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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사는 두 교수 ‘코로나 현장 체험 토크’
대구 사는 두 교수 ‘코로나 현장 체험 토크’
  • 교수신문
  • 승인 2020.03.06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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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 박홍규-최재목 교수 특별대담
“코로나19로 촉발된 대구경북 지역 ‘기피·차별 감정’ 문제” 해소방안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우한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특히 대구·경북(이른바TK)지역에는 신천지교회 신도를 중심으로 의심·확진 환자가 폭증하고 사망자도 다수 나오고 있다. 이에 대구·경북 지역을 경계하거나 기피·차별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봉쇄해야 하느니 마느니 등등의 말이 나오고, 더욱이 해외에서도 입국금지 및 기피·차별하는 현상이 속출하고 있다. 

특히 이 문제는 국내 정치역학과 맞물려서 대구·경북이 보수의 중심이라는 지금까지의 평판으로 하여, ‘대구·경북’-‘코로나19’-‘신천지’가 결합하여 추함[醜]-악함[惡]-무서움-불안 등의 부정적 정서로 이 지역이 채색되어 기피·차별돼 가고 있다.    

이런 불편한 현실을 두고 대구·경북에서 거주, 활동하고 있는 박홍규 명예교수(영남대·교양학부)와 최재목 교수(영남대·철학과)가 대담의 자리를 다시 마련하였다. 죄송하게도 이번에는 전염병 유행으로 불안한 만큼 대인접촉을 피하기 위해 이메일로 의견을 주고받았다.  

 

최재목 교수(이하 최): 선생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창궐하는 가운데 별 일 없이 잘 지내고 계시죠? 요즘은 주로 댁에 계시는지요?

박홍규 교수(이하 박): 네, 가끔 학교 도서관에 나오고 집주변을 산책도 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선생님도 그러시지요? 

최: 예,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올해 연구년이라 가능한 한 집에서 칩거수행 중이며, 밀린 숙제를 하는 중입니다. 

박: 그러시군요. 책 읽고 글 쓰는 우리야 어디에 있으나 크게 불편할 게 없지만 직장인이나 자영업자처럼 항상 움직어야 하는 분들은 정말 불편할 터여서 죄송스러운 생각도 듭니다. 하루 빨리 이 사태가 끝나서 모두 편하게 살아야 하겠는데 걱정입니다.   

최: 맞습니다. 하루 하루 몸을 움직여서 가계를 꾸려가야만 하는 분들의 지금의 난국을 생각하면 참으로 가슴이 아프고 걱정이 앞섭니다.

박: 맞습니다.  

최: 뉴스를 통해 잘 아시고 계시겠습니다만, 최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우한에서 시작하여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특히 대구 경북(이른바TK)지역에는 신천지교회 신도를 중심으로 의심·확진 환자가 폭증하고 사망자도 다수 나오고 있습니다. 

이에 대구·경북 지역을 경계하거나 기피하는 현상이 일어나고,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봉쇄해야 하느니 등의 말이 나오고, 더욱이 해외에서도 입국금지 및 기피·차별하는 현상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국내에서, 해외에도 마음대로 갈 수가 없고 많이 불편합니다. 모든 일정들이 취소되고 또 스스로도 자제하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코로나19 문제는 국내 정치역학과 맞물려서 대구 경북이 보수의 중심이라는 지금까지의 평판이랄까, 업보랄까, 이런 저런 이유로 하여, ‘대구·경북’-‘코로나19’-‘신천지’가 결합하게 되고 이 지역이 ‘추함[醜]-악함[惡]-무서움-불안’ 등의 부정적 정서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부와 경계의 표상으로 지역이 나쁜 이미지로 채색되는 것은 물론이고, 기피·차별이 심화돼 가고 있습니다. 물론 이 문제는 이번 4월의 총선과 내년에 치러지는 대선 정국을 앞두고 심해져 가고 있습니다.    

이런 불편한 현실을 두고, 교수신문사의 요청으로 선생님과 대담의 자리를 다시 마련하였습니다. 죄송하게도 이번에는 전염병 유행으로 불안한 만큼 대인접촉을 피하기 위해 이메일로 의견을 주고받기로 하였습니다.  

우선 이번의 대구·경북 지역 경계, 기피 현상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요?

박: 이런 전염병이 창궐하면 공포가 생겨나고 그 공포는 반드시 차별되어야 할 희생자를 만들어냅니다. 역사적인 법칙 같은 것입니다. 극단적으로는 히틀러와 같은 전제주의 전권이 출몰하도록 하게 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특이하게도 특정 지역을 희생자로 삼고 있습니다. 물론 대구 경북에서 확진자 내지 사망자가 압도적으로 나오고 있고, 그 원인의 하나가 신천지라는 집단, 특히 대구 경북의 그 집단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 사람들에게 특별한 기피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점도 이해가 전혀 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게다가 감염병에 대한 지역의 대책이 부족해서 치료에 문제가 많아 급격히 환자가 증가하고 있고, 그 원인의 하나가 신천지 쪽의 여러 문제점과 관련되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인 원인은 ‘지역’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구 경북이 지금 그렇게 된 것은 지극히 ‘우연한 계기’에 의한 것이지 어떤 필연적인 가치에 의해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지역을 문제 삼는 것은 우리나라가 여전히 지역 차별이라고 하는 지극히 원시적인 차원의 반사회적 정서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에 불과합니다. 

