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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대담] “독도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
[기획대담] “독도 문제 해결을 위한 외교적 노력”
  • 교수신문
  • 승인 2020.02.14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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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대 독도연구소 전문가 좌담

참석자: 최재목(영남대 독도연구소 소장, 사회), 김영수(영남대 교수), 손기섭(부산외국어대 교수), 진창수(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최재목 독도연구소장/영남대 교수
최재목 독도연구소장/영남대 교수

최재목(이하 최): 오늘 토론은 독도문제의 우리나라 외교에서 위상 문제와 그리고 독도문제의 외교적 해결 가능성, 마지막으로 외교적으로 독도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 등에 관해서 대화를 나눠볼까 합니다. 우선 중첩이고 복합적인 문제인 독도문제가 우리나라 외교에서 어떤 위상을 지니고 있는지를 손기섭 선생님부터 말씀 부탁드립니다.

손기섭(이하 손): 오늘 귀한 좌담회에 불러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독도 문제는 한일관계에 있어서 중대한 문제이지만 그동안 표면적으로 학자들이 어떤 정책적 차원, 시대적 차원에서 깊이 있는 토론을 하지는 못했다고 봅니다. 

최: 어떤 면에서 그렇게 보시는지요?

손: 그동안 학문적으로 중장기적인 자료 발견과 해석 등 큰 노력을 해왔지만, 외교와 관련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 어떤 의미와 특징을 가지는지에 관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보입니다. 아마 오늘 좌담회가 이런 기회를 마련해 줄 것으로 생각됩니다. 

최: 예. 외교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으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그동안 그다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말씀이시네요.

손: 예. 저는 기본적으로 한일 간에 있어서 영토문제나 역사문제는 너무 표면적인 외교정책으로 다루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역사문제나 영토문제는 금방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잘못 건드리면 양국의 현황들이 역사문제나 영토문제에만 매몰되므로 유연한 외교가 그다지 이루어지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최: 유연한 외교를 위해 역사나 영토문제를 가능한 전면에 드러내지 말자는 말씀인가요?

손: 독도문제 자체가 한일관계에 있어 근원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인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 국민이 예민하게 생각하는 것은 우리가 주권을 빼앗긴 경험이 있기 때문이며, 따라서 독도문제는 우리 국민의 빼앗긴 역사와 연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유연한 외교, 실용적인 외교를 지향할 때 이러한 한일 간의 영토 또는 역사가 전면에 주목받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최: 그러면 어떠한 방안이 있을까요?

손: 어떤 면에서는 북한 문제가 있고, 동아시아 문제, 예를 들어 미중 관계라던가 거대한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우리는 기본적으로 외교 안보는 한미일 동맹이나 한미일 중심으로 가야 하기 때문에 큰 틀 속에서 우리가 중장기적으로 문제를 준비하고 대비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최: 우리가 한미일 동맹이라는 큰 틀을 훼손시키지 않는 범위 안에서 국익과 관련해서 독도문제를 거론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런데 그런 큰 틀을 훼손하면서까지 독도문제를 표면에 내세운 경우가 과거에 있었습니까?

손: 독도에 대한 영유권을 확보하고 있는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아쉬울 것이 별로 없으므로 표면에 부각하게 시켜서 해결하겠다고 할 필요가 당연히 없죠. 단지 일본이 어떤 정책 조치나 매스컴을 통한 발언으로 자극할 때 그에 대응해야 할 필요는 있는데, 과거에 우리 국민의 예민한 반응을 정치적으로 이용한 적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최: 김영수 교수님. 과거 정권에서 독도 문제를 표면적으로 내세운 경우가 있었습니까?

김영수(이하 김): 독도문제를 다루는 전형적인 두 가지 방식이 외교적인 것으로 볼 것인지, 정체성 문제로 볼 것인지 라는 것이 있는데요. 사실 저는 1965년 체재가 외교적인 문제로 다루자는 합의를 이루었다고 생각합니다. 당시에 우리가 합의를 이룬 방식이 사실은 영토의 영유권문제로 다루자는 것으로, 역사문제, 주권문제로 다루는 것은 하지 말자는 합의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김영수 영남대 교수
김영수 영남대 교수

최: 외교적으로 합의가 된 사안이죠. 

