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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49)] 전염병에 대한 윤리적 판단은 철저한 ‘공리주의’
[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49)] 전염병에 대한 윤리적 판단은 철저한 ‘공리주의’
  • 교수신문
  • 승인 2020.03.13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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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크 속내 

염병이 돌자 사람이 사람을 싫어한다. 상당히 안타깝다. 사람이 사람을 무서워하는 상황, 사람이 사람을 의심하는 현상, 사람이 사람을 불결하다 여기는 태도, 사람이 사람을 싫어하는 분위기가 만천하에 깔린다. 

공산당 선언의 표현처럼 염병이라는 ‘유령이 배회’하는 것 같다. 누군가를 잡아가고, 누군가를 미치게 하고, 누군가를 죽이는 유령이다. 그리고 그 무서움 앞에서 우리는 똘똘 뭉쳐 적과 아군을 구분한다. 거기에는 어느 순간 나도 적으로 판단될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이 숨어있다. 이런 구분은 생존이라는 대의명분 앞에서 군중의 판단에 맡겨진다. 그들은 나쁜 놈이고, 나는 좋은 놈이다. 그들은 병을 옮기는 사람이고, 나는 병이 옮겨질 사람이다. 

전염병의 원인도 이리저리 전가되다 목표를 찾으면 맹목적으로 투하될 것 같다. 그 원인이 우리나라, 아니, 나도 될 수 있을 것 같아 무섭다. 선택되지 않길 바랄 뿐이다. 공포심이 분노를 낳고, 분노가 희생양을 찾는다. 

나는 마스크를 쓰는 행위가 이타적인 것인지, 이기적인 것인지 유심히 관찰해보았다. 처음에는 자기보호용이었으니 이기적으로 보일 수 있었다. 몇몇이 불편해도 쓰는 것은 그가 청결에 유독 신경을 쓰기 때문이라고 생각되었다. 

사실 엄격하게 써야 할 사람은 감기 기운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감기 기운이 있는 사람이 마스크를 쓰는 행위는 이타적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아프지만 남을 아프게 하면 안 되므로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손으로 입을 가리고 자기 옷에 대고 재채기를 하는 예절도 마찬가지다. 남을 피해서 재채기를 하라는 것이니 기존의 예절과도 통한다. 

문제는 거의 모두가 마스크를 썼을 때 쓰지 않은 사람에 대한 판단이다. 초창기에 그런 사람은 건강에 자신하거나 남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이기적이다, 이타적이다를 따지기도 애매했다. 그냥 성향 정도로 생각하면 됐다. 그러나 이제 거의 모든 사람이 마스크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기가 안 하는 것은, 집단의 윤리를 따르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으로 비치고 있었다. 누구든 전염병에 걸릴 수 있는데 왜 너만 조심하지 않느냐는 비난 속에는, 네가 걸려서 남을 걸리게 하면 그것도 죄라는 판단이 들어가 있었다, 그렇다면 그것은 이기적이기보다는 이타적이다. 적어도 병에 걸리게 되는 사람이 내가 아니라 우리라는 생각을 한다면 말이다. 그런데 피해자가 바로 나라고 확대하는 순간, 그 판단은 이기적인 된다. 그리고 그 이기적 판단이 모이면 적개심도 띄게 된다. 엄청난 이기심이 되는 것이다. 

이런 전염병의 윤리학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집단 전체의 행위를 고려한다는 점에서 질보다는 양을 따지므로 이른바 공리주의의 원칙에 맞는 것 같다. 공리주의는 다름 아닌 효율주의다. 다시 말해 전염병에 대한 윤리적 판단은 질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철저히 양적이라는 것이다. 양에 따라 이기성과 이타성이 바뀐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무서운 윤리학이다. 

여기에서 더 묻자. 행정체계의 마비 또는 가격 급등으로 마스크를 살 수 없어 쓰지 못하는 경우, 그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 것인가? 의료진이나 나이 든 사람에게 마스크를 내준 희생적인 사람이라도 이기적으로 여겨져도 되는가? 
이렇게 사람이 숙주가 되는 전염병의 경우, 무엇인 옳은지 정말 판단하기 어렵다. 그래서 이런 일이 생기기 전에 모든 경우의 수를 놓고 사람들끼리 미리 논의를 해놓아야 한다. 그것이 철학적 매뉴얼이다.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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