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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9호]
[259호]
  • 강성민 기자
  • 승인 1970.01.0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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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치행위를 둘러싼 학계의 인식 지도민주주의가 실현되지 않았던 시절 통치행위는 인권유린의 상징이었다. 사람 위에 법이 있었고 법 위에 통치행위가 있었다. 이 사회와 정치를 망친 인사들이 떵떵거리며 남아있듯, 통치행위도 민주화된 오늘날까지 유전돼왔다. 잠복했었던 그 용어가 최근 대통령의 입에서 다시 언급돼 나왔다.

하지만 그것은 더 이상 과거의 권위를 행사하지 못하고 여론에 의해 무너졌다.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지만 야당과 언론에 의해 무시당했다. 이제 통치행위는 진정한 의미에서 그 존재와 작동방식을 검증받아야 할 시점에 이른 것이다. 대통령의 발언을 두고 특검제 도입이니 하며 여간 떠들썩하지 않다. 하지만 비판이성은 이곳에서 통치의 밀월을 누려왔던 수구세력의 이권다툼을 본다. 여론은 언로의 일방통행에 신나서 춤추며, 정국은 ‘이에는 이’라는 전혀 엉뚱한 돌파구를 향해 달려간다.

이 시점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당장의 궁금증 해결이나 현상의 진정이 아니라, 이 문제를 민주주의 법체제에 대한 성찰의 기회로 전화시켜내는 문제설정의 힘이다. 통치행위의 역사와 구조를 살펴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통치행위에 대한 역사구조론적 접근

통치행위 적용범주 엄격제한…‘비밀’은 인정해도 ‘위법’은 안된다대통령이 ‘통치행위’ 발언을 했다가 홍역을 치르고 있다. 야당과 보수언론은 기다렸다는 듯 총공세를 펴고 있지만, 양식 있는 국민들의 분노도 만만치 않다. 대통령과 몇몇 측근이 국책은행과 대기업을 손에 쥐고 국민적 동의도 없이 북한에 거금을 송금했다는 것 자체가 문제다. 역대 가장 민주화됐다는 대통령이 과거 권위주의 때와 똑같은 정치를 했다는 의혹과 질책도 쏟아진다. 비록 민감한 남북관계의 외교지만, 초법적·월권적 요소가 있었는지 철저히 가려야 한다는 정서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이 문제는 좀더 복잡한 쟁점들을 안고 있다. 이를 정치적, 행정적 실책으로만 다루기엔 미진한 무엇이 있다. 과연 통치행위는 민주적 법치국가에서 바람직한 법제도인가, 전쟁의 위험이 상존하는 나라에서는 보장돼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이 역사적으로 정당하게 사용돼 왔던가, 한국의 민주주의 합의절차가 미성숙해서 발생하는 측면은 없는가, 통치행위라는 비제도적 영역이 제도민주주의를 추구하는 국가에서 시민권을 얻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등의 역사적·구조적 질문을 던져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통치행위의 필요조건은 국민적 신뢰

먼저 법적으로 살펴보면 통치행위는 입헌군주의 권력을 확보해주는 고안물로 출발해 고도의 정치적 외교행위에 국한시켜 적용되는 것으로 축소돼왔다. 축소돼왔지만 영미법과 대륙법을 따르는 국가들의 법질서 속에 분명히 존재하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바람직한 현상으로 보지는 않는다. 문제는 서로 다른 이념과 체제와 이익을 표상하는 만국기들이 제각각 흩날리는 현재의 세계적 판도에서, 통치행위라는 불가피 영역을 궁극적으로 없앨 수 있냐는 것이다.