김: 예. 그래서 노무현 대통령 이전까지는 외교적 문제로 다루어져 왔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그 문제를 최초로 역사적인 문제로 전환하고, 주권 문제로 확장하게 시켰습니다. 따라서 외교적 문제와 역사적 문제, 주권 문제가 복합적으로 결합이 되어서 메갈로티미아(megalothymia,우월적 자존심) 문제가 된 것입니다. 

최: 네. 참여정부에서 독도문제의 성격을 변환시켰다는 말씀이시군요.

김: 그래서 그 후의 정부는 우리의 정치적 손실이 크기 때문에 흐름을 중단할 수가 없었습니다.

최: 그러면 그 부분에서 입체적으로 접근하면 단순히 국내 문제, 한일 문제이긴 하지만, 국내에서 국내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것인지, 일본에서 걸어오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것인지 맥락은 어떻습니까?

김: 동아시아에서 1990년대가 메갈로티미아가 시작된 시기이죠. 그전까지는 미국의 동아시아 체제를 중심으로 외교적으로 군사와 안보문제를 다루었는데 1990년대에 중국이 급속히 부상하고, 일본이 거기에 민감하게 대응을 하면서 심각한 문제가 되었습니다. 사실은 그것이 민족주의인데, 역사 재해석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처음 거론이 되었습니다.

최: 예. 역사수정주의 같은 것 말씀이신군요. 

김: 잘 아시다시피 일본에서는 역사 수정주의가 그때 언급이 되었고, 중국도 대국굴기란 것이 직접적으로 언급이 되지는 않았지만, 그때부터 전환을 시작했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국도 결국 이에 대응하다 보니까 65년 체제와 1948년에 미국이 구축한 체제의 제한선을 넘어서기 시작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 예. 국제적인 정치 상황의 변화로 인해 전환된 것이라는... 

김: 그러면서 그 문제에 정면으로 대응하기 시작한 것이 노무현 대통령입니다. 그전까지 김영삼 대통령과 김대중 대통령 경우에는 신중하게 대처를 하면서 영유권 문제에 국한시키려고 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때에 문제가 과거사 문제, 주권 문제와 결합되면서 전형적인 메갈로티미아 문제가 되었다고 봅니다.

최: 그러면 진창수 선생님. 앞에 얘기는 우리 국내에 초점을 두는 논의이고요, 일본의 경우에는 독도문제의 외교적인 위상이 어떤지 그 점에 대해서 말씀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진창수(이하 진): 어려운 질문인데요. 제가 일본 측의 흐름을 보면 아까 두 분 말씀처럼 영토문제를 외교적으로 영토 관리라는 측면에서 한일 양국이 리스크를 관리해야 된다는 입장에서 독도문제에 접근해 왔습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진창수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최: 예. 관리라는 것에 중점을 두어왔다는 말씀이시네요.

진: 그래서 1965년 한일기본조약 이후에도 한국은 조용한 외교를 했고, 일본도 대응을 하지 않는 선에서 정치적 쟁점화를 시키지 않는 리스크 관리 차원으로 독도문제를 둔 것입니다.

최: 당시에 양국이 쟁점화시키지 않기 위해 노력해왔던 것은 사실이고요.

진: 그런데 점차 일본 우익들의 독도문제에 대한 주장이 거세지면서 노무현 정부는 주권의 상징 문제로, 독도문제 자체를 주권을 침탈한 최초의 사건으로 보고 적극적인 대응을 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한일 양국 간 리스크 관리는 결국 파탄이 나게 되었습니다. 일본정부도 국내 여론의 변화에 따른 대응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독도문제를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기도 하고, 다카노 주한대사가 독도가 일본 땅이라는 이야기를 한국에서 하기 시작하면서 그때부터는 리스크 관리가 사실상 불가능해지면서 한일관계에서 첨예한 쟁점으로 부각이 된 것입니다.

최: 예.

