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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41] 민들레씨처럼 바람에 흩날리다 정착한 ‘우리의 식물’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 241] 민들레씨처럼 바람에 흩날리다 정착한 ‘우리의 식물’
  • 교수신문
  • 승인 2020.03.13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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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등골나물
'서양등골나물' 사진 제공 = 강원대 생명과학과 유기억 교수

경기고등학교 제자 한 사람이 전국과 세계 곳곳을 산행하면서 찍은 사진과 그에 따른 멋진 설명을 덧붙여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전자우편으로 보내준다. 덕분에 갈 수 없는 여러 곳을 섭렵할 수 있어 참 좋다. 

그런데 하루는 서울의 안산 능선 자드락길을 소개하는데, 산자락에“‘서양등골나물’을 긴급 수배한다”라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있다. 서대문구청의 푸른 도시과의 작품이었다. “흰 꽃이 예쁘나 페놀을 내뿜어 토종식물의 자리를 무섭게 빼앗고 있다. 이 식물을 보시면 꺾거나 뽑아주세요”라고 쓰여 있다. 물론 뽑는 게 백번 옳다.

또 궁금증이 발동한다. ‘서양등골나물’은‘미국등골나물’이라 불리기도 한다. 국화과의 독성이 있는 다년생초본(poisonous perennial herb)으로 미국 중부나 동부가 원산지이다. 그리고 필자와 함께 강원대학교 생명과학과 명예교수인 李愚喆 선배 교수께서 1978년에‘서양등골나물’로 명명, 발표하였던 外來(歸化)植物이다. 그늘진 숲 속에서도 잘 자랄뿐더러 번식력도 엄청 강해 自生植物의 생태계를 위협하고 있다.

처음에는 서울의 남산과 워커힐 등 제한된 지역에서만 관찰되었으나 오늘날에는 남산은 물론이고 북한산 등 서울 전 지역과 성남시 등 경기도 일대에서도 볼 수 있고, 전국적으로 널리 확산 중에 있다 한다. 

아무튼 물설고 낯선 이 땅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는 동식물들을 보면 신통하고 장하기 그지없다. 흔히“고향이 따로 있나 정들면 고향이지”란 말이 떠오른다. 이제 이 땅에 귀화하였으니 누가 뭐라 해도 서양등골나물은‘우리의 식물’이 된 것이다. 원래부터 살아온 토박이 식물은 20%도 안 되니까 하는 말이다.


서양등골나물을 논하기 전에 먼저 우리나라에 자생하는 등골나물(Eupatorium japonicum)의 특징을 간단히 보겠다. 등골나물 역시 국화과에 속하는 여러해살이풀로 한국, 중국, 일본에 분포한다. 그런데‘등골나물’이란 이름은 잎의 가운데 잎맥에 등골(등 한가운데로 길게 고랑이 진 곳)처럼 고랑이 있어서 붙여진 것이라 한다.

 
등골나물은 길가․경작지․숲․잡목이 우거진 덤불에 많이 자라는 음지식물이다. 특히 소나무나 아까시나무숲에 주로 출현하고, 신갈나무와 잣나무 숲에는 거의 자라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식물 전체에 가는 털이 나고, 줄기는 곧추서며, 키는 70cm 정도이고, 밑동에서 나온 잎은 작은 것이 꽃이 필 때쯤이면 없어진다. 잎은 커다란 것이 마주나고, 짧은 잎자루가 있으며, 난형 또는 긴 타원형이고, 가장자리에 톱니가 있으며, 잎의 양면에 털이 있고, 앞면은 녹색이다. 꽃은 흰 자줏빛으로 두상꽃차례(頭狀花序)를 이루며 8~10월에 핀다. 이른 봄의 어린순은 데쳐 양념에 무쳐 먹고, 묵나물로 쓰며, 꽃을 그늘에 말려서 차로 마신다.

 
서양등골나물(Ageratina altissima) 이야기다. 서양등골나물의 보통 이름은‘white snakeroot'이다. 키가  50cm로 한국에 자생하는 등골나무보다 약간 작은 편이고, 잎은 마주나기(對生)하며, 잎자루가 있고, 잎 몸(葉身)은 달걀모양(卵形)이고, 길이 2~10cm, 폭 1.5~6cm이다. 잎은 끝이 점점 뾰족해지고, 가장자리에는 거칠고 예리한 톱니(鋸齒)가 있다.


서양등골나물은 8∼10월에 새하얀(純白色)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꽃부리(花冠,꽃잎 전체를 이르는 말)는 15∼25개인데, 가늘고 긴 관 또는 통 모양이며, 여러 개의 꽃이 하나의 평면을 이룬다. 뿌리줄기(根莖)나 종자로 번식하고, 갓털(冠毛)을 가진 씨앗이 민들레씨처럼 바람에 흩날린다.

 
그리고 무엇보다 서양등골나물에는 독성물질인 트레메롤(tremetol)이 들어있다. 그래서 소나 염소가 이 풀을 뜯으면 매우 해로울뿐더러 새끼 젖먹이들의 생명도 위태롭다. 또한 살코기나 젖에 든 트레메놀 독성물 때문에 그것을 사람이 과도하게 섭취하면 신경 발작 등 인체에 치명적인 해를 끼치므로 이를‘milk sickness(우유 병)’라 한다. 옛날 미국 서부 개척 시기에만 해도 수천 명이 이 병으로 죽었다고 하고, 1818년에 미국 링컨 대통령의 어머니(Nancy Hanks Lincoln)도 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동물들이 풀을 먹고 나서 몇 시간 뒤면 노곤해하다가 드디어 다리와 입을 떨게 되고, 더 지나면 복통에 갈증을 느끼면서 토하기 시작한다. 끝에 가서는 식욕을 잃고, 허약해지면서 서있지 못하게 되며, 결국 근육 기능을 잃고 혼수상태(coma)에 빠지면서 죽음에 이른다. 사람도 초식동물과 똑같은 증상을 보인다. 

권오길 강원대 생물학과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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