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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에서 소외받는 출판권자, 내 권리는 어디에?
법에서 소외받는 출판권자, 내 권리는 어디에?
  • 장성환
  • 승인 2020.03.20 11: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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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출판이 교육 경쟁력이다】 ④출판권자를 보호할 법 어디 없소

지난 몇십 년 동안 저작권법 저작자, 저작인접권자 중심으로 개정
출판권 존속기간 늘리는 등 출판자 위한 법과 제도 개선 나서야
제공=박익순 한국출판저작권연구소 소장

우리나라의 저작권과 지적재산권 보호 수준은 세계적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저작권 보호 정책을 펼친 결과 미국의 무역대표부가 제정하는 ‘지식재산권 침해 감시 대상국’에서 지난 2009년부터 2018년까지 10년 연속 제외됐다. 1957년 저작권법이 처음 제정된 이후 1986년과 2006년의 전부 개정을 포함해 몇 차례의 크고 작은 개정으로 저작권자와 저작인접권자(실연자, 음반제작자, 방송사업자, 데이터베이스 제작)의 권리는 계속해서 추가·강화돼 왔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출판권자의 권리는 철저히 무시됐다. 출판권자도 저작인접권자와 마찬가지로 저작물을 대중에게 전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저작권법에 출판권자를 배려하는 조항은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 1986년 개정에서 특약이 없는 경우 출판자의 발행 의무 기간과 출판권의 존속기간을 약간 늘린 게 전부다. 저작인접권은 저작물을 공중에 전달하는 데 있어 자본 투자 및 창의적인 기여를 한 자에게 부여하는 권리다. 그러한 의미에서 따졌을 때 음반사업자나 방송사업자 등 기존의 저작인접권자와 출판권자 사이에 차등을 둘 이유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지식·문화산업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저작자, 저작인접권자와 동반자적 관계에 있는 출판권자의 권리가 법적으로 균형 있게 보호되는 게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출판업자들은 그동안 우리나라가 정치적·경제적 목적으로 저작권 관련 국제조약에 가입하거나 미국·유럽연합 등과 자유무역협약을 체결하고 이행하기 위해 국내 저작권법에 수용하는 방식으로 추진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됐다고 지적한다. 이렇게 저작권법 개정에 출판계의 목소리가 누락되거나 제대로 반영되지 않다 보니 출판업계 관계자들은 의욕 상실에 빠질 수밖에 없게 됐다.

학술출판물은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받기 더욱 힘들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저작권법으로 보호되는 저작물은 문학·학술 또는 예술의 범위에 속하는 창작물이어야 한다. 여기서 창작물이란 저작권자 자신의 작품으로 남의 저작물을 베낀 게 아니라는 것을 전제로 한다. 또한 수준이 높아야 할 필요는 없지만 저작권법에 의해 보호를 받을 가치가 있을 정도로 최소한의 창작성이 있어야 한다는 의미를 가진다. 저작권법이 보호하는 것은 ‘문학이나 학술 또는 예술에 관한 사상·감정을 말·문자·음·색 등에 의해 구체적으로 외부에 표현하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이다. 따라서 표현돼 있는 내용, 즉 아이디어나 이론 등의 사상 및 감정 그 자체는 설사 그것이 창작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원칙적으로는 저작권법에서 정하는 저작권의 보호 대상이 되지 않는다. 특히 학술의 범위에 속하는 저작물의 경우 그 학술적인 내용은 만인에게 공통되는 것이고 누구라도 자유로운 이용이 허용돼야 하는 것으로서 그 저작권의 보호는 창작적인 표현 형식에 있지 학술적인 내용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판시돼 있다.

결국 침체돼 있는 출판업계가 다시 살아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가 뒷받침돼야 한다. 그러려면 저작권법이 출판권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강화하는 방향으로 개정되는 게 최선이다. 전문가들은 그 구체적인 방안 중 하나로 출판권의 존속기간을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박노일 대한출판문화협회 저작권 담당 상무이사는 “학술서적의 출간을 위해서는 다른 출판 분야에 비해 전문적인 지식의 콘텐츠를 개발하려는 노력과 인내가 더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장기적인 안목과 투자로 특정 소수만을 위한 전문적인 콘텐츠를 개발해야 하는 작업인데 출판권의 보장 기간이 단 3년으로 제한된다면 출판권자의 투자 의지를 저해하고 나아가 훌륭한 출판 콘텐츠 생산을 감소하게 하는 결과를 만들게 된다”며 “국민의 지적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활발한 학술출판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출판권의 존속기간을 최소한 5년 이상으로 늘려야 한다”라고 밝혔다.  

국제출판협회(IPA) 헤르만 스프라우트 전 회장은 ‘출판의 미래는 저작권 정책과 연결돼 있다’고 강조했다. 출판사가 아무리 노력해도 법과 제도가 따라주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디지털 복제 기술이 발달하면서 저작권법으로 어떻게 해볼 수 없는 상황까지 왔다. 개인별 디지털 복제는 복제권 침해가 아닌 저작재산권의 제한 규정 중 하나인 ‘사적 이용을 위한 복제’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정부와 국회는 절망의 끝에서 마지막 절규를 외치고 있는 출판업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출판권자를 보호하기 위한 법 개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장성환 기자 gijahwna90@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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