에게 보낸 편지(전집 18:72)에 의하면

<오는 날 쌀값이 4천원이라더니 익일 5천원, 그 익일 6천원이랍니다. 이틀간 금방 민요(民擾)라도 터질 듯 했습니다. 쌀배급소 앞에서 부인들이, “이놈들 어떻게 하는거냐…” 소리를 하고 그 후 쌀값 통제를 늦춘다 했고, 미국이 쌀 주마 한다고 자꾸 보도하고 험악한 기세는 다소 완화된 듯하나 큰일입니다. 민중이 정부를 신용 아니합니다. 박씨(朴氏)는 전적으로 신용을 상실했습니다.>

이 글에서 당시의 나라 사정이 어떠했는가를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선생님 댁에는 문이 불이 나게 사람들이 찾아오고 오죽하면 “나는 이렇게까지 민(民)이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줄을 몰랐습니다.” 라고까지 당시를 표현했을까. 답답한 함선생님은 신문사에 뜻있는 사람들의 모임을 건의도 해보곤 하다가 드디어는 7월 초순에 조선일보에 「삼천만 앞에 울음으로 부르짖는다」라는 제목으로 7회에 걸쳐 연재로 글을 싣게 된다. 선생님의 글을 직접 살펴 보자. <일은 드디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조선일보에서 쓰자해서 「삼천만 앞에 울음으로 부르짖는다」라는 제목으로 7회 연재했지요. 1회는 중단했다 다시 냈는데 그 글로 적지 않은 센세이션이 일어났고 22일(7월)에 사상계사 주최로 강연했는데 예상외로 반응이 켰습니다. 나는 이제 결심했습니다. 극한투쟁을 하기로. 비폭력의 국민운동을 일으켜 민정을 수립하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나는 정치가 아니지만 여론을 일으키도록 하자는 것입니다. > (전집 18:73)

「삼천만 앞에 울음으로 부르짖는다」라는 글은 일곱 번으로 나누어 진다. 첫 번째는 <씨알 중에 지극히 작은 씨알의 하나인 이 사람은 부끄럼과 두려움을 무릅쓰고 감히 3천만 겨레와 이 나라 정치를 쓰고 맡아하겠다고 나선 박정희님 이하의 재건최고회의의 여러분과 민족문화의 지도자인 지식인과 나라의 울타리인 군인과 겨레의 내일을 맡을 학생 여러분 앞에 눈물로 부르짖습니다.>로 시작되는 총론적인 글이고 두 번째가 <박정희님에게> 세 번째가 <정치인에게> 네 번째가 <지식인들에게> 다섯 번째가 <군인들에게> 여섯 번째가 <학생들에게>그리고 마지막회가 <민중에게>로 되어있다.

위에 소개한 글은 <학생들에게>주는 글의 일부이다. 이 글에서 지금부터 꼭 40년 전의 글이지만 지금 학생들 아니 대학 교수들이 읽어도 우리 5천년 역사를 꿰뚫는 선생님의 애끓는 부르짖음과 그의 투철한 철학을 한 눈에 다 볼 수 있는 명문이라고 생각된다.

이렇게 선생님의 소위 공생활은 시작되지만 선생님께서 주신 편지에 있는 말씀대로 나는 1965년 8월에 귀국할 때까지 미국 텍사스에서 소위 학위과정 이수하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함선생님께서 정부에 분노를 느끼고 공화당 정부하고 싸우기로 결심을 새롭게 하셨다는 소위 <6.3 정국>이라고 일컫는 정치 사태는 서울 일원에 선포된 비상 계엄령으로 촉발된다. 서울대학교 구내에 계엄군이 기관총을 들여다 놓는 지성을 짓밟는 공화당 정권의 만행이 저질러지는 그 무렵에 나는 미국에서 박사논문 제출 자격시험에 합격하여 박사학위 논문 작성을 위한 유기합성(有機合成) 실험에 밤을 지새고 있었다.