진: 그래서 그 때부터 일본도 2005년부터 역사 교과서에 실기 시작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전략으로 나왔으며, 한국도 이전의 리스크 관리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외교적으로 공세적인 방어 형태로 전환한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이런 세 개의 단계가 있었습니다. 

최: 예. 그렇게 양국이 적극적인 외교전략을 펼치게 된 것이고요.

진: 지금은 그런 선상에서 일본정부는 공세적인 형태를 취하고 있는 단계이고, 일단 그런 흐름 속에서 일본의 외교정책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지금은 일본의 외교관들도 국제관계에서 적극적으로 독도를 일본 땅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최: 예 그렇군요.

진: 예. 예전에는 일본은 독도가 분쟁 지역이 아니라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었는데, 지금은 적극적으로 자기 땅이고, 일본이 주권을 침탈당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 그것을 민간과 협동해서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최: 그러면 조용한 외교라고 하는 기조가 리스크 관리가 파탄되면서 적극적이며 공세적인 방어형태로 전환되어 왔죠? 그러면 2005년의 ‘다케시마의 날’ 조례 제정과 같은 문제를 포함해서 일본 내의 흐름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진: 예. 일본 국내의 흐름을 말씀드리자면, 1995년에 무라야마 담화가 있었는데, 전후 50년을 기점으로 해서 1996년부터 일본의 보수 우익세력들이 위기를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식민시대란 것이 그들에게는 찬란한 역사인데, 자학사관으로 인해 결과적으로 수치스러운 역사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최: 예. 그렇죠.

진: 그 과정에서 역사교과서 개정운동이 발생하였으며, 아베를 중심으로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이 시작되고 위안부 문제까지 부정하기 시작했습니다. 

최: 예. 일본에서 그런 움직임이 강력해졌죠.

진: 그런데 한국 측이 2005년에 주권의 상징으로 독도문제를 거론하니까, 거기에 대응해서 일본의 보수 세력들의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과 내셔널리즘을 부각시키는 운동이 결합하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것이 일본이 적극적으로 대응하게 되는 근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최: 예. 결국은 일본 국내의 역사 수정주의와 같은 움직임이 영토문제로까지 비화하였다는 말씀이시네요.

진: 따라서 일본 측의 1995년 이후의 보수화 물결 속에서 역사 바로 세우기 운동 등이 일어나고 있는데, 그 시기에 한국에서 역사와 영토문제를 결부시키는 움직임이 있었고, 일본이 다시 그에 대응하기 위해서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인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 예. 양국의 움직임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상황의 변동을 초래했다는 것이네요.

진: 그 결과 일본 측의 교과서에 그런 움직임들이 반영되게 되었고, 독도문제에 대한 홍보도 적극적이고 공세적으로 변화되었으며, 일본 정부의 독도 문제에 대한 정책적 대응과 자민당 정권의 속성 변화 등도 그러한 흐름의 선상에서 볼 수 있습니다. 

손: 동북아시아의 해양영토 문제에만 초점을 맞추어 보면, 일본과 러시아의 문제, 일본과 중국의 댜오위다오 문제, 우리는 부인하고 싶지만 독도문제 등이 존재하는데, 큰 틀에서 보면 1960년대, 1970년대, 1980년대까지는 외교 안보적인 요인과 전후 체재 요인으로 인해서 수면하에 잠재되어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손기섭 부산외국어대 교수
손기섭 부산외국어대 교수

최: 예. 수면하에 잠재되어 있던 것이 어떤 계기로 드러나게 된 것인지요?

손: 1990년대 들어서면서 점차 국제환경 또는 해양환경의 변화, 특히 UN해양법 협약으로 섬에 대한 국제법적인 해석이 달라지자, 각국이 해양영토에 대한 문제 제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최: 예. 국제법적인 환경 변화가 독도문제에 영향을 미쳤다는 말씀이시네요.

손: 그 과정에서 일본은 중국과 러시아에 대한 기존의 입장을 변경하기가 어려운 상황에 봉착했습니다.

최: 예. 국제적인 환경 변화가 일본 측의 영토에 대한 입장 변화를 초래했다는 말씀이신군요.

