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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대를 향한 묵직한 예고의 소설들
2020년대를 향한 묵직한 예고의 소설들
  • 하영
  • 승인 2020.03.17 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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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 교수 350명이 뽑은 올해의 문제소설(2020)
저자 한국현대소설학회 | 푸른사상 | 416쪽

한 해 동안 문예지에 발표된 소설작품들 가운데 문제작을 엮은 『올해의 문제소설』은 한국 소설이 이룬 성과를 정리하고 당대 문학의 흐름을 읽어내는 데 기여한다. ‘올해’라고 하는 동시대성에 대해 구체적으로 반영하고 있으며, 대학교수들의 전문적 시선을 통해 획득되는 ‘문제의식’이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2010년대를 마무리하는 시점에의 회고와 미래에 대한 전망이 공존할 뿐만 아니라 문제의식과 시대적 징후를 읽어낸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2020 올해의 문제소설』에는 작가들이 문제의식을 공유하면서 각자의 방식과 개성으로 구체화된 12편의 작품이 실렸다. 연애, 결혼, 가족 등 여러 형태의 사랑, 노년의 삶, 우리 시대의 굴절된 심리, 여성적 유대의 연속과 단속, 사춘기 여성의 섹슈얼리티, 한국적 가족의 기억 등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 『올해의 문제소설』이 가지는 가치는 크게 두 가지다. 우선 ‘올해’라고 하는 동시대성에 대한 구체적 반영이며, 또 하나는 강단에 서는 대학교수들의 전문적 시선을 경유하며 획득되는 ‘문제’의식의 구체화다. 특히 『2020 올해의 문제소설』를 엮고 펴내는 과정에서는 지난 2010년대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큰 틀에서의 회고와 앞날에 대한 전망이 함께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최근 한국소설이 뿜어내는 동시대적 활기와 생동감을 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각각의 텍스트가 표현하는 여러 문제의식과 시대적 징후를 읽어내는 과정 또한 역동적일 수밖에 없었다.

예년부터 그랬지만 올해는 좀 더 치열하고 치밀한 선정 과정이 있었다. 일차적으로 2018년 11월부터 2019년 10월까지 여러 문예지에 발표된 단편 및 중편소설들을 읽어나가며 후보작을 추천했다. 8월부터 1차 추천작들을 선별한 이후, 11월에 다시 2차 추천작들을 추가 검토하여 반영하였다. 12월에는 추천자들이 의견을 교환하면서 추천작의 목록을 다시 다듬었으며, 전면적인 재검토를 수행할 정도로 여러 차례 회의를 거듭했다. 기획위원회에서의 최종적인 선정 과정 역시 각각의 작품에 대한 평가와 이견을 거듭 주고받으며 최종적인 수록작들을 선정할 수 있었다.

12편의 수록작 전체의 경향을 하나로 아우르기는 어려울지라도, 각자의 개성들은 최근 한국문학의 포괄적인 경향을 선명하게 반영하는 지점들이 있다. 최근의 한국문학은 작가들 저마다의 방식으로 구체화되는 개별작업인 동시에 모종의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암묵적인 공동작업이기도 하다는 감상을 준다. 불안정한 시대 속 젊은 세대의 불안을 연애와 가족 등 여러 형태의 사랑과 이해를 소재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정영수의 「내일의연인들」, 박상영의 「동경 너머 하와이」를 겹쳐 읽을 수도 있을 것이며, 조금 결을 달리하여 최은미의 「보내는 이」에서는 결혼 이후의 여성적 관계에서 발생하는 사랑과 집착을 바라볼 수도 있다.

부모의 사고 이후 외삼촌에게 위탁된 소녀의 침묵과 치유를 그리는 손보미의 「밤이 지나면」과 아들 부부를 잃은 뒤 과거에 못 박힌 것 같은 기억들과 함께 살아가야 하는 노년의 삶을 그린 윤성희 「남은 기억」이 공명하는 영역을 함께 읽어도 좋을 것이다. 타인의 삶에 대하여 굴절되고 흩어지는 우리 시대의 굴절된 심리를 도저하게 그려내는 김금희의 「기괴의 탄생」과, 자신의 과거임에도 사춘기의 열정 속에서 분열하는 여성의 섹슈얼리티와 심리를 되살리는 백수린의 「아카시아 숲, 첫 입맞춤」의 응시를 따라갈 수도 있다. 억압적인 상황에 짓눌려 있음에도 소중한 것을 간직하려는 여성적 유대 내부의 연속과 단속을 그리고 있는 윤이형의 「버킷」과 최은영의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는 어떤가. 김사과는 예술가와 보헤미안이라는 시대착오적 조합을 통해서 오히려 우리 시대를 다시 비틀어 보여주는 「예술가와 그의 보헤미안 친구」의 시도 역시 강렬하다.

오랜 세월을 버틴 가옥 공간에 각인된 한국적 가족의 기억을 복원하는 박민정의 「신세이다이 가옥」, 한 여성의 죽음과 그에 대한 해석적 충돌의 불가피한 파편화 내부에서 여성 존재를 그리는 강화길의 「오물자의 출현」은 서로 다른 기억에 대한 접근 방식이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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