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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서평 : '아우또노미아'(조정환 지음, 갈무리 펴냄, 520쪽)
본격서평 : '아우또노미아'(조정환 지음, 갈무리 펴냄, 520쪽)
  • 김경수 고려대
  • 승인 2003.10.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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텍스트에 대한 비판적 거리 아쉬워...탐구정신 신선

김경수 / 고려대, 철학

이 책은 ‘아우또노미아’(자율) 운동의 실천가이자 이론가인 네그리(1933-)의 삶과 사상을 소개하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있다. ‘단행본 수준의 연구서로는 세계 최초’라는 이 책은 직접적으로 변화 하고 있는 최근 현실을 이론적 실천적 대상으로 삼은 네그리를 다루고 있기에 결과적으로 어떤 다른 책들보다도 더욱 논쟁적이다.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네그리에서 눈에 띄는 것은 그가 노동의 주체적 구성을 통해 사회운동의 새로운 활력을 찾고자 한다는 점에 있다. 그 이론적 기반을 네그리는 맑스의 노동개념에 대한 새로운 해석, 확장된 해석에서 얻고 있다. 저자가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맑스의 '1844년 경제철학초고'에서 등장하는 노동개념 및 노동소외와 그 소외로부터의 회복이란 틀과 일정 관련이 있다고 보이는 그의 잉여가치화, 자기가치화의 개념은 노동을 통해 자기형성 되어가는 노동자들의 주체성을 강조하기에 효과적이다.

후기구조주의의 정치화된 버전

헤겔에서는 관념노동으로 서술되었었고, 맑스의 '자본'에서는 자본의 운동법칙을 서술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기에 노동을 주로 잉여가치산출노동으로 정식화하였다면 네그리는 이 가운데에서 이 노동 과정 가운데 형성되는 새로운 주체성에 주목하여 이를 자기가치화 과정으로 좀더 뚜렷하게 정식화하려고 노력한다. 노동의 자기가치화에 의해서 잉여가치화가 중단, 전복, 재통합될 수 있다고 보는 네그리는 이 재통합의 힘을 노동거부라고 하고 있다. 즉 그는 필요노동시간을 자본의 이익에 반해 늘림으로써 자본을 파국에 몰아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노동력의 계급주체화를 파악하기 위한 개념도구로 저자는 이를 훈육사회에 대한 저항이라는 푸코의 개념, 혹은 탈주선 찾기라는 들뢰즈/가타리의 개념과 연관시키면서 “좀더 정치적이고 참여적으로 된 후기구조주의철학의 새로운 버전”이라고 평가하고 있다. 이 노동거부의 주체는 물론 노동자인데, 저자에 따르면 네그리는 이 노동자들을 특정한 국가형태에 따라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생산대중들의 전지구적 네트워크를 통한 제국의 전복

즉 ‘자유주의국가-전문노동자’, ‘사회적 국가-대중노동자’, ‘위기국가-사회적 노동자’, ‘제국-다중’등이 그것이다. 제국은 자본의 운동을 통해 야기된 새로운 현실을 포착하는 그만의 독특한 개념이다.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더불어 경제적, 문화적 교환들이 전지구화되었을 때, 전지구적 시장 및 전지구적 생산회로와 더불어 전지구적 질서, 새로운 지배논리와 지배구조가 등장했다는 것이다. 제국은 이런 전지구적 교환들을 가능하게 해주고 효과적으로 규제해주는 어떤 ‘구조’를 정치적 주체, 정치적 주권으로 개념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 제국은 그들에 따르면 네트워크화 되어 있으며, 탈중심적이다. 문제는 그가 현대자본주의 사회의 발전 경향으로 정식화하고 있는 제국에서의 다중의 성격이다.

이 다중의 유물론적 기반은 네그리에 따르면 비물질노동이다. 그에 따르면 비물질노동은 정보화된 산업사회인 현대의 노동의 성격을 드러내는 것으로 이것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상호협동’이라는 것이다. 그는 이 성격에 주목하고 이를 코뮤니즘의 초보적 형태로까지 부각시킨다. 그는 오늘날의 생산세계들이 통신과 사회적 네트워크들, 인터액티브 써비스들, 공동의 언어들로 꾸려지고 있다고 보고 바로 이런 것들이 자본주의역사가 보여주지 못한 철저하고 심오한 공통체를 드러내는 것으로 이해한다. 이렇다면 지금까지의 공통체를 대표해 왔던 민족국가의 위상이 흔들리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즉 생산대중들이 전지구적 정보네트워크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연결되고 상호 소통되는 가운데 생겨난 연대와 유대는 한 나라의 정치적 지배와 그 경계를 벗어나는 대단한 활력과 새로운 사회를 향한 가능성, 즉 현대적 방식의 자본의 지배, 제국의 지배를 벗어날 수 있는 대단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네그리는 이 비물질노동자로 구성된 다중들에게 스피노자에 기대 영원의 빛을 더하여 자기해방을 이룩할 수 있는 힘, 활력을 존재론적으로 부여하기까지 한다. 

