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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종교, 도덕, 사회, 지식의 근원을 찾아서
[BOOK]종교, 도덕, 사회, 지식의 근원을 찾아서
  • 장성환
  • 승인 2020.03.09 10: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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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 | 저자 에밀 뒤르켐 | 역자 민혜숙 노치준 | 한길사 | 856쪽
모든 종교를 이해하기 위해 그 출발점 찾아야, 종교생활의 토대를 이루는 것은 현실사회

‘종교생활의 원초적 형태’는 에밀 뒤르켐(Emile Durkheim)이 생전에 집필한 마지막 책으로 종교와 도덕의 관계, 종교의 기원 등 그의 학문적·사상적 관심사가 모두 들어있다. 뒤르켐은 이 책에서 종교의 일반이론을 탐구할 뿐만 아니라 종교의 본질과 근거, 종교의 출현, 종교의 요소와 기능을 밝히고 있다.

종교에 대한 연구는 그가 말년에 갑자기 선택한 주제가 아니다. 뒤르켐은 전통적인 유대교 랍비 집안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유대교의 여호와, 기독교의 하나님과 같은 신의 존재를 부정했다. 그에게 신은 인간들의 공동체, 즉 ‘사회에서 나온 집합 표상’이었다.

뒤르켐은 종교에 대해 널리 알려진 정의, 즉 초자연적 현상이나 신성으로 종교를 정의하는 것에 반대한다. 초자연적이라는 개념은 자연과학이 발달한 뒤에 생긴 개념이지만 종교는 훨씬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따라서 그는 ‘초자연의 개념으로 종교를 정의할 수 없다’고 말한다. 또한 신성의 개념으로 종교를 정의하는 것에도 반대했다. 세계적인 종교 가운데 신 또는 영의 관념이 없는 경우도 있고, 존재한다 하더라도 부수적인 것에 불과한 종교가 있기 때문이다. 초자연성이나 신성으로 종교를 정의할 수는 없다.

뒤르켐은 종교를 ‘성’과 ‘속’의 개념으로 정의한다. 종교적 신앙이란 성스러운 사물과 속된 것 사이의 관계를 표현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종교적 신앙이 형성되고 그 신앙을 유지·발전하기 위해서는 그것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의례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러한 의례를 혼자서 할 수는 없다. 반드시 공동체나 씨족이 필요하다. 따라서 ‘신앙, 의례, 공동체 이 세 가지가 종교의 본질적 요소다. 책에서는 이러한 요소에 근거해 ’종교란 성스러운 사물들이나 분리되고 금지된 사물들과 관련된 신앙과 의례가 결합된 체계다‘라고 정의한다.

뒤르켐은 오스트레일리아의 토템 숭배에서 목격할 수 있는 ‘거룩한 것’들을 고찰했다. 이를 통해 ‘토템 동식물’, ‘토템의 표상(상징물)’, ‘토템 숭배에 참여하는 특정 토템 씨족의 구성원’이 거룩하게 여겨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지만 거룩하게 여겨지는 여러 사물이나 사람 자체에는 특별히 거룩하게 여겨질 만한 속성이 없었다. 이러한 사물들은 어떻게 거룩하게 여겨지게 된 것일까?

뒤르켐은 이러한 사물들 속에 공통적인 요소가 있고, 그 공통적인 요소가 거룩함의 본질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토템 동물은 그 동물을 숭배하는 씨족을 상징한다. 다른 기호나 그림의 형태로 된 토템이 있다면 그 토템은 마찬가지로 그 토템을 숭배하는 씨족을 상징한다. 이처럼 거룩하게 여겨지는 사물들은 모두 씨족과 관련돼 있다. 그리고 씨족은 가장 단순하고 원초적인 사회(공동체, 집단)다. 거룩함의 출처가 사회인 것이다.

뒤르켐의 종교 이론은 종교가 지닌 사회통합 기능을 강조한다. 토템 숭배를 하는 씨족은 의례 행위를 하는 동안 성스러운 경험을 공유하고, 이 경험은 집단을 통합시키는 힘을 발휘한다는 것이다. 사회를 통합시키는 전통과 역사, 언어와 관습, 도덕과 가치 등은 사회적으로 실재하지만 개개인의 참여와 수용이 있어야 한다. 이런 경우 종교는 개인으로 하여금 통합의 여러 요소를 수용하고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게 한다고 말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토템 숭배는 연관된 집합적 표상들(조상, 전통, 씨족, 토템 동물, 토템 상징물)을 자신들의 삶에서 소중히 여기게 하고 그것들에 순종하게 한다. 이는 ‘사회적 이상’을 숭배하게 하는 것과 같다. 사회적 이상이 종교적 관념이나 의례를 통해 개인들에게 받아들여지면서 사회적 통합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오늘날 종교의 영향력이 점점 약해져가는 한국 사회에서 뒤르켐은 반종교적이면서도 종교를 옹호하는 양면성을 책에서 보여주고 있다. 그의 이론은 어느 종교든 그 신앙 대상의 존재는 부정한다. 신의 실제적인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뒤르켐의 종교 이론은 반종교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기능적인 측면에서 뒤르켐은 종교를 문명의 꼭대기에 올려놨다. 과학, 도덕, 예술과 같은 문명이 고대 종교와 그 종교가 지닌 종교적인 것에서 나왔으며, 범주와 개념 같은 순수 이성도 고대 종교와 종교적인 것에서 나왔다고 이 책을 통해 밝혔다.

시대를 반영하는 집합표상으로서 특정 종교는 몰락할 수도 있고 사라질 수도 있다. 하지만 사회가 존재하는 한 종교와 ‘종교적인 것’은 영원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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