  여기서 나의 학위 논문에 관해서 언급할 마음은 없다. 다만 자격시험이 지난 다음에는 영 화학 책이 읽어지지가 않았다. 식상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도서관에 가보았더니 1962년도에 영문으로 비로소 번역된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이라는 책이 있어 대출해다가 읽기 시작했다. 독어 실력이 영어에 거의 미치지 못한 처지였지만 영역을 읽느니 그래도 독일어로 읽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영문으로 <존재와 시간>을 읽는 것은 포기하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날 구내 서점에 나가 보았더니 불트만(Rudolt Bultmann) 이라는 분의 <예수 그리스도와 신화론>(Jesus Christ and Mythology)라는 얇은 책이 눈에 띄었다. 패이퍼 바운드로 일불 조금 남짓한 가격이었다. 이것이 나와 불트만의 만남이라면 만남이라고 말해야 할 것 같다. 백페이지도 못미치는 책이었지만 나에게는 하나의 놀램으로 다가왔다. 물론 이미 밝힌 바와 같이 모태신앙이요 수없이 목사의 설교를 들어 왔지만 불트만이라는 신학자가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었다. 지금까지 내가 믿어왔던 기독교와는 별세계처럼 느껴졌다. 음악으로 물으면 음악으로 응답이 오고 철학적으로 물으면 철학적으로 응답이 오는 것이 성경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불트만의 신학을 내가 이해하는 한에서 만이라도 장황하게 늘어 놓을 수도 없지만 요는 탈신화화(脫神話 Demetholization)라는 성경에 대한 새로운 접근은 나에게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이 작은 책자를 읽고 난 다음에 다시 구내서점에 나가 보았더니 <예수와 말씀>(Jesus and The Word)라는 책이 있어서 구입해와서 다 읽었다. 먼저번의 책은 처음부터 불트만이 영문으로 쓴 책이었지만 <예수와 말씀>은 독어로 쓴 <예수>(Jesus) 라는 책을 영어로 번역한 것이었다.

 불트만 자신이 고백하고 있듯이 자기는 하이데거에게서 영향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후에 알게 된 이야기이지만 소위 <실존주의 철학>에 입각한 기독교 경전 특히 신약성서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라고 말해서 대과는 없을 것 같다. 그래서 이 책도 열심히 읽고 난 다음에 또 구내서점에 나가 보았더니 더 이상은 불트만의 저서는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를 뒤져보았더니 <역사와 종말론>(History and Eschatology : The Presence of Eternity)라는 저서가 있어 이를 주문하여 이 책이 도착할 무렵 나의 학위논문도 완성되어서 소위 학위논문에 관한 구두시험(Final Defence)을 치뤘다. 역시 영어로 구두시험을 여러 교수들 앞에서 치룬다는 일은 외국인으로서는 겁나는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떻든 이 시험이 끝마치고 교단을 내려오는데 지도교수인 이스벨(Arthur F. Isbell) 박사가 다가오면서이라고 불러 주었을 때 나는 안도의 숨보다는 이제는 화학자로서 평생을 살아야만 하겠구나라는 야릇한 심정에 사로 잡혔던 일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이렇게 나의 미국 유학도 끝마치고 그때 이미 학위를 끝마치고 죤 홉킨스대학교에서 Postdoctorate Research Fellow로 있었던 누이 동생과 같이 귀국의 길에 올랐다. 귀국 길에 대륙횡단의 그레이하운드 버스 안에서 그리고 비행기 안에서 나는 볼트만의 <역사와 종말론>을 읽으면서 한국에 도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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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알 2003-11-07 06:26:14
1)더 이상은 불트만의 저서는 눈에 띄지 않았다. 그래서 ( )를 뒤져보았더니 <역사와 종말론>(History and Eschatology : The Presence of Eternity)라는 저서가 있어

2)지도교수인 이스벨(Arthur F. Isbell) 박사가 다가오면서 ( )이라고 불러 주었을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