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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준의 동서남북 뮤직톡] 자존감으로 업무를 수행할 때 국가기반이 흔들리지 않는다
[김형준의 동서남북 뮤직톡] 자존감으로 업무를 수행할 때 국가기반이 흔들리지 않는다
  • 교수신문
  • 승인 2020.03.13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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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과 훈련을 통한
유럽 계몽주의 시대 지식인, 사회 발전 위한
소명의식 가지고 자신의 분야서 최선의 노력
모차르트와 베토벤도 치열한 삶 통해 자존감으로 
불멸의 작품 남겨 선한 영향력 행사
모차르트 이미지

미국 펜스 부통령은 지난 2월 13일, 시타델 군사학교 졸업식에서 연설하였는데 요지는 다음과 같다. 졸업 후 각계각층에 진출하여 학교에서 배운 것(명예, 임무, 신조 등)을 잘 실천해 달라. 훌륭한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내면을 키워야 하며 사람들이 잘 따르도록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Integrity). 이렇게 되기 위해 세 가지 품성을 견지해야 하는데 첫째, 겸손(Humility)하여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고 상담 등을 통해 협력하며, 둘째, 조직의 권위(Authority)를 존중하고 명령체계의 단일화를 이루며, 셋째, 자제력(훈련, 수양 등)을 길러 (Cultivating discipline) 자신의 임무를 성취할 수 있는 기반을 닦아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외국기업들과 숱한 협상 경험을 통해 상대방 국가의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체득하게 되었다. 문화 (Culture)는 형성하는 데는 장기간이 소요되며, 다음과 같은 영어 단어를 통해 짐작할 수 있다. 농업 (Agriculture), 문화 적응 (Acculturation), 경작하다 (Cultivate), 수경재배 (Aquaculture), 과수재배 (Pomiculture) 등이다. 펜스 부통령은 졸업하는 생도들이 새로운 사회 구성원이 되기 위해서는 경작하듯이 꾸준히 능력과 자질을 키워 나가야 한다고 하였다(Cultivate). 펜스 부통령 같은 미국 지도자들의 이러한 안목이 미국을 지탱하는 힘인 셈이다.
이와 관련, 필자가 미국의 군사학교 학업과정을 알아보니 생도들이 입학하여 코스를 마치고 졸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게 되었다. 미 육군사관학교의 예를 들면 학교 성적(SAT, ACT, 고교 성적) 및 체력평가 (달리기, 푸시업, 윗몸 일으키기, 턱걸이 등)의 최고 등급, 상하원 의원, 부통령급 인사의 추천서 등을 거쳐 매년 1만4천 명 이상 도전하여 추천서 통과 4천명, 면접 통과 2천 5백 명, 최종적으로 1천 2백 명이 입학한다. 입학생 거의 전원이 학교 대표 선수 및 주장들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입학한 생도 다섯 명 중 한 명은 입학 첫해 여름 7주 집중 훈련 과정(Beast Barracks)을 이기지 못하고 중퇴한다.(약 240명) 이 기간 동안 주말, 휴식 없고 가족, 친구와 연락이 단절된다. 새벽 5시 기상, 밤 10시 취침 때까지 식사 및 청소를 제외하면 혹독한 훈련과 엄격한 공부로 거의 모든 일과가 채워진다. 4년 중 가장 힘든 시기이다. 이 기간에 생도들의 모든 약점이 노출되고 강한 군인으로 변모되며 정신적, 신체적, 군사적, 사회적인 다양한 도전을 이겨내는 능력과 자질을 기르게 된다. 인고는 성숙함의 바탕이다.

이들은 졸업 후 군 복무 또는 국가기관에 근무하거나 의과대학이나 일반 대학원에 진학하여 전문가의 길을 걷는다. 미국의 국력은 이러한 강인한 인물들이 바탕이 되어 유지되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측근 폼페이오 장관은 육사 82학번으로 수석 졸업한 인재이며 동기생들 좌장격으로 영향력이 대단하다. 그린 하원의원, 블라티오 국무차관, 브레치벌 국무고문, 어반 전쟁기념위 의장, 에스퍼 국방대행 등이 그의 동기생들이다. 

음악가들 중에서도 이러한 치열한 노력을 한 음악가들이 수없이 많으나 그중에서 모차르트를 예로 틀어 보자. 모차르트는 음악의 신동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높은 경지의 음악을 개척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경주하였다. 6~7세 때부터 유럽 각지를 다니며 음악 공부를 하였다. 조기유학인 셈이다. ‘그랜드 투어’라 불리며 당시 유럽 지식인들은 이를 통해 견문을 넓히고 안목을 키웠다. 모차르트는 런던에 머무는 동안 요한 세바스찬 바하의 11번째 아들 요한 크리스찬 바하로부터 음악을 많이 배웠으며 후일 모차르트의 음악세계에 많은 영향을 준다. 

모차르트의 아버지 (레오폴드 모차르트)는 모차르트가 파리에서 활동하던 시절, 아들에게 편지를 보내 다음과 같은 음악적 소견을 이야기 한 바 있다. “짧고, 쉽고,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곡을 써라. 자연스럽고, 흐름이 있고, 쉬운 스타일이면 사소한 것도 위대할 수 있다. 요한 크리스찬 바하를 생각해 보라. 그가 이렇게 작곡했다고 해서 낮아진 것이 전혀 아니다. 좋은 작곡, 견고한 구조, 실타래 풀어가듯 자연스러움이 대가(Master)와 형편없는 사람을 구별 짓게 한다. 비록 사소한 것일지라도..”이들은 음악을 하더라도 자존감을 가지고 있었다.

모차르트 활동 시기는 유럽 계몽주의 시대로 당시 지식인들은 사회 발전을 위한 소명의식을 가지고 자신의 분야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였다. 모차르트는 1776년 불과 20세 때에 다음과 같은 글을 썼다. “세상 살면서 열심히 배우고, 아이디어를 공유하여 서로를 깨우치고, 과학과 정교한 예술 분야를 고양시키기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 참으로 대단한 인식이다.

기업 경영이든 국가 경영이든 이를 통해 많은 생명을 살리기도 하고 불행을 초래하기도 한다. 자존감을 가지고 주어진 임무를 수행할 때 국가 사회는 발전할 수 있다. 모차르트, 베토벤 같은 치열한 삶을 산 음악가들은 자존감을 가지고 불멸의 작품을 남겼으므로 지금도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작금의 어려운 고비를 겪고 있는 우리에게 던져주는 메시지를 느껴 보자.

김형준 경영&뮤직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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