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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론 책이 죽습니다”
“이대론 책이 죽습니다”
  • 장성환
  • 승인 2020.03.05 11: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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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출판이 교육 경쟁력이다】 ②학술 출판의 현실, 이래서 기생충이 안 나온다

새학기 ‘불법 복제’ 바이러스 감염 비상
코로나 사태...온라인 강의 늘자 더 극성
학술서적 출판 SOS
대학가 복사가게에서는 교재 불법 복제 행위가 끊이지 않고 있다. 

3월, 캠퍼스의 봄은 휴강 바리케이드에 묶였다. 3월이면 대학가는 첫 대학생활을 맞이한 신입생과 새로운 학년을 준비하는 재학생이 한데 어우러져 활기찬 기운으로 넘쳐나는 게 자연스럽지만 올해는 코로나19 탓에 여느 때와는 다른 분위기다. 캠퍼스에 학생은 찾아보기 어렵고 적막만이 가득하다.

3월 대학가의 풍경이 예년과 판이하게 달라졌지만 변하지 않은 모습이 있다. 바로 대학생들이 교재 값을 아끼기 위해 불법 복제를 하는 것이다. 학술 출판업계 입장에서는 매년 반복되는 교재 불법 복제 문제에 코로나19까지 겹치면서 엎친 데 덮친 격이 됐다. 코로나19로 온라인 원격 강의가 활성화되며 디지털 복제까지 늘었기 때문이다.

대학가 근처 복사가게 중 교재 불법 복제를 해주지 않는 곳을 찾기는 드물다. 대게 학생들이 교재를 복사하기 위해 오면 복사가게 주인들은 “다른 이유도 아니고 수업 들으려고 하는 건데 뭐...”라는 생각으로 군말 없이 해준다. 심지어 복사가게가 대학 각 교수들의 교재 디지털 파일을 가지고 있어 종이책이 없더라도 불법 교재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불법 교재는 정식 교재 가격의 3분의 1 수준밖에 하지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대한출판문화협회, 한국저작권보호원 등이 매년 학술 서적 불법 복제와 관련해 대학가 근처 복사가게를 중심으로 단속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전혀 효과가 없는 상황이다.

지역의 한 사립대학에 다니고 있는 정 모(24세)씨는 “대학 한 학기 등록금만 해도 굉장히 비싼데 수업 교재에까지 큰돈을 쓰기는 너무 부담스럽다”며 “한 학기당 교재비만 10~20만 원이 나가는데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서 쓰는 학생 입장에서는 한 번에 지출하기 힘든 금액”이라고 토로했다.

서울의 모 대학에 재학 중인 최 모(21세)씨는 “내가 정말 읽고 싶었던 책이라면 모를까 한 학기만 쓰고 버리는 대학 수업 교재를 비싼 돈 주고 사기는 아깝다”며 “교재를 복사하면 값도 싸고 챕터별로 나눠서 들고 다닐 수 있어 실용적이라 좋다”고 말했다.

이 두 학생은 불법 복제에 전혀 거리낌이 없는 모습이었다. 주변에서도 다들 하니 내가 해도 괜찮다는 인식과 경제적인 면, 실리 등 여러 가지 이유로 학기마다 교재 불법 복사를 반복하고 있었다. 이들뿐만이 아니다. 대다수의 대학생들이 학기가 시작되면 정식 교재를 사러 대학 구내 서점에 가기보다는 복사가게로 달려간다.

국내 학술 서적이 큰 위기를 맞았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 입학자 수가 줄어들면서 학술 서적 시장이 위축되고 있는 상황에서 불법 복제 문제까지 날로 심각해지며 출판업계가 침체되고 있다.

한국저작권보호원에서 조사하고 발표한 ‘2019 저작권 보호 연차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8년 출판 불법 복제물의 유통량은 약 6천99만 개로 2016년 5천755만 개보다 344만 개 늘어났다. 특히 출판 불법 복제물 유통량에 불법 복제물 단가를 적용해 산출한 시장규모는 약 1천602억 원에 달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불법 복제물 시장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유통량을 기준으로 살펴보면 2018년 온라인이 4천804만 편, 오프라인이 1천295만 편으로 총 6천99만 편의 불법 복제물이 통용된 것으로 조사됐다. 온라인 유통비율이 78.8%로 오프라인 유통비율인 21.2%보다 약 3.7배 높지만, 금액을 기준으로 하면 온라인은 약 2억 800만 원, 오프라인의 경우 약 1천5999억 원으로 출판 불법 복제물 시장의 99.9%를 오프라인이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출판 불법 복제물 중 학술 서적은 433만 편으로 만화(2천567만 편), 소설·수필(1천500만 편), 학습교재(736만 편)에 이어 네 번째로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해당 순위만 보면 다른 분야에 비해 학술 서적이 적은 피해를 받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출판 불법 복제물 소비에 지출되는 전체 약 1천602억 원 중 50%(816억 원)나 차지하며 그 어느 분야보다 큰 손실을 입고 있다. 특히 이 중 대학 외부 복사기를 통한 불법 복사가 401억 원으로 25%나 장악하고 있다.

현 상황에 대해 한봉숙 한국학술출판협회 회장(푸른사상사 대표)은 “대학가에서는 교재 구입에 대한 부담이 크다고 말하면서 아무 죄의식 없이 교재를 불법 복제하고 있다”며 “그로 인해 교재 판매가 줄어들면서 자연스레 발행부수가 감소하고 결국 그렇게 되면 제작 단가가 올라가 불법 복제가 성행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고 밝혔다. 이어 “대학생들이 한 학기 동안 공부하기 위해 교재 비용을 부담하는 것은 당연하며 불법 복제는 범죄라는 인식의 전환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과 같은 학술 출판 현실에서는 좋은 교재가 나올 수 없다. 우리나라 영화산업의 경우 불법 유통을 강력하게 막고 많은 사람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음에 따라 대규모 투자가 이뤄지면서 기생충 같은 걸작이 나올 수 있었다. 학술 서적에서도 영화의 기생충 같은 명도서가 출간될 수 있도록 출판업계의 노력과 함께 대학생들의 의식 전환이 필요한 때다.

장성환 기자 gijahwan90@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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