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22:10 (목)
대학정론-겸손한 전문가
대학정론-겸손한 전문가
  • 이필렬 논설위원
  • 승인 2003.10.2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핵폐기장 지질조사 과정에서 조작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전문가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본다. 전문가란 보통 어느 한 분야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을 일컫는다.

그러니 다른 분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여기에 전문가의 한계가 있다. 전문가도 복합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판단착오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위도를 핵폐기장 건설부지로 선정한 전문가들은 전문가가 어떤 오류도 저지르지 않는 완벽한 인간인 것처럼 선전한다. 어떻게 열흘밖에 안되는 기간에 조사를 마치고 적합 판정을 내릴 수 있느냐는 비판에 대해서는 전문가는 한 번만 보고도 파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러니 열흘로도 충분하다고 대답한다. 핵폐기장에서 자칫 잘못하면 방사능이 누출될 수 있다는 우려에 대해서는 그 방사능이 심각한 것이 아니고 전문가들이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으니 제발 전문가를 믿고 맡기라고 말한다.

전문가에게 맡기라는 그들은 미국의 뛰어난 전문가들이 동원되어서 만든 챌린저호나 우주왕복선 폭발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할까. 우주선은 너무 복잡한 것이기 때문에 전문가라도 가끔 완벽을 기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변명할까. 또는 미국 전문가와 한국 전문가는 다르다고? 체르노빌 사고가 일어났을 때도 한국의 원자력 전문가들은 소련의 전문가와 한국의 전문가는 다르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다. 핵폐기물이 아주 위험하다고 말하는 또 다른 전문가들에 대해서는? 이번에는 그들이 원자력을 전공하지 않은 사이비 전문가라고 몰아 부칠지 모른다.

핵폐기장 건설 사업에서 전문가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전문가가 세심하게 계획하고 실행해야만 위험이 크게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문가가 자기 과신을 할 때 위험은 엄청나게 증가한다. 전문가는 한 번만 보고도 알 수 있다는 생각은 자기 과신이다. 그 결과가 바로 부안사태로 나타났음을 원자력 전문가들은 모르는가.

한국의 전문가들도 스스로 실수를 저지를 수 있음을 인정할 줄 알면 좋겠다. 아인슈타인은 전문가는 모든 실수를 한 번은 저질러본 사람이라는 말을 했다. 하이젠베르크는 전문가란 자기분야에서 저질러질 수 있는 오류를 알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피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들이 인정하듯 전문가는 완벽하지 않다. 그러니 전문가가 핵폐기장을 건설한다 해도 잘못될 수 있는 것이다. 진정한 전문가라면, 그리고 생명에 대한 애정을 조금이라도 지닌 전문가라면, 오류가 나올 가능성을 인정해야 한다. 오류와 위험을 최소화하는 길은 그러한 인정 위에서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문가의 불완전성을 인정하는 것이 자존심상하는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에게 꼭 필요한 전문가는 그러한 겸손한 전문가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