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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시대, 대학의 폐허와 교실의 희망
팬데믹 시대, 대학의 폐허와 교실의 희망
  • 교수신문
  • 승인 2020.03.20 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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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개강이 되었지만 개강 같지 않은 날들이 이어지고 있는 요즘이다. 코로나19사태로 초·중·고교의 개학이 역사상 처음으로 4월로 연기되었고, 대학입시 일정까지 조정 중이라고 한다. 대학은 학사일정 상으로는 대부분 개강을 했지만, 등교는 할 수 없는 여건에서 온라인을 통한 수업을 비롯한 원격강의가 시작되었다. 전에 없는 교육 환경에서 시스템의 미비와 같은 열악한 조건과 교수나 학생들의 준비 부족 등 여러 가지 불편과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것을 과연 개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비정상적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이 사태가 중국과 그 주변국들만의 문제만이 아니라 세계 전체의 위기가 될 수 있다는 경고와 우려는 진작부터 있어왔지만, 이제 바야흐로 코로나 바이러스는 동아시아를 넘어 유럽과 미국 등 말하자면 세계의 중심부 국가들로 확산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가 이번 사태를 팬데믹으로 선포한 것은 차라리 늦은 것이며, 뒤늦게 대응에 나선 국가들에서의 전염 확산 속도는 무서울 정도다. 국경 봉쇄가 속속 취해지고, 상점과 음식점들의 영업을 중시시키는 극단적인 조치들도 나오고 있는 것을 보면서, 여기에 차분하고 조직적이고 민주적으로 대처해온 우리 정부와 국민들의 시민의식에 새삼 자부심조차 느끼게 된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더욱 분명해진 것은 이 사태가 어떤 일국에서의 방역이나 대처의 승패 여부로만 진정될 성격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전염병의 창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이 전 지구적인 차원과 결합하여 일어나는 것이 사스나 메르스 등 최근 전염병의 추세고, 코로나19는 이같은 전염병 세계화의 특성이 고도로 구현된 경우에 해당한다. 아울러 그 전파의 방식도 지구화로 인한 탈경계적 교류에 기반하고 있고 그 발원조차 지구적 차원의 환경 훼손과 관련되어 있음이 드러나고 있다. 어떤 점에서 이 팬데믹 현상은 무분별한 지구화 과정에 대해 인류에게 보내는 자연의 경고로도 보인다. 환경파괴만이 아니라 이 사태가 과거의 금융위기 못지않은 세계경제의 위기를 초래할 위험성도 높아지고 있다. 말하자면 코로나 바이러스는 인간의 신체의 시스템을 파고들 뿐만 아니라 지구화의 네트워크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고 있는 것이다. 

많은 교수들이 그렇겠지만 필자 또한 온라인 강의를 준비하기 위해 교실 강의 못지않은 시간을 소비하면서 착잡한 심리상태로 개강을 맞았다. 봄학기면 으레 날씨가 풀리면서 교정에는 꽃이 피어나고 신입생들의 싱그러운 웃음으로 캠퍼스에 활기가 넘치게 마련이다. 그러나 지금 캠퍼스의 황량한 풍경은 아직 직접적인 코로나 바이러스의 침해가 없는 이 구역조차 폐허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일찍이 빌 레딩스는 현재의 대학은 순위 경쟁과 시장 논리에 물들어 민족문화의 전승과 시민적 교양의 형성이라는 본령을 상실하고 폐허로 변하고 말았다고 진단한 바 있다. 그리고 이같은 대학의 폐허화는 현금 관계를 우선하는 지구화의 결과라고 분석하였다. 어쩌면 이번 팬데믹은 대학의 팽창과 발전의 이면에 깃들인 이 폐허의 실상을 가시화하는 하나의 어두운 비유인지도 모른다. 

물론 전 지구화를 추동한 통신 기술의 발전이 이같은 대학의 물리적 봉쇄에 대한 대응을 가능하게 한 점이 있다. 교실에서의 대면 강의는 불가능하지만 온라인을 통한 만남과 강의는 가능한 것이다. 접촉이 통제된 환경에서 그나마 이같은 원격강의의 대안이 열려 있다는 것은 다행일 수 있다. 대학들도 온라인 강의를 위한 시스템을 정비하는 등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고, 당분간은 이같은 방식의 강의가 불가피할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온라인 강의가 대면 강의를 대체할 수 없다는 실감은 더 분명해지고, 학생과 교수의 만남과 자유로운 토론을 통해 이룩되는 대학교육의 본질이 무너지고 있다는 위기감은 더 커진다. 사실 대학의 폐허화를 진단한 레딩스가 대학이 이 폐허를 견디는 방법으로 제시한 것이 바로 교수와 학생의 교실에서의 만남이 아니었던가?

혹여 대학들이 이번 일을 계기로 교실 강의를 축소하고 온라인 강의의 비중을 높이는 방식의 ‘개혁’을 추구할 위험을 경계하는 마음 한편으로, 교실에서 하루빨리 만나기를 고대한다는 수강생들의 이메일에서 희망을 본다. 

윤지관 덕성여대 영문학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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