손: 그렇죠. 그런데 일본이 중국과 러시아에 대해서는 수세적이며, 불리한 입장으로 몰리고 있는 반면에 독도에 대해서는 공세적인 입장을 취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 상황으로 인해 그동안 대응을 하지 않고 있던 일본정부가 독도문제를 거론하면서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고 한국이 불법점거하고 있다고 하게 된 것입니다.

최: 예. 일본이 2000년대에 들어서서 그렇게 공세적으로 나왔죠.

손: 일본이 그런 주장을 하게 되자, 한국 정부도 좀 더 적극적인 관리와 공세를 펼 수 있는 상황이 되었고, 그 시점에 참여정부의 조용한 외교에서 공세적인 방어형태로의 전환이 있었던 것입니다.

김: 한일 간의 국내 정치 변화도 영향을 끼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아가 독도 문제가 불거지게 된 보다 중요한 이유는 2004년의 한일 해양경계획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손: 그 문제는 1998년 신 한일어업협정 때에 어느 정도 결착이 된 것이 아닙니까?

김: 그 문제가 결착된 시점이 노무현 정부 때입니다. 신 한일어업협정 때에 문제가 된 것이고, 그 후로도 한국과 일본 국내에서 기점을 둘러싸고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가 있었습니다.

최: 예. 한일어업협정과 관련해서 독도문제가 상당한 논란이 되었었죠.

김: 일본에서도 독도주변 해역을 중간수역으로 정한 것에 대해서 문제제기가 있었고, 그 영향으로 시마네 현 주민들이 ‘다케시마 날’을 조례로 제정한 것입니다. 결국은 해양경계획정 문제가 아직 잠정적인 것으로 남아있는 상황에서 일본 국내 정치의 내셔널리즘적인 흐름과 결탁한 것이라고 판단됩니다.

최: 해양경계획정이라는 것이 국가적인 이익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복잡하지 않습니까?

손: 영토 문제가 어느 정도 정리되어야지 바다의 경계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배타적경제수역(EEZ) 문제를 결정하는데 영토 문제가 확실하지 않으면 정리가 쉽지 않은 면이 있고. 외교적 타협이라든가 협상 기술에 의해서 중간을 취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최: 예. 독도 주변 해역을 중간수역에 포함시킨 것도 그런 방식이었죠.

손: 한일어업협정은 UN해양법협약으로 인해 1996년부터 새로운 협정을 체결해야 할 필요성에 직면한 상태였고, 1996~98년까지 한일 간에 새로운 어업협정을 위한 협상을 하고 있는 도중에 한국이 IMF 위기를 맞았으며, 그 과정에서 한국은 정권교체가 있었습니다.

최: 예. 당시에 그랬죠.

손: 그 정권교체가 이루어지자마자 1998년에 일본은 1965년의 한일어업협정을 파기해버렸으며, 한일 간에는 어업에 대한 제도적 규칙이 없는 상황이 초래되었습니다. 그래서 협상도 난항을 맞게 되고, 한국이 불리한 입장이 처하게 되었습니다.

최: 예. 당시에 일본이 일방적으로 파기해버려서 한참 논란이 되었었죠.

손: 당시 김대중 정부는 굉장히 실용적인 외교정책, 경제위기 극복정책을 내세우고, 여러 가지 협상 단계를 걸치기는 하지만 울릉도와 일본의 오키섬을 기준으로 해서 신 한일어업협정을 체결했는데, 그 중간에 있는 독도가 중간수역으로 설정되었던 것입니다.

최: 예. 당시에 독도가 중간수역에 포함된 것에 대해서 많은 논란이 지금까지 있습니다.