추상적이고 미적이기까지한 '다중' 개념

조정환이 소개하고 있는 이런 장대한 네그리의 기획의 문제를 필자는 주로 철학적 측면에서 제기하고자 한다. 먼저 노동거부 개념의 문제이다. 책에서는 노동거부를 노동의 타도, 노동의 폐기, 노동의 지배로부터의 탈피로 보고 있지만 노동 일반의 폐기는 가능한 개념이 아니다. 맥락상 자본주의적 노동에 대한 거부가 분명함에도 불구하고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노동일반에 대한 거부로 제시되고 있다.

이것은 개념의 혼동을 유발한다. '독일이데올로기' 제1장에서 맑스가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것은 문맥으로 보면 자본주의적 생산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한다. 또한 전략으로서의 노동거부도 문제이다. 노동거부는 프롤레타리아트의 자기결정이라고 저자-네그리는 주장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 내부에서 자본주의노동을 거부하는 것이 가능한가? 전체 다중들의 ‘상호소통적 합의’에 의한 전면적인 노동거부가 가능하다는 것은 하나의 환상이라고 여겨진다.

둘째, 제국이나 다중개념의 철학적 위상이다. 제국이 현실운동에서 추상되었다고는 하지만, 헤겔 역사철학의 ‘이념(Idee)의 자기전개’를 닮은 ‘자율적 운동’-자기발전을 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또한 다중 개념은 흥미롭기는 하지만, 다분히 추상적이고 선언적이며 미적이기조차하다. 이에 대한 저자의 설명은 80년대 민중개념을 연상케 한다. 문제는 이 다중들이 역사적-사회적으로 구조화되어 있다는 것에 있다. 이 생체정치적으로 준존재론화 되어 버린 역사적-사회적 조건을 어떤 형태로 벗어던질 것인가가 문제일터인데,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져 있는 것으로 가정되고 전제된 ‘활력’을 끝없이 강조하는 것은 하나의 미학적 사유요 희망의 표현이다. 얻어 내야할 활력을 이미 존재하는 것으로 전제한다면 그것은 무매개적 사유요, 과학이 아닌 하나의 믿음의 차원으로 날아오르게 된다.

셋째로 탈근대적 주체성 생성에 대한 논의와 관련된 것이다. 탈중심적 주체들의 자유로운 연합, 공명은 하나의 이상이다. 이를 위한 전제는 사실상, 하버마스의 이상적 대화상황의 실현만큼이나 이상적이다. 넷째, 탈근대적 해방은 어떤 유토피아적 외부의 가능성도 없이 이 세계 안에서 내재성의 구도 위에서 달성되어야 한다고 저자-네그리는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해방은 궁극적인 동일성에 해당하는 것으로 그 현실적 매개지점을 상실하고 있다. 영원에 이르는 길을 주장하면서 동시에 내재성의 구도를 주장한다면 이것은 뒤집어 놓은 헤겔이요 포이에르바하의 변형일 따름이다.

뒤집어놓은 헤겔, 포이에르바하의 변형

네그리의 시각에서 네그리를 소개하는 이 책에는 많은 부분에서 ‘연구서’라면 꼭 필요로 하는 텍스트에 대한 비판적 거리가 존재하고 있지 않다. 그럼에도 독자로 하여금 과연 네그리 자체는 정말 어떤가를 알고 싶게 만든다. 그의 주장의 내용이 과감하다 못해 상당히 도발적일 경우에도 말이다. 그 이유는 아마도 90년대 이후 급변한 정치적 현실, 그리고 정보화를 통해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는 시공간의 압축, 변형 및 노동형태의 변화, 신자유주의를 통한 전지구화 등, 새로운 현실을 이론화하면서 근본적인 변혁을 실천적으로 이루어내려는 네그리의 거대기획의 참신성과 대담성에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이론은 전면적으로 수용하거나 전면적으로 거부되어서는 안 된다. 언제나 그 안에는 부분적 진리들이 들어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좋은 책이란 이론 전체에 대한 찬성과 반대(Pro-Contra)와는 상관없이 바로 이 부분적 진리들에 대한 탐구를 유발하고 이 탐구에 영감을 제공한다. 조정환의 ‘네그리’는 그의 사상이 “21세기의 대안” 이라는, 부분적 진리론과는 배치되는 저자의 자못 선동적인 어조에도 불구하고 바로 이를 수행하고 있다.

필자는 자유베를린대에서 '2월혁명기의 철학개념:포이에르바하와 맑스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관심영역은 사회철학인데, 주로 변증법 개념의 확장에 관심을 갖고 주력하고 있다. 논문으로는 '리좀-변증법의 구상'이 있고, '유물변증법의 모델'(공역)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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