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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 리뷰: 『우리시대의 아나키즘』숀 쉬한 지음| 조준상 옮김| 필맥 刊| 248쪽
주간 리뷰: 『우리시대의 아나키즘』숀 쉬한 지음| 조준상 옮김| 필맥 刊| 248쪽
  • 방영준 성신여대
  • 승인 2003.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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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크스도 아나키스트?

방영준 / 성신여대, 윤리교육

아나키즘은 바다로 흐르는 물줄기라기보다는 오히려 지각의 여러 구멍을 통해 스며 나오는 물의 양상을 보여줬다. 땅속을 흐르는 지하수의 흐름이 되기도 하고 때로는 물이 모여 연못을 이루기도 하며, 지면의 갈라진 틈새로 분출되기도 한다. 그리고 끊임없는 운동 속에서 생성?잠복하며 계기적인 맥락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한다.

아나키즘은 자연적인 조화의 찬미와 권위에 대한 저항을 통치기구의 부정으로 연결시키면서 정치철학 제문제에 대해 풍부한 상상력과 충격을 던져 왔다. 하지만 1930년대부터 거의 논의되지 않아 마치 사라져 버린 이데올로기처럼 여겨졌지만, 사실 이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지하수로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 아나키즘은 새로운 모습으로 등장하기 시작해 많은 흥미와 관심의 대상이 됐다.

"권위의 관념을 완전히 제어하는 것, 구조를 허물어뜨리는 사고방식은 정치조직에 대한 좀더 전통적인 관심들만큼이나 자유지상주의 좌파에게 긴요하다."-본문 182쪽에서

숀 쉬한의 ‘우리 시대의 아나키즘’은 1960년대 이후 오늘날까지의 아나키즘에 대해 생생히 그리고 있다. 저자는 여행을 좋아하며 다수의 여행서적을 저술한 것으로 소개되고 있는데, 이 책도 오늘날의 아나키즘 운동의 현장을 여행하면서 새로운 모습으로 바뀐 아나키즘을 잘 보여 주고 있다. 오늘날의 아나키즘은 정치적이고 혁명적인 차원을 뛰어넘어 문화, 환경, 예술 등 생활양식으로서 재생하고 있다. 영국의 유명한 펑크록 밴드 ‘섹스 피스톨스’ 도, 멕시코의 사파티스타 해방군도 아나키즘의 새로운 모습이다. 뿐만 아니라 시애틀의 WTO 회의에서 아나키스트들의 반세계화 시위는 바쿠닌처럼 전투적이지 않다. 자유, 자치, 자연의 삶의 양식을 자신들의 운동에 ‘아나키’하게 적용시킨다. 다양한 감수성으로 자신을 회화 화하면서 중심의 벽을 허물면서 우회적으로 무력화시키고자 한다.

저자의 글은 종횡무진이고 매우 현란하고 도전적이다. 그리고 매우 여행적이기 때문에 학문적 논리를 가지고 짧은 글로 서평하기는 어렵다. 어쨌든 몇 가지를 지적하자. 저자가 니체와 푸코를 아나키스트의 대열에 위치시키는 논리에 대해서는 동감한다. 필자도 평소에 그런 생각을 해오던 터이다. 하지만 마르크스까지 아나키스트의 대열에 세우는 것은 한참 논쟁을 해볼 여지가 있다. 저자는 청년 마르크스의 사상을 중심으로 논하면서 아나키즘과 연결시키고 있다. 청년 마르크스의 사상과 장년 마르크스의 사상적 연계성에 대한 논의도 논자에 따라 다양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단정적으로 보고 있다. 일생동안 마르크스를 연구한다 하더라도 그 분파만을 확인할 뿐이라는 어느 학자의 고뇌가 생각난다. 여하튼 아나키즘은 우리에게 ‘긴장스러운 꿈’을 제공한다. “더 이상 꿈꿀 수 없음은 죽음을 의미한다”는 아나키스트 엠마 골드먼의 말이 새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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