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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모임을 찾아서7-부산의 인문학담론모임
연구모임을 찾아서7-부산의 인문학담론모임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10.24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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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목적 방식으로 학문하기

 자유롭게 토론하고 비판하면서, 궁금한 점을 서슴없이 물어볼 수 있는 자리는 아이러니컬하게도 학계에서도 많지 않다.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학문에 대한 의지, 두 요소가 고루 채워져야하기 때문이다. 기존의 학계에서는 좀처럼 상상할 수 없는 모임이 있다. 이곳에서는 비판도, 질문도 서슴없이 진행된다. 바로 ‘인문학담론모임’이다. 부산대 인문대의 교수들이 주로 활동하고 있지만, 타대학 교수나 대학원생에서 그 문은 열려있다. 원한다면 언제든지 참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9년간 70회 세미나 열어

독특한 이 모임이 결성됐던 것은 1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가에 ‘학부제’ 열풍이 몰아치고 있었던 1994년 무렵, 대학이 치열한 토론과 자유로운 담론의 공간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는 고민과 한술 더해 얻는 것보다는 잃는 것이 많은 학부제를 시행하겠다는 교육부의 방식은 그들에게조차도 고민거리였다. 비슷한 연배의 교수들이 복도에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술집으로 자리를 옮기고, 술잔을 기울이면서 탄생한 것이 바로 인문학담론 모임이다. 전공 바깥의 문제를 같이 고민하면서, 서로서로 대화와 소통의 공간을 절실하게 바라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1995년 3월 16일 오경환 교수(일문학)의 ‘원폭문학과 오오에 켄자부로오’를 시작으로, 방학을 제외하고 1년 8차례씩 매달 세 번째 목요일에는 세미나가 열렸다. 지난 10월 23일에는 정진농 교수(영문학)가 ‘포스트오리엔탈리즘을 향하여’를 주제로 70회 세미나를 진행했다.

그동안 발표자로서, 또 참석자로 모임을 거쳐간 사람도 50여명을 훌쩍 넘는다. 그런데 이들의 운영 방식은 다소 특이하다. 회장도, 총무도, 간사도 없고, 회비도 없다. 돌아가면서 두 달씩 자원봉사자로 잡무를 맡을 뿐이다. 이 역시 ㅎ 이 들어가는 성이 들어가는 사람들부터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역할을 맡았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면 기존에 통용되는 관점을 조금 뒤집어 보자는 ‘재미’였다. 주제 역시 자유롭게 선정했다. 평소에 궁금했거나 관심 있던 분야들에 대해, 주위의 교수들을 섭외하거나 스스로 발표자가 돼 나섰다.   나오고 싶으면 나오고, 사정상 나올 수 없으면 그걸로 그만이다. 그래서 여기서는 ‘회원’이라는 규정도 머쓱하기 짝이 없다. 다만 꾸준히 활동하는 구성원이 있을 뿐. 강명관 교수(한문학), 곽차섭 교수(사학), 김성진 교수(한문학), 김혜준 교수(중문학), 박을미 교수(음악학), 오경환 교수, 윤애선 교수(불문학), 허영재 교수(독문학) 등 10여명의 교수들이 ‘자주 출석한다.’ 활동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면면들이 자연스럽게 학제간의 대화를 끌어내기도 했다.

‘자율성’은 장점인 동시에 단점일 수도 있다. 지속적인 관심이 없으면, 10년이란 세월을 견뎌오기는 힘들었을 터. 김혜준 교수는 “비슷한 연배의, 비슷한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모였기에, 학술적 지식의 확장뿐만 아니라, 전공의 바깥을 고민할 수 있는 공간으로 유지되는 것 같다”라고 평가했다.

이들은 연구 성과는 알게 모르게 세상 속으로 알려졌다. 강명관 교수는 얼마전 ‘조선의 뒷골목’이라는 책을 냈다. 평소에 미시사에 관심이 있었던 강 교수에게 이 모임은 의견을 발표하고 코멘트를 받으면서 자신의 문제의식을 성장시켜 나갈 수 있었던 귀한 공간이었다. 김혜준 교수 역시 “딱딱한 이론 대신, 직접 한번 번역해 보라”라는 주변의 권유를 받아들여, 중국 수필을 한편 한편 번역해 홈페이지에 연재를 했다. 반응이 좋아 ‘하늘가 바다끝’, ‘쿤룬산에 달이 높거든’ 두 권의 책으로 나왔다.

자유롭게 운영되는 자율 공간

9년을 지내오면서 모임의 성격을 규정하려는 시도도 있었다. 대학 내의 한 연구소에서 지원을 하겠다는 제의도 있었는가 하면, 다른 학회처럼 형식을 찾고 변화를 꾀해보자는 의견도 있었다. 그러나 참석하는 교수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고 싶은 것을 말하고, 참석하고 싶을 때 참석하는 공간으로 남겨두고 싶다”는 의견 때문이었다. 그래서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것은 우문에 가깝다. 자연스럽게 생겨났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굴러가고, 또 어느 순간 아무도 나오지 않게 되면 자연스럽게 사라지리라 생각하는 것이다. 그러나 또다른 ‘구속’ 없는 공간을 찾지 못한다면, 필연적으로 이 모임은 계속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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