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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언어의 品格
대학정론-언어의 品格
  • 문용린 논설위원
  • 승인 2003.10.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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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들을 너무 막 한다. 인터넷 채팅에 들어가 보면 한글도 아니고 외국어도 아닌 신종언어가 마구 난무한다. 주로 10대와 20대들이 컴퓨터 키보드 두들기는 속도에 맞추어 글을 쓰려고 하니 당연히 서술부가 생략되고, 발음이 나는 대로 쓰려고 하니 맞춤법이 안 맞는다. 우리가 보기엔 엉망이지만, 그들 사이에서는 의사소통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그들 사이에서는 이런 글이 친밀감의 표시가 되고 동질성의 비표가 된다.

그러나 누가 보기에도 이런 언어의 품격은 떨어진다. 그들 스스로도 이런 언어가 품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래서 고등학생들이 대학에 들어오면서부터 이런 컴퓨터식 외계어는 사라지고 맞춤법에 맞는 글쓰기가 그들의 일상생활 속에 자리 잡게 된다.

그러나 맞춤법이 언어적 품격의 필요 요소는 될지언정 충분요소는 아니다. 어느 유명  문화계 인사가 스스로를 “홍위병”이라고 지칭하면서 “악랄하게 전진하자”고 했고 또 어떤 신문사를 향해서 “똥 침을 놓지 말라”고 공개석상에서 외쳐댔다는 이야기를 신문지상에서 읽었다. 친한 친구끼리의 술좌석에서도 쉽게 사용하기 어려운 말을, 정치적 비중이 커서 국민의 시선이 항상 쏠려있는 공식모임에서 이런 말을 외쳐댔다는 것이 사실 믿기어 지지 않는다.

결국 품격 있는 언어 사용에 실패한 것이다. 대학에서 일구어야할  교양은 바로 이런 것이다. 지성을 절차탁마 하고, 그것을 품격 있는 언어로 의사소통할 줄 알도록 가르치는 것이 바로 대학교육의 중요한 본분 중의 하나이다. 대학교양의 핵심으로 알려져 있는 文?史?哲(문학 사학 철학)은 바로 이런 품격 있는 언어와 의사소통 능력에 관여하기 때문에 학문의 꽃으로 일컬어지고 있는 것이다.

한때 세상을 시끄럽게 했던 이가 검찰의 구속을 앞두고 “꽃이 지기로서니, 바람을 탓하랴”는 함축 있는 조지훈의 시를 읊기도 했고, 어떤 이는 직장을 그만 두면서,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는 함부로 걷지 말라”는 서산대사의 시를 들려주면서 많은 함축을 시사한 바도 있다. 이럴 때 우리는 언어의 품격을 느끼고 , 또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의 지성의 깊이도 가늠한다. 금년 들어 매스컴을 통해 빈번하게 들려오는 유명인들의 저 품격 언어에 우리 지성의 깊이가 들통이 난 것 같아 가르치는 직업에 종사하는 한 사람으로 혼자서 부끄럽다.

가을이 깊어 간다. 기생 이매창의 품격 있는 가을 시 하나를 읊으며 가을 정취에 젖어 보고 싶다: 

             “梨花雨 흩날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아,
              秋風에 落葉이 져도 날 생각 하시는가?
              千里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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