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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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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신문 기자
  • 승인 1970.01.01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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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 학자를 키워내는 튜터리얼 돋보여영국의 학제는 매우 복잡 다양하다. 그 중에서 고등교육은 ‘계속교육’과 함께 ‘후기중등교육’에 포함된다. 계속교육은 대학입학에 반드시 요구되는 A 레벨 이하의 주로 직업교육 중심의 교육을 담당하는 전문대학 수준의 영역이다. 반면 대학과 거의 동의어로 인식되는 고등교육은 A 레벨 이상의 학사, 석사, 연구석사(MPhil), 그리고 박사학위를 수여하는 교육기관에서 제공되는 교육을 말한다.

1992년 이전까지 영국에서 대학은 학문교육 중심의 ‘대학’과 실용교육 중심의 ‘폴리테크닉’으로 나뉘어 있었다. 고등교육의 근본적 개혁을 주창한 1963년의 ‘로빈스 보고서(Robbins Inquiry into Higher Education)’의 결과 소위 ‘신 대학’들이 세워졌다. 요즘 명성 높은 워릭, 에섹스, 요크대학 등은 이때 설립된 것들이다. 그 후 지방정부가 노동시장의 수요에 부응하는 실용적인 고등교육 기관으로 직업교육을 실시하는 ‘폴리테크닉’을 설립해 ‘대학’과 ‘폴리테크닉’의 이원체제가 구축됐다.

그러나 1992년 ‘계속 및 고등교육법’의 제정 이후 ‘폴리테크닉’의 명칭도 ‘대학’으로 바뀌면서 모든 고등교육기관이 대학이라 불리게 됐다. 예를 들어 ‘Oxford Polytechnic’은 ‘Oxford Brooke University’로, ‘Bristol Polytechnic’은 ‘The University of the West of England(UWE)’로, ‘Birmingham Polytechnic’은 ‘The University of Central England(UCE)’ 등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명칭의 통일이 소수에 한정돼온 대학 진학인구를 증가시켰다는 평가도 있다. 1997년 토니 블레어의 신 노동당 정부 출범 이후 더 많은 젊은이들이 고등교육을 받도록 하는 것이 핵심 정책과제가 됐고, 자격 있는 모든 국민의 50%가 대학진학을 하도록 하겠다는 공약을 했으나 아직 이 목표는 달성되지 않고 있다.

영국은 인문숭상의 전통 아래 대학교육이 추구하는 근본적인 목표를 ‘개인의 개발’에 둬왔다. 이러한 인문주의적 목표에 부합하는 엘리트 양성의 주체로서 순수한 학문교육을 중시해왔던 영국의 대학은 대학의 문을 넓히고 실용적 요구와 타협해야 하는 압력을 받아왔다. 소수의 엘리트를 대상으로 수월성을 강조해왔던 영국의 대학은 고등교육 기회를 대폭 확대하고 사회경제적으로 필요한 능력과 기술을 갖춘 인력을 양성해야하는 과제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이에 따라 최근에는 영국 대학에서도 프레젠테이션 기법이나 집단 역학, 커뮤니케이션, 문제해결 능력 등 실용적인 학문 분야에서도 학위취득이 가능해지고 있다.

고등교육 양적 증가와 실용주의 확산

그러나 이러한 거센 변화에도 불구하고 영국 대학의 학문적 우수성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이들은 자신들이 세계적으로 우수한 두뇌를 양성해 지식과 기술 그리고 이해의 지평을 넓혀왔다고 자랑한다. 영국인구는 세계인구의 1%에 불과하지만 세계 과학논문발표의 8%를 차지하며, 지난 50년 간 44개의 노벨상을 수상했고, 또 세계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저술의 13%가 영국 학자들의 것이라며 세계 최고의 연구 수준을 과시한다.

전공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영국 대학의 강좌는 보통 ‘모듈’이나 ‘코스’라 부른다. 모듈은 보통 12주 동안의 강의 후 3주 동안의 보충이나 시험으로 15주 동안 진행된 후 짧은 방학을 한다. 코스는 11주 동안의 수업을 3학기동안 계속한 후 학기말에 시험을 치게 된다. 모듈의 경우 보통 한 강좌의 일주일 수업은 두 세 번으로 나뉘어 수업에 참석할 것이 기대되는 강의와 반드시 출석해야 하는 세미나와 튜터리얼(tutorial)로 이루어진다.

강의는 교수가 주도하며, 세미나는 담당교수나 다른 교·강사가 담당한다. 세미나는 강의내용에 대한 질문이나 매주 부과되는 참고문헌에 대한 토론, 코멘트, 과제 발표 및 이에 대한 피드백으로 진행된다. 따라서 강의시간에는 교수의 강의를, 세미나 시간에는 학생들이 다양한 수업참여와 상호작용을 하도록 고안된다. 세미나의 크기는 보통 10∼20 명 정도이고, 튜터리얼은 훨씬 적은 수의 학생으로 구성된다.

영국 대학에서는 교수의 연구능력뿐 아니라 강의능력의 수월성도 강조한다. 대학 차원에서 처음 임용된 모든 교수에게 교육 방법론에 대한 강의를 수강토록 한다. 학과에서는 선배 교수가 신임 교수의 수업 시간에 배석해서 수업내용과 진행상황을 평가한다.

필자와 가까운 버밍엄 대학의 한 교수는 처음 부임했을 때 선임교수가 자신의 수업을 분석한 결과, 판서 글씨가 작고, 시선이 몇몇 학생에게 고정돼 있으며, 강의내용의 요지를 OHP로 제시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했을 때 당황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제안을 받아들여 수업이 개선됐음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교수가 강의내용을 효율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지식과 기술을 습득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체계는 우리의 대학에도 반드시 도입돼야 할 과제일 것이다.

빛나는 영광은 지속될 수 있는가

형식을 중시하는 영국의 관습은 대학에서도 마찬가지이며 교수의 절대적인 권위는 여전하지만 대학 내의 교수·학생관계도 점차 바뀌고 있다. 물론 교수와 학생간의 상호작용의 정도와 질은 교수의 성격에 따라 달라진다. 어떤 교수는 학생들과 개인적으로 친밀하게 지내는가 하면, 어떤 교수는 강의실이나 연구실 이외의 장소에서는 전혀 만나고 싶어하지 않는다. 근래 영국의 대학들은 그간 학생들이 학습 경험이 소극적이고 수동적이었다는 평가에 따라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소집단 과제나 실무 프로젝트, 또는 팀이 함께 하는 평가 작업등을 통한 활동적인 학습이 권장된다.

영국 대학 교육의 진수는 개인교습식 지도방식인 튜터리얼에 있다. 튜터리얼은 크게 개인적인 것과 학문적인 것으로 나뉘어 개별상담과 학업지도를 한다. 대부분의 학과는 입학상담을 담당하는 입학담당 지도교수나 학생지도를 위한 학년별 지도교수를 두고 있다. 학문적 튜터리얼은 보통 개인이나 3명 이내의 소집단을 대상으로 이루어진다. 대학원생의 경우 교수에 따라 다르지만 대개 2주 간격으로 만난다. 미리 읽어와야 할 내용을 읽고 분석, 비판한 후 자신의 주장을 담아 이를 옹호하는 보고서를 작성하고 발표한 후 교수의 지도를 받는다. 영국의 교수들은 근래 진정한 튜터리얼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고 한탄한다. 학생들의 준비가 미비하며 연구주제에 대한 깊은 성찰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튜터리얼을 통해 세계적인 학자들이 키워진다는 생각에 우리의 대학 현실에서 가능한 대안은 무엇일까 생각해 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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