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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없다” 해외로…정부 국내 인력지원책 부재
“미래 없다” 해외로…정부 국내 인력지원책 부재
  • 이민선 기자
  • 승인 2003.10.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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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정원 미달 원인 점검
 

지난 9월 24일 국정감사에서는 놀랄만한 통계치가 발표됐다. 10년 사이 석박사과정생 중퇴가 최고 3.9배 증가했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한국 대학원의 실태와 고단하기만 한 국내 대학원생들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 같아 씁쓸하다. 더욱이 학문의 길을 포기한 그들이 일자리를 찾지 못해 동네 보습학원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현실은 처절하기만 하다. 학생들이 암울한 국내 대학원 현실을 피해 해외로 나가거나 학업을 아예 포기하는 실태를 대학, 기업, 정부 세 수위에서 점검했다.

 

최근 각 대학에서는 ‘학석사 연계과정’이나 ‘예비대학원생 제도’를 도입하기 바쁘다. 지난 9월 24일 국정감사에서 10년 사이에 석박사과정생 중퇴가 최고 3.9배 증가했다는 발표된 것처럼 중도 포기하는 대학원생이 많아졌고, 대학원을 지원하는 학생이 해마다 줄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같은 방법이 ‘대학원 엑소더스’를 막을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일지는 미지수다. 이미 많은 대학원생들이 한국에서 석·박사 과정을 밟는 것이 ‘밝은 미래’가 될 수 없음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ㅅ대 정치외교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김 아무개 씨의 경우 아예 박사과정 진학을 포기했다. 더 이상 공부하고 싶지 않은 이유도 있었지만, 해외박사를 우대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공부할 자신이 없어서였다. 국내에서 박사 학위를 받을 수도 있지만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획득하는 것이 교수 되는 길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고려하지 않고 있다. 현재 김 씨는 대학원에서 했던 수많은 논의들을 접고 동네 보습학원 강사를 하며 3개월째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다.

 

교수들도 유학 권유

 

사실 이러한 분위기는 ‘현실’을 근거로 해외유학을 부추기는 교수사회의 책임이 크다. 지난 8월 미국 코넬대에서 일본사 전공으로 박사과정에 들어간 이 아무개 씨는 유학을 가기 전 여러 교수들을 만났었다. 반드시 미국 유학에 가야 하는지 회의적인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씨가 만난 교수 모두가 한국에서 일본사를 공부하기 힘들다는 ‘현실적인’ 이유를 들며 유학을 권유했다. 개인적으로 좋은 기회임에 틀림없었지만 이 씨는 “씁쓸함을 감출 수 없었다”라고 회고했다.

 

ㅇ대 장 아무개 교수 역시 이와 비슷한 상황을 경험했다. 장 교수는 모 지방대에서 상법 교수 채용 소식을 듣고 그 학교 교수에게 국내박사학위 소지자를 추천했지만. “우리 학교가 비록 지방에 있으나 교수들의 수준이 높아 외국 박사 학위 소지자를 뽑을 예정이다”라는 말만 들었다. 그 후 장 교수는 “이러한 현실이 일부 영향력 있는 교수들의 선호도 때문인 것은 아닌지, 정말로 외국박사 학위 소지자들이 보다 능력있는 학자들인지 의문이 생겨나기 시작했다”라고 속내를 털어놨다.

 

모순된 학교정책도 대학원 정원미달 현상에 일조를 하고 있다. ㅇ대 김 아무개 교수는 최근 ㅇ대와 일부 대학이 국제 경쟁력을 이유로 교수 임용에 영어강의 능력을 자격 요건으로 내세우는 것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다. 국내에서 석·박사학위를 받는 이들이 영어 강의 능력을 현실적으로 보유할 수 없어 해외 대학원, 특히 미국 대학원으로 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많은 대학이 연구중심대학을 선포하지만, 모순된 정책을 만들어내 제 살 깎아먹는 짓을 하고 있다”라며 꼬집었다.

 

학연을 고집하는 기업들

 

지방대 이공계 대학원 정원미달의 경우에는 기업의 책임을 짚고 넘어가야 한다. 고질적인 학연에 의한 선발이 아직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국내 한 자동차 연구소에서 선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이 아무개 씨는 “국내 석·박사 출신이기 때문에 홀대받는 경우는 없다”라고 말한다. 그가 있는 연구실에는 박사학위 소지자가 총 4명으로 이 가운데 3명이 국내 박사 출신이고, 연구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석사 출신도 국내 대학 석·박사 출신이다.

 

문제는 연구원 출신 대학이 몇 몇 대학에 편중됐다는 것. 이 연구소에는 ㅅ대, ㅎ대, ㅇ대 출신이 많은 편이고, 그 중에서 ㅅ대 출신은 1/3에 이른다. 이 씨는 “본사에서 공채로 뽑는 경우도 있지만, 연구소에서 선발하는 경우 경력 연구원은 연구실 내 지인을 통해서 추천받는 경우가 보통이고, 신입연구원들은 그간 선배 연구원들이 쌓아온 이미지에 따라 해당 학교 출신자들을 선발한다”라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지방대 학생들은 수도권 대학으로의 편입 또는 수도권 대학원으로 진학을 결정할 수밖에 없고, 지방대 대학원은 공동화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헛다리 짚는 정부

 

그렇다면 국가 차원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일까. 서울대 김대식 교수(물리학부)는 정부의 국내 연구 인력 양성 방식이 잘못됐다고 비판한다. 예컨대 노무현 정부가 지난 7월 30일 처음 시행한 ‘대통령 과학장학생 제도’의 경우 해외장학생에게 4년간 학비 및 체재비 등 실비를 연구장려금 형태로 지원하나, 해외 대학원에 진학하는 학생들에게 지원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미국 대학원에 입학한 이들은 연구조교 및 수업조교로 활동하면서 등록금과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오히려 그 지원금을 국내에서 연구하는 석·박사 과정에 투자하고, 현재 지원금을 더욱 늘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뇌한국 프로그램으로 60만원을 받는 국립대 박사과정생의 경우 40만원을 등록금으로 저축하고 나머지 20만원으로는 생활하고 있는데, 결혼을 했을 경우에는 생활이 도저히 불가능한 액수다. 이런 이유로 김 교수는 등록금을 전액 면제하고 한 달에 1백만원 정도 생활비가 보조돼야 한다고 말한다.

 

또한 이공계에서는 박사후 과정 경력이 중요하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충분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서울대 기초과학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는 안영환 씨는 “개인적으로 현재 과학재단에서 1년 동안 2만 달러를 지원하는 것은 미흡하다고 생각이 든다”라고 지적하고, 박사후 과정에 대한 좀 더 많은 지원이 좋겠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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