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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호]문화비평 : 농경의 시대를 回憶하는 까닭
[259호]문화비평 : 농경의 시대를 回憶하는 까닭
  • 영산대 정치학 배병삼
  • 승인 1970.01.0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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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어머니’를 떠나보내는 길의 안타까움

대보름을 지난 남녘의 들판은 땅에서 피어나는 봄기운으로 자옥하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따뜻한 기운이 아직 차가운 땅기운과 어우러져 안개라기엔 옅고, 구름이라기엔 낮고, 아지랑이라기엔 짙은, 형언하기 어려운 煙霧로 땅을 가득 채운다.

큰어머니가 돌아가셨다. 그녀를 산에 묻고 돌아오는 길. 수 천년간 면면한 ‘농경의 시대’의 끝자락에 태어나, 김해평야 넓은 들 한 가운데로 시집온 뒤, 곡식을 심고 가꾸고 또 거두면서 반 백년을 살다가 그 땅으로 돌아갔다.
그간에도 희미하고 가녀렸던 농경의 시대는, 큰어머니가 돌아감으로써 드디어 끝장이 나고 말았다. 십년 전 한 시인이 “농업은 박물관으로 들어갔다”(이문재, ‘농업박물관’)고 토로했을 적만 해도 조금은 과장된 표현으로 여겼건만, 정녕코 나에게도 농경의 시대는 박물관으로 들어가고 말았다.

한국 여성치고는 장대한 몸을 가졌던 큰어머니는 힘차게 농사를 잘 지었다.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전답이 없던 큰아버지를 잘 도와 끝내 大農을 이뤘다. 농번기에는 농번기답게 바빴고, 농한기에는 농한기조차 바빴다.
어린 눈에 축구장만큼 넓었던 큰집 마당에는 가을이면 ‘ㄹ’자로 나락단들이 빼곡이 들어찼었다. 밤이면 여기저기 가설해놓은 30촉 전구들이 장대 끝에서 끄덕거리고, 밤새 탈곡기 돌아가는 소리에 온 동네가 등천을 하면, 큰어머니는 부엌에서 밥을 물에 말아 후루룩 들이킨 다음 또 밤참 준비에 바빴다. 어린 우리는 그 나락단들 사이를 다람쥐처럼 뛰어다니며 참새처럼 지저귀었다. 농경의 시대였던 것이다.

태초에 이 평야는 바다였다. 강의 흐름에 따라 흙이 쌓여 땅이 만들어지고, 물가에는 갈대숲이 우거져 온갖 새들과 물고기들이 살았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이 갈대를 베어 지붕을 잇고, 물을 빼고 땅을 골라 논밭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시작된 이 땅의 농경의 시대는 사람을 먹여 살렸을 뿐만 아니라, 사람으로 하여금 자연과 더불어 사는 법을 배우게 했고, 또 사람다움의 가치를 따로 세워 대를 물려 잇게 했다. 근본[本]과 말절[末]에 대한 생각이 대표적이다.

근본이란 식물의 뿌리를 이름이요, 말절이란 그 잎사귀를 이름이다. 그러니 ‘근본 없는 놈’이란 말은 그야말로 뿌리 없는 식물이라는 뜻으로 당대의 가장 큰 욕설이 되는 터였다. 그러므로 부모를 뿌리에, 자식을 잎사귀에 비유하는 유교적 세계관이 이 땅에서 크게 번창한 것도 다 내력이 있는 일이었다. 허나 농경과 본말론에 기초한 이 땅의 문명은 큰어머니의 대에서 끝났다.

1970년대 초반, ‘산업의 시대’는 저 산기슭 외진 곳에 첫 발을 내디뎠었다. 공장터를 만드느라 베어낸 나이 많은 당나무의 원혼에 인부들이 죽어갔다는 소문이 사실처럼 전해지고, 들판을 가로지르는 산업도로에 편입된 기름진 논밭을 두고 혀차는 소리가 동네 사랑방에 가득했다. ‘한 해 소출이 얼마인 땅이 길이 돼버렸다’는 식의 탄식이었으나, 이젠 서슬 퍼런 ‘농경의 시대’의 전설로 남았을 뿐이다.
그런 시대였던 만큼 穀倉의 중심지에 산업의 시대가 발을 내딛기 위해서는 농경의 언어를 빌지 않으면 안됐으니, 農工團地라는 이름이 그 대표적인 것이다.

‘농공단지’란 농업이라는 이름을 앞세워 농민을 어루면서 실은 공업으로 채우는 간교한(?) 당의정 언어였다. 그 사이 농공단지는 저 산골짜기부터 들판의 한 가운데까지 시골아이 머리의 기계충같이 야금야금 먹어갔거나, 아예 지방공단, 국가공단 하는 식으로 제 속내를 드러낸 바다. 그러기에 그 동안 농경은 쓸쓸했고, 앞으로는 더욱 황망할 터이다. 오늘 농민은 ‘황만근’처럼 반푼이거나 그의 이웃들처럼 순 늙은이들뿐이고(성석제,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 농토는 저 공업단지에 수용되기만을 기다리는 빈터에 지나지 않는다.

농촌은 의기양양하던 문명의 터전이 아니라 야만의 땅이 되고 말았으니, 곧 빚어질 정월대보름의 ‘달맞이 불태우기’도 달보다 더 밝은 조명등에 빛이 바래고, 그걸 휘황한 안방에서 텔레비전을 통해 보는 내 자식들 눈에는 야만의 한 유습을 증거하는데 불과하리라. 그러니 대보름 지나면 곧 일 철이 시작되는지라 “정월 대보름이면 머슴이 문설주 붙잡고 운다”던 속담 같은 것이야 알 필요도 없는 것이다.

아! 한 시대가 끝나고 있다. 대저 시대가 변하면 가치도 더불어 바뀌는 것이야 항용 있는 일이니 이걸 탓하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한 시대를 증거하던 사람이 떠나가는 길에 추억과 안타까움이 없을 수 없는 것도 인간의 마음이다. 농경의 시대를 회억하는 것은, 산업의 시대를 유목족처럼 뿌리없이 살아가는 내 삶의 헛헛함이 큰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더욱 커졌기 때문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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