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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속의 사회학(7) 영웅은 현실에는 없다 
세속의 사회학(7) 영웅은 현실에는 없다 
  • 교수신문
  • 승인 2020.03.20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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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로 재현되는 세계는 실제 세계인가

『경찰관속으로: 언니에게 부치는 편지』 |저자 원도 |이후진프레스 |208쪽

우리는 대개 미디어를 통해 세상을 접한다. 그러나 미디어로 재현되는 세계와 실제 세계 사이에는 간극이 있다. 미디어는 실제 세계를 사실보다는 조금 더 근사해 보이게 재현할 수 있다. 미디어가 작정하고 다루면 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드는 것도 어렵지 않다. 그래서일까? 미디어로만 소방관을 접한 어린아이들은 소방차를 아주 좋아한다. 소방차의 알람 소리를 들으면 걱정부터 앞서는 어른과는 달리 어린아이는 소방차의 알람을 영웅 등장을 알리는 서곡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제복을 입어야 하는 사람이 있다. 그 직업을 수행하기 위해 입는 옷이 아주 특징적인 경우, 우리는 그 직업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을 얼굴이 아니라 옷으로 기억한다. 방호복을 입고 현장 출동하는 소방관의 모습은 생생하게 떠올릴 수 있지만, 내가 얼굴을 기억하는 소방관은 단 한 명도 없다. 경찰관 역시 마찬가지다. 경찰차와 경찰제복의 디자인은 또렷하게 기억해낼 수 있지만, 경찰관의 얼굴을 기억하려 하면 아무도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하려 할수록 제복은 선명하게 떠오르는데 정작 그 제복을 입은 사람의 얼굴은 흐릿하기만 하다.    

<경찰관속으로>는 작은 책이다. 편안하게 한 손으로 쥘 수 있는 크기이다. 디자인도 섬세하다. 대한민국 경찰이 입는 제복의 그 푸른색, 일부러 그 색을 골랐는지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지만 책 표지 색은 영락없이 경찰관 제복의 그 푸른색이다. 표지에 사람들의 뒷모습이 그려져 있다. 그중 경찰관도 보인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그 제복 그대로의 모습이다. 뒷모습이라 우리는 제복을 통해 그가 경찰관임은 알아채지만 얼굴은 짐작할 수 없다. 게다가 글쓴이의 이름도 이상하다. 원도 지음이라고 적혀 있다. 

원도? 법적 실명이 아님은 분명하다. 책날개에 글쓴이에 대한 간략한 소개가 실려 있다. 현직 경찰관이다. 읽기도 전에 맥이 풀린다. 현직 경찰관이 쓴 책이라면 뭔가 영웅담을 잔뜩 늘어놓지 않았을까 하는 예감 때문이다. 그런데 책을 읽어보니, 이 책은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히려 혹시라도 경찰을 영웅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경찰 역시 사람임을 털어놓는 고백에 가깝다. 부제는 언니에게 부치는 편지이다. 부제 그대로 원도라는 한 파출소에 근무하는 경찰관이 언니에게 편지를 쓴다. 상상한다. 파출소에서 제복을 입고 근무했던 한 경찰관이 제복을 벗고 일상복으로 갈아입는다. 그 순간 그 사람은 기능을 수행하는 경찰에서 우리가 살고있는 시대를 같이 살아가는 어떤 동시대인으로 바뀐다. 

책을 펼친다. 경찰관 제복을 입은 그 사람은 이른바 ‘현장’에 있다. ‘현장’은 영웅담을 전시하기 위한 무대배경이 아니라 세상만사가 만화경처럼 펼쳐지는 곳이다. 거기에는 매 맞는 사람,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 술 취해서 난동을 벌이는 사람, 침 뱉는 사람, 노상방뇨하는 사람, 친절한 사람, 못된 사람 우리가 상상할 수 없었던 혹은 그런 사람이 있으리라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다양한 사람이 있다. 그 ‘현장’에 경찰관의 제복을 입은 그 사람이 있다. 그 제복을 입은 그 사람이 언니에게 털어놓는 경찰관이 하는 일은 영웅담이 아니다. 그저 사람의 일이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제 사람이 죽어서 인구가 한 명 줄어버린 관내를 오늘 아무렇지 않게 순찰해야 하는 직업, 바삐 돌아가는 세상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지 못하고 떨어져 나온 탓에 그 누구도 관심 가져주지 않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직업, 그게 경찰관이더라.”

경찰관은 물론 때론 영웅이기도 하지만, 항상 영웅일 수는 없다. 영웅이라는 상찬은 경찰관으로부터 인간의 얼굴을 지울 수도 있다. 읽을수록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라이브>를 생각하게 되는 이 책을 덮고 나면 경찰관의 제복이 아니라 어떤 경찰관의 얼굴이 궁금해진다. 지은이는 익명으로 책을 낸 이유를 마지막으로 이렇게 설명하고 있는데, 그 설명을 들으면서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익명으로 책을 낸 이유는, 작가인 내가 한 명의 인물로 특정되지 않을 때 독자분들로 하여금 작가가 누구인지 상상하도록 유도하고 싶어서였다. 동네를 지나가는 순찰차를 보면서, 문득 마주치게 되는 경찰관을 보면서 저 사람이 이 책을 쓴 게 아닐까, 하는 호기심으로 한 번 더 쳐다보도록 만들고 싶었다.” 나 또한 이제 길에서 경찰관을 마주치면 “혹시 저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 같다.     

노명우 교수/아주대 사회학과. 니은서점 마스터 북텐더.
노명우 교수/아주대 사회학과. 니은서점 마스터 북텐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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