손: 김대중 정부는 대중문화의 개방과 2002년 월드컵 공동개최 등으로 일본에서 적극적인 경제협력을 받은 것도 사실이며, IMF 위기 극복에는 공헌도가 높습니다. 그러나 비록 어업협정이 영토문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독도가 중간수역에 포함된 것은 영토문제라는 차원에서는 간접적으로 불리한 입장, 미래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상황을 초래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 이 문제는 민감한 문제이기도 한데, 당시에 협정에 참여한 국제법 전문가들도 찬반이 확실하게 갈라진 부분도 있고, 어업협정과 영토문제를 연관시키지 말라는 의견도 있는데, 과연 어업협정과 영토문제가 관련성이 있는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손: 직접적인 관련성은 없습니다. 어업협정과 영토문제는 개별문제이고요. 그런데 영토문제라는 것이 국력의 차이가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여러 외부적인 요인들이 종합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문제입니다. 여러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국제사법재판소 혹은 미래의 양국 정부의 외교정책 결정에 영향을 줄 수는 있다고 봅니다. 따라서 직접적이지는 않지만 중장기적으로 간접적인 영향은 미칠 것이라고 봅니다. 

최: 김영수 선생님. 신 한일협정은 파기할 수 있는 것입니까? 현재 정권이 바뀔 때마다 입장이 달라질 수 있고, 여론도 달라지기도 하는데 그럴 경우에 새로운 협정을 체결할 수 있겠습니까?

김: 제 전문영역은 아니지만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국가는 연속되고 있으므로 국가 간의 약속은 가능한 지키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최: 신 한일어업협정이 가지는 문제가 외교적으로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김: 손 선생님 말씀처럼 외교 문제를 하나 하나씩 보는 것이 아니라, 국가차원에서 장기적인 신뢰를 쌓아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서는 하나에 국한해서 볼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진: 1998년의 신 한일어업협정은 사실 한국과 일본이 1994년 이후부터 계속해서 협상을 해왔었지만, 한국이 잘 응하지 않자 일본이 1998년에 일방적으로 파기를 했습니다. 당시의 어업교섭 자료에 따르면 일본이 어업협정을 파기하겠다고 지속적으로 주장하면서 한국을 압박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최: 예. 일본이 어업협정 파기를 외교적인 압박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군요.

진: 중요한 것은 일본 측의 어업협정 파기로 인해 한일 간의 해양이 무법지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당시는 주로 한국 어선이 일본으로 가서 조업하던 시기였는데 우리 어선들이 일본 측에 나포되는 일이 많았습니다.

최: 예. 그래서 당시 사회적인 문제가 되기도 했었죠.

진: 그래서 이 무법지대를 관리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고. 그리고 당시의 협상 담당자들은 이 문제를 영토문제와 분리해서 해양경계문제로 본 것입니다. 그 당시 한국의 외교 당국자들은 영토문제와 해양경계문제를 분리해서 다루고 있었으며, 당시의 주류 국제법 학자들의 해석으로도 독도를 섬이 아닌 암석으로 분류하고 있었던 것도 사실이고요.

최: 예. 교섭 과정에서 독도와 관련해서 영토문제를 다룬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시군요.

진: 예. 따라서 저는 현재 해양질서에서 나타나고 있는 국제법 규범화는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지금의 해양질서를 계속 유지하면서 분쟁으로 가지 않는 방향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최: 독도문제는 중요한 문제로 한일 간의 문제도 있지만, 미국과의 관계 속에서 독도문제 위상은 어느 정도일까요?

김: 독도문제에는 국제정치적 성격이 있다고 보는데, 그 동안 독도문제를 이해할 때 한일 양국의 영유권 문제로만 보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넓은 의미로 보면 독도문제는 동아시아 국제정치의 한 측면이기도 합니다.

최: 예 그렇죠.

김: 따라서 한일 간의 뜨거운 쟁점으로 부각시키지 않고 적절하게 잘 관리를 할 수 있는 문제인데, 우리가 너무 직접적으로 한일 간의 영유권 문제로 확대시키다보니 역설적으로 문제가 확산되고 심화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최: 그렇다면 어떤 해결 방법이 있을까요?

김: 이 문제를 동아시아 전체라는 시점에서 본다면, 그렇게 첨예하게 다룰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국과 일본, 한국의 미래 방향성을 고려하면 일본도 납득이 가능하고, 미국과도 협력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최: 이 내용은 외교적 해결 방안이라는 주제로 논의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과연 독도문제가 외교적으로 해결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진: 먼저 미국의 역할에 대해서 질문을 하셨는데, 미국은 1951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맺으면서 독도문제에 대해 애매한 입장을 취했습니다. 그것이 독도문제의 원흉이 되었습니다. 