법학자들은 불가피론을 편다. 김선택 고려대 교수(헌법학)는 “통치행위는 국가의 최고기관이 고도의 정치적 성격을 가진 사안을 다룰 때 일단 가능하며, 그 행위가 사법판단이 대단히 부적절한 것으로 사료될 때 인정할 수 있다”라고 말한다. 한강법인 최재천 변호사는 “통치행위는 오직 대북 문제에서만 유효하며, 그 주체는 행정부의 수반으로서가 아닌, 입법·사법·행정부를 통솔하는 영도자로서의 대통령이어야 한다”며 그 범주를 극도로 좁혀서 정의한다. 법으로 판단할 수 없는 사안이 빈번히 발생하는 나라가 어떻게 법치국일 수 있냐는 의견이다.

그렇다면 남북관계는 이런 자격요건을 통과할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 대부분의 법이론가들은 수긍하고 있다. 통일과 남북 평화정착이 대통령의 최우선 임무 중의 하나로 헌법에 명시돼 있기 때문이다.

정치외교학자들도 불가피론이지만 좀더 정치우위의 해석이다. 조명철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연구원은 “대북정책을 우리에게만 유효한 법률장치로만 묶어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다른 나라의 법이 우리와 어긋나도 수용할 수 있어야 외교가 성립되지 않겠느냐”고 질문을 던진다. 사실 어떤 나라도 적성국과의 외교사항은 비밀로 하는 게 관행이다. 법의 한계선 안에서 움직일 수가 없기 때문이고 또한 알려져서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는 판단 때문이다. 과거 미국이 베트남과 경제외교관계를 수립할 때도 사전 국회 동의를 받지 않았다. 헨리 키신저가 수많은 국가들을 대통령의 밀사 자격으로 비밀리에 누볐다는 건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 외 우리나라가 중국과 무역을 시작할 때 돈 준 것, 러시아와 국교 수립하면서 차관 제공한 것 등이 따지고 들기 시작하면 문제가 끝도 없다는 의견들도 많다.

통치행위는 법에 비중을 두면 눌려서 지내야 하고, 정치에 비중을 두면 고무줄처럼 늘어나는 운명이다. 만약 법해석이 국익을 고려치 않고 대통령 바짓가랑이를 잡는다면, 또한 정치가 이현령 비현령 식으로 통치행위를 악용한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한가지를 더 짚어보자. 통치행위의 존재조건에 해당하는 ‘국익’이라는 것이 무엇이고, 그걸 누가 판단하느냐의 문제다. 미국의 경우 대통령의 대외적 행보가 내홍을 겪는 경우는 드물었다. 대통령이 국익을 위해 행동할 것이라는 국민적 신뢰가 형성됐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의 경우도 역사적으로 볼 때 통치행위를 갖고 시끄러웠던 적은 드문 편이다.

하지만 그것은 대통령의 대승적 행동을 이해한 국민들의 용인이 있어서라기보다는, 국민 모두가 무조건 따라야할 상황일 뿐이었다. 3, 4, 5공화국 시절 계엄령을 비롯한 각종 긴급조치를 통치행위로 합리화시킨 사례(허 모 교수가 ‘접근의 이론’으로 유신헌법을 합리화시킨 바 있다)를 볼 때 이는 명백하다. 그 합리화의 조건으로 내건 국익이 바로 국민의 동의 없는 혹은 강요된 반공안보와 왜곡된 통일이었고, 나중엔 민족이었고, 한반도 평화통일이었다. 하지만 민족과 한반도 평화통일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는 분명치 않다.

이근 서울대 국제지역원 교수는 “김대중 정부가 한반도 평화, 통일을 통한 경제적 성장, 민족적 염원에 해당하는 이산가족 상봉을 위해 행동했다면, 이번 대북송금은 문제시하지 않는 게 좋다. 하지만 그 부분을 명쾌하게 국민 앞에서 설명했다고는 볼 수 없다”고 지적한다. 즉 통치행위의 행위자가 어떤 의미에서 국익이라는 말을 사용하는지에 대한 이해와 신뢰가 형성돼 있지 않기 때문에 문제라는 것이다. 비슷한 의미에서 아무리 통치행위라 할지라도 그것이 정부의 몇몇 측근이 아닌 보다 광범위한 정치권의 의견수렴 과정을 거친 것인지도 가능성이 희박하다. 윤태범 충남대 교수(행정학)는 “통치행위는 비제도화된 영역인지라, 다양한 형태로 구현될 수가 있는 건데, 이번의 경우는 중요한 의사결정의 메커니즘을 깡그리 무시한 것이라고 본다. 통치행위를 대통령이 그냥 알아서 해버리는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게 된 원인이다”라고 분석한다.

