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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서남북 뮤직톡]서양인에게 서양음악을 설명해 주었더니
[동서남북 뮤직톡]서양인에게 서양음악을 설명해 주었더니
  • 교수신문
  • 승인 2020.02.14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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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경쟁시대, 문화예술을 익히면 경쟁력이 생긴다
김형준 경영&뮤직컨설턴트

봉준호 감독 영화 '기생충'이 2020. 2. 9,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각본상, 국제영화상, 감독상, 작품상을 석권하여 아카데미 역사를 새로 썼다. 아카데미 92년 역사상 최초로 비영어 작품으로 작품상을 탄 것이다. 이번 수상을 통해 미국 영화계 및 아카데미가 등 국제영화에 관심이 커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시아계 감독이 감독상을 수상하기는 대만의 리안 감독 이후 처음이나 그의 수상작 두 편 <브로크백 마운틴(2006), '라이프 오브 파이(2013)> 은 영어로 제작된 것이다.

어디 이뿐인가. 방탄소년단은 기록상으로도 비틀즈를 능가하고 새로운 음악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서양문화에 접목하여 해외 팬들을 열광시키고 있다. 이러한 높은 문화 수준이 곧 국가의 경쟁력이다. 

학창시절부터 앞으로 치열한 문화 경쟁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 들어왔지만 지금 바로 눈앞에 전개되고 있다. 필자는 음악을 통해 해외업무 할 때 큰 힘이 된 경우가 많았다. 거래선과 명함을 교환하는데 상대방 회사 상호가 펠릭스였다. 나는 직감적으로 상대방에게 “멘델스존 음악 좋아하시죠?”라고 물으니 상대방이 깜짝 놀라면서 “어떻게 아셨죠?“라고 하였다. 멘델스존은 가문의 이름이고 본명이 펠릭스이다. 초면이었지만 멘델스존을 위시한 여러 음악 이야기로 꽃을 피우면서 친밀해지고 상담을 쉽게 풀어 갈 수 있었다.

필자는 호주 에너지 기업과 협상을 위해 호주 남서부 도시 아델라이데를 방문하였다. 담당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차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베토벤 가곡 아델라이데를 아는지 물었다. 금시초문이라고 한다. 놀란 사람은 오히려 필자였다. “아델라이데에 살면서 아델라이데를 모른다니!” 그분들에게 아델라이데의 작곡 배경과 내용을 이야기해주고 음악세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양인이 서양인에게 서양음악에 대해 설명해 주다니... 그 이후 자연스레 협상 분위기를 필자가 주도해가는 형국이 되었다. 

아델라이데는 봄에 알프스 산자락에 피는 보랏빛의 야생화로 깨끗하고 귀여운 이미지를 주며 여자 이름으로도 쓰인다. 이 꽃의 이미지가 시인 마티손의 마음을 사로잡아 시를 쓰고 여기에 베토벤이 25세 때 곡을 붙인 것으로 사랑하는 여인을 향한 열정적인 찬가이다. 마티손은 슈투트가르트 극장장을 지냈으며 많은 노래 가사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베토벤은 모두 86곡의 가곡을 남겼는데 이 곡은 젊은 시절 작곡한 것으로 설렘과 동경으로 차 있다. 베토벤의 음악에 대한 열정은 그가 세상 떠나는 순간까지도 변하지 않는다. 베토벤 교향곡 9번 4악장 합창의 가사 내용을 보면 그가 꿈꾸는 이상 세계를 향한 열정이 엄청남을 알 수 있다. 아델라이데  노래에 등장하는 여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마지막 부분 가사는 베토벤 자신의 말년의 모습을 연상한 것은 아닐까 상상해 본다. 아델라이데 시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나뭇가지 사이 빛나는 햇살에 부드럽게 둘러싸인 봄의 들판에 나는 외로이 방황하네, 
거울 같은 강물, 알프스 눈 속, 저녁노을 황금빛 구름, 밤하늘 별빛에서 네 모습이 빛나네, 
언젠가 내 무덤에는 재가 된 내 심장의 꽃이 피어날 거야. 보랏빛 꽃잎 하나하나에 
네 이름 또렷이 빛나리.

일반적으로 문화예술 분야는 전공자가 아니면 거리가 멀다고 생각하기 쉽다. 접근조차 할 생각을 아예 하지 않는다. 그러나 보통 사람이라도 이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식견을 높이면 생각의 폭을 넓히고 창의성이 증대되며 대인관계도 넓어지게 된다. 전공자들 못지않게 보통 사람들의 식견 또한 중요하다. 시장이 형성되어야 좋은 제품이 나오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모든 예술 분야는 서로 통한다. 예컨대 시를 소재로 노래를 만들고 소설 원작을 대본으로 만들어 오페라를 작곡한다. 평소 연극을 좋아한 모차르트는 연극 관람을 많이 하여 음악의 소재를 찾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시와 음악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주옥같은 가곡은 감명 깊은 시에 곡조를 붙여 탄생한다. 시인과 작곡가는 혼신의 힘을 다해 명곡을 탄생시킨다.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는 것과 같다. 필자가 지금까지 만나본 예술인 중에서 대충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우리 사회도 이러한 열정이 파급되기를, 문화예술을 일상과 가까이 하기를 기원해 본다. 음악에 조예가 깊은 정연복 시인은 음악 용어를 사용하여 ‘음악과 인생’을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꽃길을 걸을 때는 라르고, 꽃들과 눈 맞추고 얘기하며 '매우 느리게' 걸어가요. 
산행을 할 때는 안단테, 하늘도 보고 바람소리 새소리 들으며 '느리게' 한 발 한 발 디뎌요. 
일상의 삶은 모데라토, 게으름과 성급함은 버리고 '보통 빠르기로' 생활해요.
도움의 손길을 내밀 때는 알레그로, 재지 말고 멈칫하지 말고 '빠르게' 내 밀어요. 어쩌다 사랑의 기회가 찾아오면 비바체, 두려워 말고 '빠르고 경쾌하게' 행동해요.
인생의 시간은 프레스토, 바람같이 쏜살같이 '매우 빠르게' 흘러가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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