최: 예. 미국의 입장은 그렇다고 일반적으로 얘기하고 있죠.

진: 그런데 그것을 미국이 해결하려는 의지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현재의 체재를 유지하기 위해 동아시아 질서를 만들었는데, 그 문제를 다시 거론하는 것에 대해서도 미국은 굉장히 조심하고 있으며, 관리하려는 입장이므로 누구 편도 들지 않습니다. 

최: 미국의 입장은 잘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독도문제의 외교적 해결가능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진: 저는 외교적 해결 가능성은 없다고 봅니다. 미국조차도 그럴 의향이 없고, 한국과 일본도 외교적으로 해결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그럴 의지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손: 특히 동아시아 차원에서 본다면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미국 주도에 의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재가 국제정치체제의 기본을 이루고 있습니다. 따라서 미국의 입장에서는 영토문제가 전면으로 부상되어 현 체재의 근간을 흔들고 새로운 현상변경을 시도하는 것은 위험 요인이 증가하는 것입니다.

최: 미국의 입장에서도 독도문제가 부각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네요.

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 체제가 1951년 성립된 이후에 동아시아 전체의 질서를 유지하고 있는데, 그 이전에 가쓰라-테프트 밀약과 같은 경우를 보면 우리가 일본과 영토문제라든지 그런 문제에 부딪쳤을 때 미국은 우리 편을 들어준 적이 없습니다. 

최: 예. 역사적으로 그런 경향이 있죠.

김: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 독도 영유권 문제가 애매하게 처리된 것은 결과적으로 카이로 선언과 포츠담 선언에서 제시했던 반제국주의 원칙을 저버린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 그렇죠. 원칙을 어긴 것이라고 할 수 있죠.

김: 결국 미국은 반드시 선택해야만 하는 상황이 되면 일본의 입장을 지지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독도문제를 첨예한 문제로 만들어서 대응하면 오히려 위험해질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최: 그렇다면 외교적으로 해결이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김: 독도문제의 외교적인 해결은 절차적으로 본다던지, 동아시아의 국제정치 역학 관계로 볼 때 거의 불가능한 것이라고 보기 때문에, 우리가 가능하면 문제를 최후 상황까지 가져가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라는 틀은 미국이 주도권을 쥐고 있는 부분이 크지 않습니까? 그 상황에서 한국이나 일본이 맘대로 변경시키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문제라고 보고, 그렇다면 외교적 해결 노력이라는 것도 그 틀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손: 독도문제의 완전한 외교적 해결이라고 하는 것은 제 생각에는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영유권을 관리하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는 마음을 급하게 먹을 것은 없다고 봅니다.

최: 예. 여유를 지니고 대처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리하다는 것입니까?

손: 일본이 아주 생각을 잘못해서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한, 현재의 현상변경은 있을 수 없으니까 우리가 너무 감성적으로 대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일본도 단기적으로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최: 그러면 일본의 의도는 무엇일까요?

손: 일본의 경우는 훗날 큰 국제 환경변동이 있을 때 자기들이 영유권을 주장했었다는 최소한의 증거를 남기고 싶어 하는 정도이지 이것을 외교적 해결을 위한 단계적 접근이라고는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최: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요?

손: 현재 상황에서 한일 양국은 독도문제를 너무 전면에 내세우지 말고, 양국 간의 고유한 관계의 발전, 경제협력, 미래지향적인 협력을 더 중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며, 독도문제 해결에 너무 몰두하다 보면 외교적 함정에 빠질 수도 있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최: 그러면 마지막으로 독도문제를 외교적으로 풀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방안이 있을 것인지에 대해서 간단하게 말씀해주시고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김: 저는 기본적으로 체제가치를 중시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동아시아에는 과거사 문제라든지, 경제협력, 안보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중첩되어 있습니다만, 한국과 일본이 동아시아에서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함께 노력하고 공유하는 체제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 예. 체제가치라는 측면에서 독도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김: 예. 그러한 점에서 합의점을 도출해가지 않으면 동아시아 전체가 자유와 평화를 유지하기 어려우리라 생각합니다.

