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00:05 (금)
‘세계 최고’의 대학 만드는 길
‘세계 최고’의 대학 만드는 길
  • 교수신문
  • 승인 2020.02.14 10: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민경찬 논설위원(연세대 명예특임교수, 과실연 명예대표)
민경찬 논설위원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과실연 명예대표)

요즈음 한 국가의 한 지역에서 나타난 신종 바이러스가 삽시간에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고, 사람들이 서로 만나기조차 기피하는 상황을 만들었다. 이제는 정말 질병, 미세먼지, 기후변화, 재난, 물, 식량, 인구 등의 이슈들이 지구촌 전체의 문제가 되었다. 일자리, 양극화를 비롯하여, AI, 로봇 등과 공존하며 ‘인간’의 정체성을 지키는 일도 큰 과제다.

영향력이 큰 국가들이 갈수록 자국 우선주의를 선택하면서 지구촌이 파편화되며 세계 질서가 더 혼란스러워졌다. 우리 사회도 마찬가지다. 자살율, 이혼율, 저출산, 낙태율, 고령화는 세계 1위권, 회계 투명성은 최하위권인데, 윤리, 공정, 정의에 대한 보편적 기준까지 지도자들이 ‘정치적’, ‘집단적’ 이익에 따라, 그것도 아무 거리낌 없이 바꿔버리는 전대미문의 상황이다.

이와 같이 우리 일상의 삶과 다음 세대에 큰 영향을 주는 지구촌과 우리 사회의 복잡한 문제들을 누가 바르게, 진지하게, 제대로 해결해 나갈 수 있을까? 4~5년 임기의 정치인, 이슈 제기에 바쁜 언론인, 규정에 얽힌 공무원. 이윤추구 중심의 기업인 등에게 기대할 수 있는가? 

긴 호흡으로 본질적인 관점에서, 인간의 본성을 찾아 나서고, 사회적 현상들의 근저를 따지며, 자연의 근본 원리를 탐구하고,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며, 시대정신과 역사의식, 추구해야 할 가치를 논해야 하는 대학이어야 하지 않을까? 특히, 사회 문제 해결에 크게 영향을 주는 정치인, 언론인, 공무원, 기업인, 지식 전문가 등의 역량과 가치 판단 능력을 키워주는 곳이 대학이 아닌가?

그런데 오늘의 우리 대학 4년 임기 운영자들의 관심은 어디에 있는가? 10여 년 동결된 등록금, 입학생 수 급감 등으로 재정확보에 급급한 상황이다. 그래서 정부의 재정지원사업이 발표되면, 한 달여 만에 학사구조, 교육과정을 바꾸기도 하며 평가지표 맞추기에 총력을 기울인다. 이 과정에서 그간 발전시켜온 틀도 포기하고, 내부 반발도 무시할 수밖에 없다. 정부 정책이 자주 바뀌어도 순응하며 지원 많이 받으면 ‘좋은 대학’이 되는데, 대학 스스로 추구하는 방향은 존재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생존 자체가 우선이 되어버린 대학들에게, 지구촌과 우리 사회는 어떠한 기여를 기대할 수 있을까? 최소 5년 뒤 전 세계적인 변종 감염병이 다시 올 것이라고 한다. 사스, 메르스, 신종 코로나 등 새로운 감염병이 나타나는 사이클이 좁아졌다. 이와 더불어 앞으로 우리가 여러 면에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할 텐데, 교육과 연구에 대한 구태의연한 ‘단타적인’ 정책으로 무엇을 성취할 수 있을까? 

최근 봉준호 감독은 우리에게, 신종 바이러스 불안 가운데서도 환희와 감동으로 들뜨게 하며 새로운 희망과 자신감을 주었다. 한국의 상황, 언어로 만든 영화 『기생충』이 전 세계가 공감하는 메시지를 던지며,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아카데미상을 휩쓴 것이다. 이는 그의 20여 년에 걸친 시행착오와 도전의 결과이며, 자유롭고 독창적인 자신의 방법과 스타일을 만들어 온, 끈질 긴 노력이 인정받은 것이다.

정부와 대학은 5년 단위 정권, 4년 임기의 총장이라는 구조적 한계를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 다른 나라는 수십 년 걸쳐 실력을 쌓아온 AI, 소재·부품 등의 분야에, 갑자기 천억, 조 단위의 투입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대통령 관심 프로젝트는 정권이 바뀌면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었다. 대학에서는 ‘학풍’이라는 용어는 안 들리고, 단편적인 ‘수치’들만 회자된다. 20~30년, 대를 이어가는 연구는 불가능한 구조다.

봉준호 감독에 의한 한국 영화. BTS를 비롯한 K-팝 등 한반도 경계를 넘어 ‘세계 최고’가 된 영역들이 늘고 있다. 대개 20년 이상의 내공을 쌓은 결과다. 정부와 대학은 고등교육 영역도 기존의 틀을 깨고, 세계 최고의 꿈과 자신감을 가지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를 기대한다. 이는 세계 대학 순위가 아니고, 지구촌과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 해결에 교육과 연구의 초점을 맞추고 가장 앞장서서 기여하는 일이어야 한다. 우선 긴 호흡, 독창성, 자율성 기반으로 “한 방향에서 내공”을 쌓게 해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