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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가치’ 집필한 김경동 서울대 명예교수
‘사회적 가치’ 집필한 김경동 서울대 명예교수
  • 김범진
  • 승인 2020.02.21 17: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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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치란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지에 관한 생각, 즉 비전”
“지속가능한 변화 위해 철학과 비전 고민 필요”
“모든 법 앞에 ‘사명 선언문’ 집어넣는 외국 본 따라야”
“우리 사회는 그동안 민주주의 훈련 받은 적 없어… 시행착오는 필연”
원로 사회학자인 김경동 서울대 명예교수가 그의 책 ‘사회적 가치’(푸른사상)를 펼쳐 놓고 책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함정훈 교수신문 고문. 인터뷰는 서울 서초동 대한민국학술원에서 진행됐다. 사진=김범진 기자
원로 사회학자인 김경동 서울대 명예교수가 그의 책 ‘사회적 가치: 문명론적 성찰과 비전’(푸른사상)를 펼쳐 놓고 책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오른쪽은 함정훈 교수신문 고문. 인터뷰는 서울 서초동 대한민국학술원에서 진행됐다. 사진=김범진 기자

19일 서울 서초동 대한민국학술원에서 만난 사회학 원로 김경동 서울대 명예교수는 잠시 과거를 회상했다. “기왕 사회학을 하게 됐으니, 본토에 가서 제대로 공부를 해야겠다”고 마음먹고 미국으로 건너갔을 1960년대의 이야기다.

당시는 통계, 자료수집, 현장조사방법 등을 통한 경험주의, 실증주의가 사회학의 대세였다. 김 교수는 소위 그 방법론이 뭔지 제대로 알고 싶었다. 마침 찾아간 학교에는 연구방법 분야에 이름이 난 교수의 수업이 있었다.

그 수업에 참여한 김 교수는 학기 내내 딱 두 번만 발언을 했다. “내 이름은 김경동이고 한국에서 왔습니다.” 한 번의 자기소개를 마치고 그다음 다시 입을 뗄 때, 그는 사뭇 긴장한 얼굴로 속에 담긴 말을 쏟아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 나는 사회학이 뭔지를 제대로 공부하려면 이 과목을 꼭 들어야겠다고 생각해서 (수업에) 참여했지만, 솔직히 말해 당신네들 하는 이야기 들으니 이게 무슨 사회학이고 도대체 왜 이런 걸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김 교수가 화가 났던 이유는 수업 중에 학생들끼리 통계자료를 분석하며 분산치가 얼마이고 유의도가 얼마인지를 따지고 있는데, 정작 거기에 별 알맹이는 없어 보이더라는 것이었다. 김 교수가 말을 이었다.

“나는 아주 가난한 상황에서 전쟁까지 겪고 어렵게 사는 나라에서 왔다. 그래서 어떻게든 나라를 살리고 제대로 된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했으면 하는 희망을 가지고 미국을 왔는데, 이런 게 사회학이면 정말 실망이다.”

이후 김 교수가 ‘각성’을 하게 된 계기는 그 과목에서 소개해준 리딩 리스트 중 하나였던 찰스 라이트 밀즈의 책 <사회학적 상상력>(sociological imagination)을 읽으면서였다. 그 책을 읽어보니 “숫자나 따지는 사회학은 인간의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고 지나치게 지엽적인 주제에 몰두하는데, 이게 진짜 사회학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라고 김 교수는 말했다.

한국 사회학을 어떻게 평가하느냐는 질문에도 김 교수는 ‘너무 미시적, 기술적, 계량적’인 것이 문제라며 “별로 우리 생활에 도움이 안 되는 것들이고, 일부 사회학자들이 현실의 심각한 문제와는 크게 관련이 없어 보이는 서구이론을 중심으로 새로운 이론과 개념을 만들어내서 학자들 자기들만 아는 논의에 집착하는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건강은 어떠신가요?

“의사는 어떻게 이야기할지 모르겠지만, 한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느낌을 얘기하라면 평소 하던 활동을 계속할 수 있을 정도다. 강의도 하고, 글 쓰고, 봉사활동도 하고, 학술원에 정기적으로 와서 회의도 참여한다. 100% 전에 했던 만큼 하지는 않지만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대학에서 정규강의하던 건 지난여름에 끝을 냈지만, 세시간 강의를 마친 후에도 보통은 지장이 없다는 느낌을 받는 정도다.”

-어떻게 지내십니까.

“은퇴 이후에 시간이 많아져서 책을 몇 권 썼는데 최근에 쓴 것은 2017년 팰그레이브 맥밀런(영국의 유명 학술 출판사)에 낸 세 권의 책이 있다. <사회적 가치>를 주제로 원고를 쓰기 시작한 건 작년부터다. 지난해 여름부터는 몇 분 동료교수와 함께 ‘미래사회 선출직 공직자의 도덕성 평가’라는 주제로 연구를 수행하고 그 결과물로 금년 봄에 책이 나올 예정이다.”

