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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출판동향 : 변화 모색하는 대학출판부들
국내출판동향 : 변화 모색하는 대학출판부들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10.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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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성과 대중성으로 독자공략 나서

대학 부설 출판사들의 활로개척 노력이 본궤도에 오른 느낌이다. 교양교재와 학내 교수들의 전공 출판물을 펴내면서 자족하던 수준에서 벗어나 다중독자를 향한 기획출판과 편집의 혁신으로 독자공략에 적극 나서고 있다.

'南華苑의 향연'은 송항룡 성균관대 교수가 장자철학의 에센스를 이야기체로 풀어낸 교양서다. 이 책은 아주 드문 판형과 표제지에, 상고풍의 세련된 디자인으로 요즘 나오는 어떤 고급서보다 강렬한 인상을 준다. 출판사가 어딘가 보니 '성균관대출판부'다.

직원 뽑고, 저자 공모 등 적극성 띠어

성균관대출판부가 비주얼하게 편집을 강화시킨 건 대략 1년 전쯤이다. 아르바이트생을 내보내고 새롭게 경력 디자이너와 교열직원을 영입해서 대중독자를 위한 교양서를 펴내 쏠쏠한 재미를 보고 있다. 이찬석 팀장은 "지난해 교양도서 매출이 20∼30% 증가했다"라고 밝힌다. 역대 통치자들의 소평전을 통해 현대사를 재구성한 서중석 교수(사학)의 '비극의 현대지도자'와 공정한 분배원칙을 모색한 김비환 교수(정치학)의 '맘몬의 지배'가 지난해 출간돼 톡톡한 스테디셀러 역할을 하고 있다.

이 팀장은 "독립채산제로 운영되다보니 학교의 지원이 크게 줄어 독자 포섭을 위해 발벗고 뛸 수밖에 없는 사정"이라고 설명한다. 엄혹한 자유시장에 내몰렸지만 다행히 "대학출판부에서 이런 책도 내나"라는 사람들의 탄성이 매출 상승과 함께 용기를 북돋워주고 있다. 장기적으로 성대출판부는 숨어있는 학자들을 본격적인 교양서 저술가로 키워낸다는 야심이다. 현재 '杏亶' 시리즈가 5권, '사람생각' 시리즈가 2권 나와있다.

경성대출판부의 약진도 주목을 끄는 흐름이다. 철학적 탈근대론의 대표주자 쟌니 바티모의 '근대성의 종말'(박상진 옮김)이 최근 번역됐는데 부산의 경성대출판부가 '경성대문화총서'로 낸 첫 작품이다. 이 '문화총서' 역시 대학출판부의 솜씨치고는 예사롭지 않은 무게로 다가온다. 총 21권 분량으로 기획된 총서목록에서 영국의 대표적인 맑스주의 비평가인 테리 이글턴, 프린스턴대 미술사 교수인 핼 포스터, 신화론적 탈식민주의자 로버트 영 등 쟁쟁한 이름들이 확인되는 까닭이다.

경성대출판부는 학교에서 예산을 대폭 인상 편성받아 전국대학 교수들을 대상으로 번역, 저술 공모를 실시해서 이 대형기획을 소화해나가고 있어 더욱 주목을 끈다. "MIT 출판부를 목표로 한다"는 등 뱃심도 두둑한데 거기엔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현재 학내 교수 9명으로 구성된 '기획위원회'가 출판부에 적극 관여하고 있는 것. 배영달 교수(불문학), 이재희 교수(경제학), 이성훈 교수(철학), 강혁 교수(건축학), 조재근 교수(통계정보학) 등 다양한 전공별로 출판에 애착이 있는 교수들이 총장과 대담해서 지원을 받아내고, 기획도 전담하니 자연히 나아질 수밖에 없다. 지난해에 5천만원 정도였던 예산이 올해 1억2천만원, 내년에는 2억원을 육박할 거라니 지속적인 성장이 기대된다.

대중성과 학문성 앞에서 고민

성균관대출판부는 대중성 강화로 경성대출판부는 학문성 강화로 방향을 잡은 셈인데, 대학출판부로서는 이것이 딜레마다. 경성대처럼 학내지원이 된다면 학문성으로 가는 게 맞지만, 대학재정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분리돼 자립경영을 해야하는 현실은 대학출판부를 캐주얼한 복장으로 갈아입힌다. 건국대출판부는 전문가들의 '실용서'를 적극 개발하고 있는데, 학내연구소나 개별학자들을 접촉해서 책을 기획하고 있으며, 책 표지도 디자인학과 교수 3명의 도움을 받아 근사하게 바꿔나가고 있다. 몇몇 출판부는 이미지를 고려해서 아예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 대중서들은 이쪽에서 펴내는 등 출판을 이원화하는 현상도 생겨나고 있다.

대학출판부의 이런저런 변화는 반갑기도 하고 걱정스럽기도 하다. 27년간 건국대출판부에서 일해온 주홍균 출판부장은 대학출판부의 경쟁력은 "팀장급의 출판에 대한 인식과 전문성 강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대부분 대학출판부가 1∼2년을 기점으로 간부들을 순환 보직시키니 책임감 있는 기획이나 노련성 발휘가 될 리 없다"고 털어놓는다. 어차피 시장으로 내몰려면, 그 기반은 만들어달라는 요구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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