사실 신뢰의 상실 부분은 통치행위 논란의 본질적인 국면 중 하나다. 양대 정당이 서로를 정치적 파트너로 인정하지 못하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상시적 신뢰도 붕괴돼 있는 상태에서는 통치행위의 위상 또한 불안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영복 행정개혁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이런 불신이 “개발독재를 거치며 지배적인 국가 운영원리로 자리잡아온 비밀주의, 능률주의, 독점주의 등이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이번 대북송금이 길게 볼 때 정당한 것이었고, 또한 정치적 소수자의 불가피한 선택으로 평가되는 측면도 분명히 있지만, 과거 독재권력을 지탱하기 위해 만병통치약으로 활용했던 ‘관행의 약발’에 크게 의존했다는 비판도 피할 수 없을 듯하다.

특검제가 중요한 게 아니다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학)는 “중요한 회담을 성사시킨 성과는 충분히 평가하지만, 그것이 눈길에 낸 발자국 또한 눈여겨 봐야한다”며 “뒤이은 정부가 대북관계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도 이번 대북송금의 절차적 타당성은 점검받을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김선택 고려대 교수는 “물론 행동 이전에 국민투표나 국회 브리핑을 통해 절차를 밟았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라면 검찰의 조사를 수용해 사법부의 판단을 거쳐야 한다”라고 강조한다.

특검제에 대해서는 대부분 부정적인 견해를 보여줬는데, 정태욱 영남대 교수는 “특별법을 만들어 그 사안만을 국부적으로 응징하려는 현재의 흐름은 좋지 않다. 특검제를 두더라도 그것이 국회의 대리인 역할을 해, 이 문제를 사법부의 판단 아래로 이끄는 역할을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사실 특검제 논의를 둘러싼 야당의 지나친 정치공격과 보수언론의 이율배반적 보도행태를 비판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여기엔 반통일적인 기득권 세력의 이기주의에 대한 진보적 집단의 분노가 서려있는데, 윤태범 충남대 교수는 이와 관련 “우리나라의 정치구도에서 일어날 수 있는 통치행위의 유형이 있을 텐데, 언론에서도 그것을 인정하고 보도를 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무튼 앞으로도 입법 및 사법에 속하지 않을뿐 아니라, 행정으로 묶을 수도 없는 국가작용은 있을 것이다. 특히 남북 분단체제를 둘러싼 강국들의 이권다툼 속에서 주체적, 국익적 행동을 취해야할 노무현 정부 기간에 그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김세곤 전북대 강사(정치외교학)는 “헌법 제3조와 제4조, 국가보안법과 남북교류와 협력에 관한 법률, 국가보안법과 남북기본합의서 등이 상호 모순되기 때문에 어느 한쪽을 고치든 양쪽을 다 고치든 해야하지 않겠느냐”는 입장이다. 최재천 변호사는 “대통령이 국회 동의도 없이 이라크 파병에 동의하거나, 자유무역협정에 도장을 찍고 오면 어떻게 되겠냐”며 통치행위 범주의 제한론을 펴지만 막상 문서화, 제도화에 있어서는 확답을 피했다. 조명철 연구원은 “통치행위를 감시, 조정, 합의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며 그것은 “국회가 될 수도 있고, 전국민적인 합의에 기초한 별도의 장치일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아직 통치행위에 대한 본질적인 논의는 제대로 된 포문도 열어보지 못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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