저는 이번 사태를 보면서 우리나라에 과연 남들과 함께 더불어 산다고 하는 의미의 사회가 있는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그런 의미의 사회관이나 사회성이나 사회의식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는 생각을 합니다. 

최: 예, 맞습니다. 전염병의 원인이 ‘지역’에 있는 것이 아니며, 대구 경북이 지금 그렇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에 의한 것이지 ‘필연적인 가치’에 의해 숙명적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는 말에 적극 공감을 합니다. 

박: 지역 차별이라고 원시적, 반사회적 정서는 하루 빨리 극복되어야 마땅합니다. 

최: 예, 맞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좀 더 살펴보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특히 지금처럼 대구 경북 지역이 경계, 기피, 차별되는 것은 그 어떤 요인, 과거의 업보 때문인지요? 역사적, 정치적 이유를 든다면? 

박: 대구 경북 지역이 ‘보수적’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최근의 현상’이지 적어도 반세기 전만 하더라도 대구·경북이 ‘진보적인 곳’이었다는 것도 사실입니다. 조선 시대의 영남학파 전통을 비롯하여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 그리고 해방 후의 노동운동을 필두로 1960년 4.19혁명의 기점이 되었던 2.28 학생의거 등등의 여러 사회운동을 일일이 예로 들 필요도 없이 대구 경북 사람들은 보수 일변도가 아니라 도리어 어느 지역 못지않게 진보적이었습니다. 

그러나 1961년에 박정희에 의한 군사쿠데타 이후 적어도 노태우 정권까지 30여년에 걸친 기나긴 대구 경북 출신 사람들 중심의 군인 출신 정권 하에서 대구 경북 사람들의 다수는 마치 자신들이 지배집단에 속하는 것인 양 보수화되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경제성장의 과실도 상당수 대구 경북 사람들에게 주어졌고, 대구 경북 출신들이 정권에 다수 참여했습니다. 

물론 그러한 특혜는 소수에게만 주어졌고 대부분의 대구 경북 사람들과는 무관한 것이었지만, 타지역 사람들에게는 대구 경북 사람들이 지배집단에 속한다는 특권을 가진 교만한 무리라는 생각이 들게 했습니다. 특히 보수 정치인들은 대구 경북 사람들의 허구적인 소중화적 지배의식을 교묘하게 악용해 지역감정을 불러일으켜 그들의 집권을 이어갔고 그로 인해 타지역 사람들은 더욱더 대구 경북에 대한 경계와 기피를 일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정치인들이 그런 지역감정을 배제하여 국민 모두가 단결하는데 앞장 서야하거늘 도리어 지역감정을 조장하여 국민을 분열시킨 점이 가장 큰 과오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정치인들을 ‘우리가 남이가’하는 식으로 맹종하는 지역민들이 지금도 여전히 존재합니다.      

최: 박교수님의 말씀을 들으니까, 인과응보라는 말이 생각이 납니다. 문제는 ‘정치’에 있군요. 다르게 말하면 다시 ‘정치’로 풀어갈 성격이 짙은 문제이기도 합니다. 어느 지역이 진보냐, 보수냐 하는 것도 모두 무언가의 이유로, 무언가가 원인으로 ‘만들어진, 창조된 것’이라는 새삼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박: 맞습니다. 정치와 정치인들이 지역감정 배제와 국민 화합에 앞장 서야하는데 그렇질 못했습니다.

최: 한 가지 더 여쭙습니다. 외국에서도 하나의 지역을 경계, 기피, 차별하는 경우가 있는지요? 아마 있겠지요?

박: 물론입니다. 어디에나 지역 차별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만큼 심한지는 의문입니다. 애향심이나 향토애 같은 순수한 감정에 의한 지역구별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지만, 한 지역 출신자들이 30년 이상 정권을 유지해서, 특별한 지역차별을 낳은 사례가 다른 나라에도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외국의 집단적 차별은 외국인이나 타 인종, 피부색, 성적 취향 등을 둘러싼 것이 대부분이지 같은 민족 안에서 이렇게 분열되는 현상이 또 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사실 6.25와 같은 동족간의 전쟁도 역사적으로 보기 어려운 일입니다. 동족간의 분단은 두말할 것도 없고요. 지금은 통일되었지만 독일 사람들이 한 민족이었다고 하기는 힘들지 않습니까? 19세기 후반에 통일되기까지 수천년 동안 수백개의 나라로 분열되었지 않습니까? 반면 우리는 적어도 1천 년 이상 통일된 하나의 나라였습니다. 지금도 지역 외에 차별되는 사유가 없습니다. 

지역 차별이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게다가 특정 집단에서의 압도적 대규모 감염이라고 하는 현상도 우리나라에만 있는 지극히 특이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례가 발생한 나라를 나는 달리 알 수 없습니다. 특정 지역에서, 특정 집단을 중심으로 이런 현상이 나타난 것은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이라고 봅니다.   

