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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病 有感
대통령病 有感
  • 교수신문
  • 승인 2001.03.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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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로 세평]

대통령제를 채택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권력 지향적인 정치인의 최종 목표가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그 동안의 정치사에서 대통령 병에 걸린 정치인들의 세력 몰이나 대통령을 만들기 위한 정당인들의 이합집산은 그칠 날이 없었다. 우리나라 정계에 대통령 병이 계절적으로 찾아오는 주된 이유는 국가권력이 대통령 개인에게 집중되어 있고 그의 권한 행사가 실로 막강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권세가 가히 하늘을 찌르는 것 같았던 군사정권 때에는 TV를 켜놓아도 뉴스 시간에 대통령 소식이 제일 먼저 나오고 방송사는 서로 ‘대통령 뉴스의 충성경쟁’을 하였다.

세월이 흘러 민주주의가 큰 가치로 부각되는 시대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일반 국민의 눈에는 여전히 대통령의 권한이 막강한 것 같이 비추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현 정권은 연초부터 ‘강한 정부’를 표방하고 나섰다. 정부 대변인의 말과 같이 “강한 정부란 군사정권과 같이 물리적 힘을 휘두르는 정부가 아니라 민주적 절차를 준수하고 대화와 양보로 풀어 가는 정치를 하며 원칙·법을 지키며 국민여론을 최고로 두려워하는 정부”이다.

문제는 집권 측이 민주적 절차를 준수하고 정치를 대화와 양보로 풀어가며 원칙과 법을 지키는가 하는 것이다. 여론을 공정하게 보도하고 정책을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자유가 언론에게 보장돼 있는가. 공영방송과 관련하여 국제언론인협회(IPI) 사무국장이 내놓은 공개서한에서 한국은 언론 자유라는 점에서 ‘아직도 지켜보아야 할 나라들(countries in transition) 중 하나’라고 못박았다. 이러한 국제적인 지적은 민주주의와 인권 신장에 대한 기여로 노벨상을 받은 김대중 대통령과 현 정권에 대해서는 충격적인 비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은 대통령 앞에서 미국 백악관 출입기자와 같이 가차없는 비판은 고사하고 감히 질문이나 자유롭게 할 수 있는가.

대통령 개인의 권한 행사가 거의 만사를 좌우하는 제도에서는 정당이나 여론은 정권 유지와 비호의 수단에 불과하게 될 위험이 크다. 또한 정계는 보스 중심의 주종관계 내지 봉건적 主君-家臣의 연결 고리로 조직될 수밖에 없고 당연한 결과로 비민주적 폐단과 비합리적인 정치 논리가 뒤따르기 마련이다. 그러므로 전 근대적인 보스 중심 주의를 청산해야 비로소 정치 개혁이 가능하다는 주장도 당연히 나오는 것이다.

한참 오래 전에 역사학자 출신 정치인이 보스들의 천하 3분으로 인한 정치적 난맥상을 개탄하면서 유명한 말을 내뱉었다. “3김은 낚시나 하라”는 그의 말은 신선한 충격을 던지면서 항간에 회자되었다. 그러나 그 후에도 정치현실은 반대방향으로 움직여 갔다. 그들은 정계를 은퇴하기는커녕 불사조와 같이 되살아나 확고부동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곤 하였다.

뿐만 아니라 정치거물로서의 영향력 행사나 대통령 되기 위한 수단방법은 후배 정치가들에게는 교과서처럼 되었다. 요즈음 벌써 대선을 준비하는 인사들이 많이 눈에 띄고 그들 사이에 연대 또는 연합을 도모하고 고질적인 지역주의에 편승하려는 기미가 역력하다. 한마디로 정치 계절병인 대통령 병이 우리 사회에 도지기 시작하였다. 현재 정계에서는 3김보다 정치적 관록에서 뒤떨어지는 일부 정치인들이 대통령 되기를 겨냥하고 차기 대선 후보에 끼기 위해 정략적 행보를 재촉하고 있다. 대선 후보들이 두어갈 手順은 과거 3김이 하던 것과 별로 달라 보이질 않는다.

국민과 유권자 쪽에서도 투표 바로 직전까지 대통령 ‘감’을 가려내야 하는 고민을 계속하면서 온갖 수단방법을 동원하는 대통령 후보들의 泥田鬪狗를 지켜보아야 하고 빤한 거짓말과 空約을 곧이듣지 않을 수 없다. 또 당선 후에는 違約과 배신을 참는 고통을 견디어야 하고 어떠한 정책적 실수나 언행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을 수 없으며, 다만 임기가 끝나기만을 학수고대해야 한다.

‘한국에서의 민주주의는 쓰레기통에서 장미꽃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는 혹평을 들은 초창기에서부터 대통령이 노벨 평화상을 받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민주화가 신장돼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정치의 실제 운영에서나 국민의 일상생활에서는 크게 미흡한 수준에 머물러 있다.

가장 주된 이유는 대통령 병에 걸린 정치인들의 行態와 오직 대통령 만들기에 집착하는 전 근대적인 정당조직을 허용할 수밖에 없는 정치문화에 있지 않을까. 진솔한 의미의 대통령 ‘감’이 고갈된 상황에서 누가 당선되든 상관할 바 아니라는 정치 불감증에 빠진 국민의 수가 늘면 늘수록 정치적 발전은 더뎌지고 결국 한국 민주주의는 위기에 처하게 될지 모른다. 반세기 이상이나 대통령제의 득실을 체험한 오늘의 시점에서 모든 ‘객관적인’ 지식인들은 한국의 정치문화에 적절한 제도적 대안을 찾기 위해 진지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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