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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리뷰: 『유럽질서의 이해: 구조적 변화와 지속』| 김계동 외 지음, 오름 刊 | 404쪽
주간리뷰: 『유럽질서의 이해: 구조적 변화와 지속』| 김계동 외 지음, 오름 刊 | 404쪽
  • 김학노 영남대
  • 승인 2003.10.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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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포에 머문 '질서' 개념

지난 10여 년간 유럽에 대한 우리 학계의 연구역량은 놀랄 만큼 발전했으며,  젊은 학자들 사이에 유럽관련 연구모임들도 많이 활성화돼있다. 그러나 이들의 연구역량을 통합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거두는 일은 아직 아쉬운 상태다. 이러한 때에 한국국제정치학회 유럽기초학문분과위원회와 국제지역연구소의 공동작품이 출판된 것은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유럽의 ‘질서’를 이해하는  데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된다. 하나는 총체적 분석으로, 유럽의 정체성과 전체질서의 역사적, 구조적 형성과 변화에 관한 논의들이다. 다른 하나는 유럽의 정치, 안보, 경제, 사회, 문화 등의 부분질서에 대한 분석으로, 이들의 상호연관성을 통해 유럽의 질서를 ‘유기적·종합적·입체적으로’ 이해하려고 한다. 책 전체를 통해 유럽연합을 포함, 많은 국가들을 다루고 있으며, 그리스-로마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포괄할 정도로 다양한 시기와 대상이 포함돼있다. 또한 ‘포함의 정치’, ‘동의의 질서’와 같은 키워드로 부분질서를 정리하거나, 구조와 행위(자)의 방법론적 단절을 극복하려는 노력은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유럽사회의 수직적, 수평적 갈등을 조장한 노동운동을 정치적 협상과 타협으로 승화시키면서 사회발전의 원동력으로 발전시킬 수 있었다."-본문 36쪽에서

하지만 큰 기대만큼 작은 아쉬움들도 남는다. 우선, 글을 쓰지 않은 사람들이 필자로 소개돼 있는 것은, 사소한 문제일지 모르나 실로 이해가 안 되는 대목이다. 근대와 현대의 구분이 서론과 총론 및 각론들에서 각기 상이하게 나타난 것도 공동작업의 어려움을 보여주고  있다. 나아가 무엇보다 이 책의 화두인 ‘질서’의 개념이 충분히 정립돼 있지 못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이 책에서 질서는 고정된 관념이 아니며, 복합적인 역사적 과정 속에서 생성되고 변화하는 개념으로 제시돼 있다. 그런데, 정작 질서 개념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는 찾을 수 없고, 구성주의적 정체성 논의나 ‘구조-행위자’ 논의가 대신하고 있을 따름이다.

게다가 이런 방법론마저 부분질서에 대한 분석에 충실히 적용되지 않고 세계체제론과 같은 상이한 접근이 나타나기도 한다. 부분질서들 사이에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 그들이 어떻게 종합되어 전체 질서를 구성하고 변화하는지 등에 대한 단서도 찾기가 어렵다. 유럽질서에 대한 '유기적·종합적·입체적' 분석과 이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 ‘질서’ 개념에 대한 보다 철저한 고민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야 이 책에 이어서 계획하고 있는 유럽의 ‘체계’에 대한 연구로 이어지는 연결고리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질서 개념을 중심으로 유럽을 총체적으로, 부분적으로 이해하려는 노력은 아무리 격려해도 모자랄 것이다. 이러한 연구가 우리 학계에서 시도되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부할만하다. 그런데, 이 핵심 개념이 정교하게 사용되지 않는다면 연구자들이나 독자들이 방황하게 된다. 특히 '질서' 개념은 이미 헌팅턴이나 불, 또는 故이용희 교수에 의해 상당한 수준의 개념화와 조작화가 시도된 바 있다. 단순히 메타포로 사용하기에는 이미 너무 무거운 개념이라고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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