최: 박 교수님의 ‘우리는 적어도 1천 년 이상 통일된 하나의 나라였다’는 말씀이 짠하게 가슴에 남습니다. 그리고 특정 지역에서, 특정 집단을 중심으로 경계, 기피, 차별하는 현상이 나타난 것은 매우 한국적인 현상이라는 말에도 동감을 하게 됩니다. 앞으로 살아가는 세대를 생각하면 기성세대로서 미안하고 또 걱정이 됩니다. 

박: 그렇습니다.

최: 대구·경북 지역이 기피, 차별되는 문제의 해결은 여러 가지의 방도가 있겠습니다. 개인적인 노력, 사회적인 노력, 정치적인 노력 등을 우선 들 수 있겠습니다만, 특히 정치권의 각성과 분발이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박: 그럼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지역차별은 정치인들이 조작하고 조장한 측면이 강하기 때문에 정치권의 각성은 절대로 필요한 일입니다. ‘지역차별금지법’ 같은 것을 만들어서라도 극복해야 할 심각한 문제이지만, 그런 법은 만들 수 없습니다. 

결국 지역차별을 조장하는 정치인을 뽑지 말아야 하는데도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번에도 재해를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정치모리배들이 사기꾼들처럼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만, 국민들 중에는 공포로부터 그들에게 맹종하는 경향도 나타나고 있어서 참으로 우려스럽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 국민 모두 인간인 개인으로서, 우리가 함께 이루어야 할 사회에 대해 고민해야 합니다. 저 자신 대구 경북의 곤경을 이겨나가기 위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우선 얼마간의 경제적인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만, 전국의 많은 독지가들이 대구 경북을 돕고 있는 것에 감동하고 있습니다. 조금이라도 서로 도와야 합니다. 

우선은 병을 낫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정치적인 비난, 책임 소재의 시비는 그 다음입니다.  

최: 예, 맞습니다. 우선은 발등의 불, 전염병을 치유하고 사회를 안정시키는데 최선을 다해야겠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정치적인 비난, 책임 소재의 시비는 그 다음’이었으면 합니다.

박: 그렇습니다.

최: 그럼, 마지막으로 당부하실 말씀이나 강조하고 싶은 것이 있으신지요?

박: 예, 한 마디 더 보태겠습니다. 문제는 지역차별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앞에서도 저는 이번 일을 보면서 우리에게 ‘타인과 함께 산다는 의미의 사회’라는 것이 과연 있는지 의심스럽다고 했는데, 이 문제를 심각하게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사회에는 당연히 ‘사회적 배려’가 있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에게는 그것이 없다시피 합니다. 우선 신천지라는 집단이 과연 그런 사회성을 갖는 지도 의심스럽습니다. 

제가 아는 종교는, 특히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종교인데 신천지가 그런지 참으로 의심스럽습니다. 도리어 사회와 단절되고 폐쇄된 분위기 속에서 특별한 선민의식에 의해 교조적인 교주를 중심으로 하여 움직여지는 반사회성을 특징으로 하는 집단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그것은 저에게 지금 우리나라의 반사회적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인간의 집단은 여러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가족이나 고향과 같은 생래적이며 자연적인 감정 공동체도 있고, 교단이나 회사 같이 인간이 지적인 차원에서 만들어내는 제도로서의 집단도 있습니다만, ‘인간이 더불어 사는 사회’는, 내가 인간이라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남을 인간으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굳은 의지’가 없으면 성립할 수 없습니다. 그런 사회는 감정 공동체나 제도 집단과 혼동되어서는 안 되고, 특히 그런 감정이나 제도로 인간 공생의 사회를 압박하거나 파괴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 함께 살아간다는 사회성 없이는 우리의 민주주의라는 것도 허구일 수밖에 없습니다.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는 ‘우애, 형제애, 박애’가 민주주의의 기본인 1인1표를 성립시킨 역사를 우리는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습니다만, 이번 4월의 총선이야말로 그런 의미의 한 표, 한 표들을 행사하는 소중한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최: ‘내가 인간이라는 것’처럼. ‘남과 함께 더불어 살아간다’. ‘남을 인간으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굳은 의지’, ‘우애, 형제애, 박애가 민주주의의 기본’, 이런 말과 기억들을 회상하고, 확신하면서, 현재의 대구·경북 지역 기피, 차별 문제를 되돌아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 

특히, 교수님 말씀하신대로 ‘사회와 단절’되어, ‘폐쇄된 분위기’에서 ‘선민의식’, ‘교조적 교주 중심’의 ‘반사회성’으로 움직이는, 신천지 같은 교회 나아가서 종교를 우리 사회가 함께 성찰해봤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아울러 그런 모습을 닮은 개인, 사회, 정치의 출현도 경계하고 싶습니다만. 차츰 그렇게 되어가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번에 코로나19로 촉발된 대구경북 지역 ‘기피·차별 감정’ 문제의 ‘해소방안’을 위해 긴급히 마련된 특별 대담에 응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다시 뵙도록 하겠습니다. 부디 건강에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박: 네,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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