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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리뷰 : 『환경학과 평화학』 토다 키요시 지음 | 김원식 옮김 | 녹색평론사 刊)
주간리뷰 : 『환경학과 평화학』 토다 키요시 지음 | 김원식 옮김 | 녹색평론사 刊)
  • 최성일 출판평론가
  • 승인 2003.10.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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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학의 기틀 다지기

평화학은 역사가 짧은 학문 분야다. 영국 런던에서 국제평화연구학회가 창립된 1964년을 기점으로 하면 이제 불혹의 나이에 접어든 셈이다. 평화학은 미래학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발흥했는데 두 학문이 한국과 일본에서 수용되는 양상은 흥미로운 차이점을 보여 주었다. 두 나라 공히 20세기에 전쟁을 겪었음에도 일본에서는 평화학이 미래학에 비해 훨씬 높은 관심을 끈 반면, 한국에서 평화학의 위상은 미래학의 상대가 안 될 정도로 초라했다.

그런데 이제 이 땅에서도 평화학의 활성화를 예감케하는 조짐들이 여지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물론 아직은 운동 차원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환경운동과의 만남을 통해 평화운동을 진작시키려는 움직임은 꽤나 고무적인 현상이다. 평화운동의 기운이 약한 탓에 환경운동에서 힘을 받는다는 표현을 쓴 것이지, 평화와 환경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폭력의 문화에는, 군대제도나 고문, 사형제도는 말할 것도 없이, 유해상품의 합법적 판매나, 나아가서 농약의 대량사용을 비롯해서 '자연에 대한 폭력'까지 포함된다."-본문 74쪽에서

평화학과 환경학의 접목도 우리보다 일본이 한 발 앞섰다. 나가사키대 환경과학부 토다 키요시 교수의 '환경학과 평화학'은 "국가·자본(대기업)·전문가 지배로 대표되는 '히에라르키(hierarchy)'를 의문시하고, '지배'의 문제를 고찰하고 있는, '아나키스트 평화학'을 위한 하나의 시도"이다. 폭력과 평화의 관점에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체계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토다 교수는 폭력의 양태 분석에 긴 지면을 할애한다.

토다 교수는 폭력의 주체와 대상에 따라 폭력을 집적적 폭력과 구조적 폭력으로 구분한다. 그는 폭력의 행사자와 피해자가 분명한 직집적 폭력의 대표적인 예로 전쟁과 사형제도를 든다. 피해자는 분명하지만 가해자는 확연히 드러나지 않는 구조적 폭력의 사례로는 미국의 이라크에 대한 경제제재, 구조조정 프로그램, 담배의 합법적 판매 등을 꼽는다.

토다 교수는 환경학과 평화학은 모두 학제적인 학문으로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다고 말한다. 환경학의 목표인 환경보전은 환경평화, 생태평화, 지구와의 평화를 의미하고, 환경파괴는 곧 지구와의 전쟁을 뜻하기 때문이다. 평화학의 관점에서도 환경보전은 적극적 평화의 중요한 구성요소이자 환경안전보장은 인간의 안전보장, 민중의 안정보장의 중요한 구성요소인 까닭이다.

또, 토다 교수는 평화 사상가 자멘호프의 뜻을 이어받아 국제 평화 교류의 촉매제로 에스페란토의 활용을 제안한다. 그런데 에스페란토가 영어가 지배적인 현실에 대항마 역할을 해야 한다는 취지에는 동감하지만 그것이 언어 사이의 불평등과 언어 내부에 존재하는 차별을 일거에 무너뜨리기에는 한계가 역력해 보인다. 에스페란토의 활용 제안은 서브시스턴스(subsistence)를 강조한 대목과 어긋나는 것이기도 하다. 서브시스턴스가 자연생태계 안에서 인간사회를 유지하고, 재생산해가는 얼개를 가리킬 때, 그것이 비록 자급자족과 동의어는 아닐지라도 에스페란토는 언어의 서브시스턴스를 파괴할 우려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최성일/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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