-새로 나올 책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말 그대로 선출직 공직자의 도덕성을 평가할 기준을 제시하는 작업이다. 왜 선출직 공직자의 도덕성 문제를 다뤄야 하는가? 국리민복을 위해 일해야 할 그들이 그 구실은 제대로 못 하고 자기 당파 이익, 패거리 싸움에 몰두해 있는 상황이다. 아직도 이렇게 저급한 상태의 민주주의를 하고 있다는 것은 심각한 일이라는 의식에서 출발한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들이 담겨 있습니까.

“조선조 말기부터 일제강점기, 광복 후까지 정치문화가 어떻게 전개해왔는가를 보면 집요한 특성이 있다. 부패한 정치문화 전통이 완전히 없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정치인의 도덕성을 어떻게 봐야 하느냐, 정치리더십 이론을 보아야 한다. 고대로부터 현대까지, 정치인의 윤리도덕이 확고한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평가 기준이 되는 가치항목이 수십 개 있다.

대표적인 동서양 국가들의 윤리 규정, 선거법 등 현존자료를 검토 대상으로 삼았다. 이를 토대로 진정으로 국리민복을 염려하는지, 정직한지, 남을 무시하지 않고, 배려할 줄 아는지, 소통을 잘하는지 등 앞으로 선출직 공직자를 평가할 기준을 만들었다.”

-2019년을 보낸 소회는 어떠신지 궁금합니다.

“참담하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민주주의를 도입한 역사가 길지 않기도 하지만, 그동안 우리는 민주주의 훈련을 제대로 받아본 일이 없다. 그게 우리 역사의 한가지 맹점이다. 민주주의가 왜 생겨났고,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지, 왜 중요한 것인지를 충분히 인식하도록 하고 그에 기초한 훈련을 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왜 그랬을까요.

“나는 일정 때 태어나서 초등학교 2학년 때 광복을 맞았는데, 사람들이 태극기 들고 만세를 외쳤지만 도대체 이게 뭔지에 대해선 누구 하나 일러주지 않았다.

건국과정에 참여한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 중에 민주주의라는 제도를 제대로 공부하고 훈련한 사람이 몇 명이나 됐을까. 실제로 나라를 경영한 사람들은 총독부에서 일하던 관리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민주주의적인 국가가 뭔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기초가 안 돼 있기 때문에, 엎치락뒤치락 시행착오를 해야 했다. 건국 당시 권력을 잡은 사람 중 나라를 제대로 운영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10여 년 버티다 4·19를 맞았다. 그러나 그 주체는 일반 시민이 아니라 대학에서 그나마 민주주의 의식을 키운 학생이었다. 당시 일반 시민의 민주의식은 아직도 미비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학생들 역시 직접 정치를 할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것은 아니었고, 그 결과 다시 기성정치인들이 집권했다가 결국 1년 만에 군인들이 정권을 장악하고 말았다.

당시 군인들은 광복 후 최초로, 가장 직접적으로 미국 문화를 접한 집단의 하나였고, 엘리트 의식이 있었다. 실제로 경제개발을 실천에 옮기기도 했다.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사실 이승만 정권 때 만들었었고 민주당도 계획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걸 제대로 시행할 기회를 박탈당했고 실제로 (실천했더라도) 성공했을지는 알 수 없다.”

-당시 민주주의를 제대로 할 만한 역량이 없었다는 지적을 하셨습니다.

“겨우 학생들이 깨어 있어서 시민봉기에 나섰지만, 그것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체제를 갖출 수가 없다. 시민사회 저변에 바탕이 없기 때문이다. 군인들이 그렇게 밀어붙일 수 있었던 것 역시 미숙한 국민들 의식 수준과도 관련이 있었고 권위주의적 동원에 반응한 것이다. 

그러면 문제가 어떻게 생겼는가. 여기에 음양변증법을 적용할 수 있다. 갈등은 어느 사회에나 있다. 그리고 팽배해지면 폭발할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그걸 관리하고 해소하는 훈련도 받아본 일이 없다. 더군다나 군인들은 일방적으로 명령하는 조직이지 협상과 타협에 익숙한 집단이 아니다. 학생들도 물론 그런 걸 해본 일이 없다. 

학생들이 저항하면 저쪽에서 수용을 하면 해소가 될 터인데 오히려 억압을 했다. 억누르면 저항력은 수그러지지 않고 극도로 과격해진다. 극단은 반드시 되돌아오게 돼 있다고 음양변증법은 설명한다. 갈등을 관리하고 해소하는 훈련, 유연성을 갖추고 중용을 지키는 법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부딪히고 깨지는 일이 반복된다.”

