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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 지배구조 제안 돋보여…구상 좋지만 실현 의문
민주적 지배구조 제안 돋보여…구상 좋지만 실현 의문
  • 이찬근 인천대·무역
  • 승인 2003.03.1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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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서평 : 『전지구적 변환』(데이비드 헬드 외 지음/조효제 옮김, 창작과비평사 刊)

외환위기 사태가 발발하기 전 우리나라에선 세계화 주창론이 일종의 대세를 형성하기도 했다. 과거 40여년 간에 걸쳐 그 어느 나라보다도 어려운 여건에서 산업화-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완성시켰으니, 이제는 자신감을 갖고 세계화란 새로운 비전에 도전해 보자는 야심찬 의도가 담겨 있었다. 그러나, 지난 5년간 혹독한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겪고, 김대중 정부가 과욕으로 밀어붙인 영미식 시장 개혁을 경험한 이후, 국민적 자신감은 크게 실추되기에 이르렀고, 세계화 대세론은 어느새 세계화 비판론 내지는 경계론으로 대치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처럼 세계화에 대한 지지와 비판의 대립적 구도가 뚜렷해지고 있는 가운데, 성공회대 NGO 대학원의 조효제 교수가 총 8백87쪽에 달하는 방대한 분량의 역서를 내놨다. 정치학, 사회학, 경제학, 국제관계학 분야에 종사하는 네명의 원 저자가 10년에 걸친 학제적 연구로 정치, 군사, 무역, 금융, 산업, 문화, 환경 등 지구적 상호의존 관계가 두드러진 다양한 영역들을 두루 파헤쳤으니 그 부피가 크게 불어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그러나 ‘전지구적 변환(Global Transformation)’이란 제명의 이 신간 역서가 전하는 메시지는 의외로 간명하다. 세계화를 선악을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경고다.

세계화는 나선형으로 뻗어온 역사과정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세계화란 어떤 목적이나 가치가 선험적으로 설정된 하나의 이념형(ideal type)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인류 문명과 궤적을 함께 하면서 때때로 우발적인 변수에 의해 진행 방향이 끊임없이 수정되고 변화되면서 나선형적으로 이어지고 확대돼온 마치 큰 물줄기와도 같은 역사적인 과정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저자들의 입장에선 세계화는 결코 오늘날의 현상이 아니다. 일찍이 세계적인 종교가 만들어지고, 문명간 교역이 번성하고, 제국주의적 식민화가 진행됐던 것도 모두 지역과 국경이란 한계를 넘어 상호의존관계를 확장시킨 것들로서 세계화의 범주에 속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오늘날의 세계화에 차별적인 특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저자들은 과거 시대의 세계화에 비해 지구적 상호작용의 범위와 강도, 속도 및 영향력이 크게 확대됐다는 점을 중시한다. 특히 지구 온난화 현상에서 보여지듯 환경문제는 명실상부한 지구적 차원을 획득했고, 운송과 통신 기술의 획기적 발전이 낳은 무역과 금융의 지구적 네트워크는 실로 막강하다. 이로써 먼 곳에서 내려진 결정이 나의 삶에 강력한 영향을 미칠 수 있고, 자신이 오랫동안 지켜온 고유한 제도를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버려야 하는 상황이 전개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세계화란 전지구적 변환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저자들은 신자유주의자들이 그러하듯 지구적 시장, 지구적 경쟁원칙이란 선험적 모델을 도식적으로 추구할 이유도 없고, 그렇다고 반세계화 진영이 그러하듯 세계화를 가진 자의 폭력으로 일방 매도하거나 혹은 서구의 지배우위 확보를 위한 프로젝트로 인식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이들은 코스모폴리탄적 대응방법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전지구적 네트워크가 다양한 분야에서 형성되고 있고, 이것을 기존의 국민국가라는 틀 내에서 조절할 수 없다면 국민국가, 국제기구, 시민단체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활발하게 참여하는 지구적 차원의 지배구조(governance structure)를 형성함으로써 세계화의 도전을 감당하면서 동시에 그 모순을 극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융의 세계화가 한국의 현실

그러나 구상은 매우 크고 훌륭하나 그 실현가능성은 극히 의문이다. 지구적 차원의 민주주의를 모색함으로써 세계화의 모순을 치유하고, 그럼으로써 세계화라는 문명사적 프로젝트를 계속 이어갈 수 있다는 주장은 논리적으론 타당하나, 세계화의 폐해를 우려하는 많은 사람들을 안심시키기엔 역부족이 아닐까 생각된다.

따라서 이 책은 세계화의 충격과 대응이란 주제로 그간 서방 지식사회가 벌여온 세계화 논쟁의 다양한 지형을 살펴보는 데 있어서 매우 귀중한 자료임에는 틀림없으나, 여전히 우리의 삶에 있어 결정적으로 중요하고, 우리의 의사에 따라 민주주의가 작동할 수 있는 단위인 국민경제의 틀 내에서 어떻게 조절의 양식을 만들어내야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데에는 큰 도움이 될 수 없다.

지금 우리에게 극히 중요한 초점은 세계화의 어떤 특정한 측면이 국민경제를 가장 위협하고 있으며, 이를 국민경제의 어떤 제도적 안전장치로 극복할 것인가 이다. 바로 이 때문에 우리는 세계화의 모든 양태 가운데 가장 위협적인 금융적 현상에 초미의 관심을 기울여야 하고, 영미식의 일방 추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금융적 조절 장치를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우리가 직시해야 할 세계화는 ‘백과사전적’ 세계화가 아니라 ‘금융’의 세계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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