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S-세속의 사회학(6)] 누구나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표현할 권리를 갖고 있음에도
[BOOKS-세속의 사회학(6)] 누구나 사랑을 느끼고 사랑을 표현할 권리를 갖고 있음에도
  • 교수신문
  • 승인 2020.02.20 1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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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性)은 일종의 인간관계
사랑과도 분리될 수 없어
장애인도 사람인 만큼
사랑과 성(性) 나눌 수 있어
사랑을 말할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

독일 유학 시절 받았던 몇 가지 문화적 충격이 있다. 텔레비전을 틀었는데 미성년자 관람불가 등급 영화가 버젓이 방송되고 있었다. 당시 90년대의 한국 기준이라면 극장에서 상영되더라도 신체의 일부 노출 부위를 뿌옇게 처리하는 이른바 ‘물칠’을 당할만한 장면이 텔레비전에 그것도 ‘물칠’도 없이 그대로 방송되는 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나보다 독일 사정을 더 잘 알고 있던 유학생은 이렇게 설명했다. “독일이 섹스에 대해서는 관대한데요, 아마 섹스는 금지해도 언젠가는 인간이 눈을 뜰 수밖에 없는 영역이라 그런 거 아닐까요?” 
그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랬다. 우리가 성을 배워서 알게 된 것은 아니니까. 지금으로는 상상할 수 없었던 강력한 성에 대한 금지 속에 살았던 나도 ‘살다 보니’ 어떻게 성을 알게 되었다. 학교에서도 부모도 가르치지 않았음에도. 나만 그런 게 아닐 것이다. 다들 그렇게 성에 대해 ‘살다 보니’ 알게 되지 않았는가? 섹스란 감춘다고 감춰지는 게 아니니까. 
“성적 욕망은 감출 수 없는 것이니까 그 존재를 인정해야 해요” 누군가 이렇게 말하면 요즘 시대의 감각에 뒤떨어지지 않은 것처럼 들린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하기도 한다. “요즘 젊은이들 당당하게 사랑을 표현하는 걸 보면 부럽기도 하고, 예쁘기도 해요. 우리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잖아요”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물론 가끔 그 표현방식이 서툴고 거칠어 주변에 있는 사람이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모르게 만드는 커플도 있지만 버스 정거장에서 헤어지며 아쉬움을 키스로 표현하는 커플을 보면 대개의 경우 부럽다. 그리고 “젊음이 좋다!”고 감탄한다. 분명 우리는 성과 사랑에 대해 좀 더 나아졌다. 예전만큼 우리는 어색해지지 않는다. 
“사랑하는 감정을 나눈다”와 “그 감정을 성이라는 행위로 표현한다”는 언설을 구체적인 이미지로 상상한다고 하자. 머릿속에서 어떤 모습이 떠오르는가? 대개의 경우 이 언설은 이미지화될 때 젊은 육체를 필요로 한다. 온갖 광고와 대중문화에 의해 학습된 아주 지독한 관행이다. 그리고 사랑과 성을 표현해도 괜찮다고 간주하는 일정한 범주를 벗어난 사람이 사랑과 성을 표현하면 우리는 당황한다. 만약 사랑하는 감정을 나누고 그 감정을 성이라는 행위로 표현하는 육체가 젊지 않다면 우리는 “망칙”하다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감정을 나누는 장애인, 그 감정을 성이라는 행위로 표현하는 장애인의 경우는 어떤가? 아니, 사랑하는 감정을 서로 나누고 있는 장애인을 본 적이 있는가? 사랑하는 감정을 성이라는 행위로 표현하는 장애인을 재현하는 대중 미디어가 있었던가? 아니 한 번이라도 장애인이라는 인간의 모습과 사랑과 성이라는 주제를 겹쳐서 생각해본 적이 있었던가? 
우리가 성과 사랑에 대해서 대범해지기 위해 촌스럽지 않기 위해 어느 정도 성에 대한 개방된 태도를 갖고 있는 세련된 현대인이 되기 위해 적지 않은 시간을 성과 사랑에 대해 이야기했건만 사랑에 대해 말하면서도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있으니, 그게 바로 장애인의 성과 사랑이다.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돌직구로 내던지는 천자오루의 이 책 제목은 다소 긴 듯 보여도, 책의 주제를 가장 정확하게 표현해준다. 
그는 말한다. “성은 양다리 사이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인간관계이자, 신체 접촉을 통해 온기를 나누고 친밀한 관계를 맺으려는 갈망이다. 그것은 종종 사랑과 분리될 수 없다”. 너무나 지당한 말이다. 이 지당한 말은 모든 인간에게 적용된다. 성과 사랑에 대한      지당하기 짝이 없는 이 언설의 적용에서는 어떤 예외도 있어서도 안 된다. 사람이 있는 곳에 사랑이 있다. 사랑이 있는 곳에 성이 있다. 장애인은 사람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장애인은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사람이라면 당연한 사랑 그리고 사랑이 있는 곳에 등장할 수밖에 없는 성에 대해서는 “마치 없는 것처럼” 혹은 더 나아가 “없어야 하는 것처럼” 대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에게 침묵을 사실상 강제한다. 너무 적절한 책 제목처럼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들>이 인터뷰를 통해 마침내 세상에 존재를 드러낸다. 사람 사는 세상에선 더 이상 고정관념에 의해 꺼내지지 않았던 이야기들은 없어야 한다. 그래야 세상이 살만한 곳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높아지지 않겠는가.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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