-2019년 ‘올해의 사자성어’로 ‘공명지조’가 선정되기도 했는데, 만약 교수님께서 2019년 한 해를 정리하는 사자성어를 하나 꼽아주실 수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각주구검(刻舟求劍: 칼을 강물에 떨어뜨리자 뱃전에 그 자리를 표시했다가 나중에 그 칼을 찾는다는 이야기로, 융통성 없이 현실에 맞지 않는 낡은 생각을 고집하는 어리석음을 이르는 말)이 떠오른다. 한번 이념에 꽂히면 거기 몰입해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이것은 각주를 제대로 안한 것이다. 배가 아니라 물에 빠진 곳에 표시를 했어야 한다. 그리고 물은 흘러간다는 생각도 해야 한다. 이념에 몰두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사고가 경직되고 극단이 된다. 다른 걸 유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러면 후회할 일이 생긴다. 물은 흘러가고 세상은 바뀐다. 거기 실용적이고 실질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지혜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그것보다 더 위험한 건 위선이다. 서양에선 ‘double standard’(이중잣대), 우리는 요샛말로 ‘내로남불’이라 하는데, 이것은 위선인 동시에 독선이다. 나만 옳고, 나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은 전부 적이거나 악이라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나라를 경영하면 나라가 위태로워지기 마련이다.”

-이번에 ‘사회적 가치’를 집필하게 된 동기가 무엇인가요?

“우연한 기회에 시민사회운동을 하게 됐다. 서울특별시자원봉사센터 이사장, 한국자원봉사포럼 회장 등 직책도 몇 년 맡으면서 관련 강의도 해왔다.

그런데 강의를 들은 사람들 반응이 ‘이 활동을 왜 하느냐, 어떤 의미가 있느냐, 무슨 가치를 위해서 하느냐’ 같은 것들을 알려준 사람이 없었다는 것이었다. 복지행정은 ‘어떻게 하느냐’(방법론)에 초점을 두고 교육한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듣는다. 그래서 ‘그것만으로는 불완전하다. 나는 여러분에게 왜 우리가 이걸 해야 하는지, 철학과 가치에 관해 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민주주의도 ‘왜 이런 것을 하느냐’라는 질문이 있어야 한다. 그게 시작이다. 왜 선거를 해야 하는지, 왜 의회가 있어야 하는지, 왜 어떤 일은 잘못됐는지. 그걸 아무도 진지하게 가르친 적이 없다.

사회적 가치 역시 ‘왜’의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왜 돈벌이를 하는가? 단순히 경제가치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증진시키기 위해서 한다.

사회적 가치라는 말을 공식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주요 사례는 2012년 공공 서비스(사회적 가치)법을 만든 영국이다. 그러니 사회적 가치가 보편화한 게 겨우 10여 년밖에 안된다.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할지는 여러 사람들이 논의하고 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왜 하느냐’부터 물어보자는 것이다. 기업들이 요즘 들어 사회적 가치 이야기를 하는데, 뭔지 알고 하느냐, 왜 이것 하는지 아느냐. 나는 그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

-왜 하는지부터 제대로 물어야 지속성이 있겠습니다.

“어떻게라는 문제만 물으면 순전히 기술적인 것만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진짜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가 어렵다. 잘못될 수도 있고 한계가 있다. 안목이 좁으니 단기적이 될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의 부제도 ‘문명론적 성찰과 비전’인데, 나는 처음에 아예 이 책 제목을 ‘크고 멀리 바라보는 사회적 가치’, 혹은 ‘큰 눈으로 조망하는 사회적 가치’라고 붙이고 싶었다. 사회적 가치란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문명사적 흐름 속에서 튀어나온 것이다. 그러니 그 문명사에서 어쩌다 이런 담론이 필요하게 됐느냐를 물어보자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 설명이 가능해진다.

그 후에 해야 하는 작업은 가치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는 왜 이런 가치체계를 만드는지’를 물어야 한다. 어떤 사회를 만들고, 그 사회에 살고 싶다는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우리나라에서 2017년에 발의된 ‘공공기관의 사회적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안’을 보면, 무슨 근거에서 이런 이야기가 나오느냐에 관한 언급은 없다. 외국에서는 반드시 사명 선언문(mission statement)을 집어넣는다. 왜 우리가 이걸 하느냐에 대한 설명, 말하자면 헌법 전문 같은 것이다. 진짜 철학과 비전을 얘기해야 한다. 그러려면 적어도 ‘우리가 이런 사회를 원한다’라는 그림이 있어야 한다. 물론 그걸 한 사람이 다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의 생각을 종합했을 때 적어도 이 비슷한 그림은 나와야 하겠다는 게 내가 늘 가진 생각이다.

내가 평생 근대화·사회발전론 연구를 하면서 다른 누구도 하지 않은 말을 한 가지 했다. ‘발전은 함축적 개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가치를, 어떤 사회를 원하느냐’를 이야기해야 그 다음 이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이러이러한 것들을 추구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그 작업을 내가 하려 한 것이었다.”

김범진 기자 jin@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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