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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 피드백있는 강의 선호…강의 외적 만남도 중요시
학생들, 피드백있는 강의 선호…강의 외적 만남도 중요시
  • 이민선 기자
  • 승인 2003.10.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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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스케치 - 학생은 이런 강의를 원한다
 

“출석을 불러도 안들어가는 경우가 있고, 부르지 않아도 들어가는 수업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정말 수업을 듣고 싶어서 출석확인하지 않아도 들어갈 수 있는 수업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출석 확인을 하지 않아도 학생들이 수업에 들어오는 ‘좋은 강의’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서울대생들이 학생들이 그리는 ‘좋은 강의’의 요건이 무엇인지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 10월 9일 서울대 멀티미디어 강의동에서는 서울대 교수학습개발센터(센터장 전형준 교수)가 주최한 2003학년도 학생공개토론회 ‘학생은 이런 강의를 원한다’가 열렸다. 올해로 세 번째를 맞이하는 토론회에서 학생들은 교수의 절대적 권한 지역으로 생각돼왔던 수업에 대해서 문제점을 거침없이 토해냈다.

 

보고서 첨삭해줬으면

 

이날 가장 많은 논의를 촉발시킨 부분은 ‘학생 평가’였다. 인문대학 정진경 씨는 상대평가제 때문에 학생들이 이미 아는 내용의 강의를 듣는 경우도 많다고 꼬집고, 절대평가제 도입을 주장했다. 예를 들어 제2외국어의 경우 중급 정도의 프랑스어나 독일어를 구사할 줄 알면서도 초급을 신청해, 처음 배우는 학생들은 평가 상의 불이익을 우려해 수강신청을 꺼리게 된다는 것.

 

평가 중심의 수업운영이 ‘학점 따기’ 경쟁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왔다. 학생들이 어떻게 답안을 쓰든 학점을 주면 그만이라는 태도로 인해 학생들이 시험결과와 보고서 점수에만 신경 쓴다는 것이다. 법과대학 백광균 씨는 “지금까지 시험지를 채점받아 돌려 받은 것은 단 한 번이었고, 보고서를 첨삭받아 돌려받은 것은 두 강좌 뿐이었지만, 부족한 점을 짚어볼 수 있는 계기였다”라고 말해, 피드백있는 수업을 요구했다.

 

인문대학 최선영 씨는 학생평가 시 ‘평가방법의 세분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최 씨는 “강의를 듣다보면 ‘열심히’ 했는데 터무니없는 점수가 나오거나,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는데 점수가 잘 나오는 경우가 있다”라고 말하고, 세부적인 평가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언급했다.

 

수업운영에 관한 지적도 쏟아졌다. 백광균 씨는 “대형강의에서 상호소통은 대단히 원숙한 기술을 요구하는 것 같다”라며 수업경험을 털어놨다. 백 씨에 따르면 어떤 수업의 경우에는 별로 잘 되지도 않는 토론을 억지로 끌어내려다가 강사와 학생 모두가 멋쩍어 하는 사례가 있었고, 교수의 진행미숙이 눈에 거슬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어설프게 토론식 수업을 할 거라면 애초부터 하지 않는게 낫다는 말이다.

 

많은 강의가 학생들의 호기심을 유발하지 못하는 점도 문제점으로 언급됐다. 최선영씨는 “강의를 들은 후 쟁점들을 고민하고, 관련 후속강좌을 수강할 정도로 지적 호기심을 자극해야 하나 그러지 못하고 있다”라며 안따까워 했다. 최씨는 ‘강의 난이도 조절 실패’를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했다.

 

학생과의 대화에서 소외 문제 조심

 

또한 학생들은 교수와 좀더 많은 대화를 나눴으면 좋겠다고 한 목소리를 냈다. 토론회에 참가한 한 학생은 “스승과 제자 사이에 격의없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면담시간을 공식화한 강좌를 두 번 밖에 보지 못했다”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자연과학대학 정영균 씨는 한 학기 수업이 모두 끝난 후 교수와 함께 하는 자리가 도움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정 씨는 “교수님께 솔직한 강의 평가를 말씀드리기도 하고, 상급단계로 나가기 위해 무얼 해야 할지를 들을 수도 있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사적인 자리에서도 주의할 점이 있다. 다름 아닌 소외의 문제. 최선영씨는 “그런 자리가 강의에서 들을 수 없는 해당 학문의 특성을 듣거나 진로 문의가 가능하지만, 커뮤니케이션 소외의 문제를 주의해야 한다”라고 언급했다. 예를 들어 술자리의 경우 술을 마시지 못하는 여학생은 자연스럽게 대화에서 소외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 그래서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최 씨는 교수와 학생이 단체로 여행 및 답사를 떠났던 모 수업의 경우를 모범 사례로 들었다.

 

강의계획서에 표기된 정보들이 상세하지 못해 이를 내실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공과대학의 박용운 씨는 교과목의 개요, 강의계획, 성적평가방법 등이 수강선택 여부의 핵심임에도 불구하고 정보들이 구체적이지 못하다고 지적한다. 농업생명과학대학의 허예지씨는 성적평가방법 안내는 출석, 중간고사 및 기말고사의 백분율 정도만 제시되는 것이 아니라 성적평가 방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명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시험은 문제해결형인지 논술형인지 밝히라는 것이다. 또한 수업형태도 강의형․발표형․토론형․프로젝트형 중 어떤 방식일지 안내돼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강의를 듣는데 필요한 사전지식, 선수과목, 수업의 수준까지도 알려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시험문제 유형까지 강의계획서에 포함해야

 

이날 토론회를 처음부터 지켜본 양일석 교수(수의학과)는 토론회에 대해 “교육만 하면 문제가 되지 않으나, 연구 때문에 학생이 원하는 만큼 따라 가주지 못하는 것 같다”라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털어 놓았다.

 

한편, 발제를 맡은 학생들의 많은 준비에도 불구하고 정작 교수들의 참여는 거의 없어 토론회는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 토론회에 참석한 박경렬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오늘 자리에 총장님이나 교무처장님이 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 자족적인 토론회가 됐다”라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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