최: 체제가치에 중점을 두고 그것을 근저에 둔 해결 방안을 모색하자는 말씀으로 알겠습니다.

 

손: 동아시아의 국제정치 역학을 고려한다면, 어떤 보편가치를 확립해두고 그것을 기반으로 외교적인 역량을 발휘해가면서 우리의 실효지배를 공고하게 해 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 예. 보편적인 가치에 입각한 외교전략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인데, 약간 추상적이긴 합니다.

손: 지난 30년간 우리는 현상유지를 해왔으며, 그러한 점에서 우리에게 유리한 면도 있으니까, 지나친 외교문제로 발전하지 않도록 관리하면서 우리의 외교역량을 키워나가다 보면 좀 더 우리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발전해 갈 가능성이 있다고 봅니다.

최: 김 교수님은 체제가치라는 것에 중점으로 두고 자유민주주라는 기조를 공유하는 입장에서, 그리고 손 교수님은 보편적인 가치를 중심으로 긴 호흡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것이 좋다는 말씀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진: 샌프란시스코 체제 안에서 영토문제라는 것은 나름 더 이상의 현상변경을 하지 않는다는 틀을 갖추고 있지만, 민족주의적인 감정이 분출되다 보면 충돌의 위험은 항상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 예. 그러면 어떤 방법으로 대비할 필요가 있을까요?

진: 한국이 독도영유권 공고화를 위한 자료의 축적과 같은 활동을 통해 국제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외교활동도 중요하지만, 그와 동시에 충돌을 대비한 플랜도 만들어 둘 필요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 예. 여러 가능성에 대비해 둘 필요가 있다는 말씀이시네요.

진: 장기적으로 본다면 동아시아 사회가 유럽처럼 개방된 사회가 될 가능성도 큽니다. 그런 시대가 온다면 공동안보와 같은 생각도 등장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영토문제가 지니는 의미가 상당히 작아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최: 예. 장기적으로 봤을 때 그런 가능성도 있죠.

진: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 외교적으로 좀 더 노력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며, 그런 노력 속에서 영토문제가 지니는 의미가 점차적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최: 예. 그러니깐 한일 양국이 상호교류, 협력, 협업, 그리고 평화라는 기조를 근간으로 해서 그것을 활성화, 심화시켜 나가는 것이 영토문제를 해소시키는 하나의 방안이 될 것이며, 그것이 공동안보와도 연결될 것이라는 말씀이네요.

손: 한일관계의 경우는 양국 관계가 좋을 때는 문제가 그다지 없지만, 양국 간에 문제가 발생하면 국제적인 분쟁으로 비화될 수 있다는 것이 외교적으로 불안 요소인데, 이러한 문제에 대비하기 위해 정보를 공유하면서 위기관리를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최: 너무 낙관도, 비관도 하지 말고 리스크를 관리해 나가면서 협조할 것은 해나가자는 말씀이시군요.

손: 예. 일본은 우리와 자유민주주의, 비핵, 평화 등의 가치를 공유하는 이웃 국가이므로, 영토문제는 학문적, 정책적으로 준비를 철저히 하되, 외교는 유연하게 해나가야 하고, 특히 통일 시대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는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고요.

최: 예. 대비는 하되 외교는 유연하게 하자는 말씀이시고.

손: 한일관계가 기성정치인이나 기성세대의 한일관계가 아니라, 젊은이들의 한일관계가 될 수 있도록 생각을 깊이 하고 상호의존성이 높은 관계라는 관점에서 평화적인 협력을 계속 유지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 예. 잘 알았습니다. 오늘 논의한 내용을 크게 정리해 보면 독도문제의 외교적 해결은 첫째 단기적으로는 어렵다는 것과 둘째 체제가치를 중시하고 보편가치에 입각한 장기적인 해결방법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말씀으로 정리할 수 있겠습니다. 멀리서 이렇게 참석해서 좋은 말씀을 해주셔서 대단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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