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20 13:10 (토)
[김희철의 문화칼럼]거짓의 대가는 무엇일까요?
[김희철의 문화칼럼]거짓의 대가는 무엇일까요?
  • 교수신문
  • 승인 2020.03.24 1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 사회적·경제적 체르노빌 언제 터질지 몰라
지금 이 시간을 성찰과 변화의 기회로 삼아야
드라마 '체르노빌'의 한 장면.

드라마 시리즈물 <체르노빌>(2019) 리뷰

봄이 찾아왔건만 집 근처 초등학교는 절간처럼 조용하다. 일요일마다 주차장이 되곤 했던 교회 근처 도로도 몇 주째 한적하다. 초·중·고등학교와 대학들의 수업이 온라인 비대면 강의로 대체되고 있고 해고와 도산이라는 슬픈 소식이 잇따르고 있다. 그야말로 코로나19는 제3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것처럼 가공할 위력을 내뿜으며 사그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대공황을 막기 위해 나라마다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무서운 속도로 세상이 바뀌고 있음을 체감한다. 패권 국가 미국 중심의 자본주의 시스템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동맹국이었던 미국과 소련 사이에 대립 관계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양 국가를 중심으로 한 세력 사이에 냉전 구도가 만들어졌다. 이른바 이데올로기 전쟁,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차가운 대결(冷戰)이었지만 일본의 식민지에서 갓 벗어난 한국에서는 양 진영의 대리전 같은 열전(熱戰)이 터졌다. 한국전쟁으로 인한 사상자는 민간인 포함 약 450만 명이었다. 이후 베트남전이라는 또 하나의 대리 열전이 터져 수많은 학살이 자행되고 참전 군인들과 민간인들은 고엽제 후유증,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 등을 겪었다. 

냉전은 1990년대 들어 사회주의 국가들이 몰락하고 독일이 통일되면서 종지부를 찍었다. 사회주의권 국가들의 맏형 같았던 구 소련(현 러시아)이 왜 망하게 되었는지 많은 학자들이 연구했으나 그 이유를 어느 한 가지로 딱 잡아내기는 힘들 것이다. 자본주의의가 사회주의를 이긴 것이라고 떠든 사람도 많았고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을 목도하면서 절망에 빠진 사람도 많았다.  

작년 5월부터 5부작에 걸쳐 회원제 플랫폼을 통해 방영된 드라마 <체르노빌>은 1986년, 그러니까 우리나라에서 아시안 게임이 열렸던 해에 소비에트 연방의 우크라이나 지역 체르노빌 원전에서 터진 방사능 누출 사고를 극화한 것이다. 미국의 한 방송사에서 제작한 이 드라마 시리즈물은 충격적 장면들과 다큐멘터리적인 사실적 묘사로 작년에 많은 시청자들을 끌어들이며 주목을 받았다. 영화관 개봉이 아닌 회원제 플랫폼에서 방송되는 작품이 회자되는 경향은 앞으로 점차 확산될 전망이다. 미국뿐 아니라 한국 등 많은 국가의 미디어 환경이 급속히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방사능 누출로 인한 피해는 상상을 뛰어넘는다. 해당 지역의 모든 음식과 물을 영구적으로 먹을 수 없고 암 발병, 기형아 출생이 예상된다.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이 적어도 100년 이상 살아갈 수 없는 땅이 되는 것이다. 사고의 수습을 위해 수많은 인력이 투입된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의료진들이 대구로 달려간 것처럼 방사능의 누출을 막기 위해 과학자, 소방관, 군인, 광부 등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걸고 각자의 임무를 수행한다. 이들과 대조적으로 무능한 관료들과 파렴치한 인간들은 책임 회피와 변명으로 일관한다. 

<체르노빌>의 5부 마지막에는 다음과 같은 내레이션과 자막이 나오면서 실제 인물들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여준다. 

“과학자가 된다는 건 순진무구해지는 겁니다.
진실 탐색에 온 정신이 팔리는 바람에
진실이 드러나길 원하는 자들은 거의 없단 걸 미처 생각 못 하죠.
하지만 진실은 늘 있어요.
우리에게 보이든 안 보이든
눈을 가리든 안 가리든
진실은 우리의 필요나 욕구엔 관심 없죠.
우리 정부나, 이데올로기, 종교에도요.
진실은 늘 조용히 기다릴 겁니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체르노빌의 선물이죠.
한때 진실의 대가를 두려워했던 곳에서
이제 난 그저 물어볼 뿐입니다.
거짓의 대가는 무엇일까요?”

(중략) 

미하일 고르바초프는 1991년 해체 전까지 소련을 통치했다.
2006년에 그는 체르노빌의 노심 용해가 소련 붕괴의 진짜 원인일 수 있다고 썼다.
2017년에 체르노빌의 새 안전 격납 시설이 완공됐다.
건축 비용은 20억 달러에 달했다.
이 시설의 수명은 100년으로 설계됐다.
폭발 후 우크라이나와 벨라루스의 암 발생률이 빠르게 치솟았다.
가장 높은 발생률은 어린이들에게서 나타났다.
체르노빌의 희생자 수를 정확히 알 수는 없다.
추정되는 사망자 수는 4,000~93,000명이다.
소련의 공식적인 사망자 수는
1987년부터 그대로다.
31명.

고통 받고 희생한 모두를 기리며

드라마 '체르노빌'의 한 장면.

 

소련이 해체된 것은 미국 자본주의가 강해서가 아니었다. 소련 붕괴의 결정적 요인은 체르노빌 대참사와 관료주의였다. 체르노빌 사건 역시 관료주의가 빚어낸 참극이었다. 한국 사회는 과거에 비해 여러 분야에서 발전을 이루었지만 아직도 관료주의의 폐해가 많이 남아 있다. 무분별한 민영화 등으로 인해 공공성이 파괴된 부분도 많다. 코로나19 사태로 증명되듯 병원, 학교 등은 공공적 특성을 무시할 수 없다. 

아이들의 희망이 안정적인 공무원 아니면 건물주인 사회는 건강한 사회가 아니다. 부동산 투기로 거품이 형성된 서울의 고가 아파트, 공교육을 잡아먹을 정도로 비대하게 커진 사교육 시장, 못 사는 나라에 보내 버리는 건설 폐기물 등 온갖 쓰레기들.. 전염 바이러스에 국경이 아무 의미 없는 것처럼 거짓으로 가득 찬 삶들의 대가는 전 인류가 짊어지게 된다. 

팬데믹, 각국의 국경 봉쇄, 경제 마비 등 유례가 없었던 상황으로 전 세계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이 시간을 성찰과 변화의 시기로 만들지 못한다면 한국을 포함한 지구 곳곳의 사회적 경제적 체르노빌은 언제 터질지 모른다. 자본주의, 신자유주의, 기후변화와 환경에 신경 쓰지 않는 삶의 방식에 근본적 물음이 필요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