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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정론-대학과 이라크 문제
대학정론-대학과 이라크 문제
  • 도정일 논설위원
  • 승인 2003.10.1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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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대학에서의 이라크 문제’라 부르는 싶은 것은 두 가지 사안을 지칭한다. 하나는 ‘파병’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이라크의 고난’이라는 문제다. 크게 이슬람 문명 전반의 고뇌에 관계되는 이 두 번째 문제는 일단 제쳐두고 우선 파병의 경우만 말하기로 하자. ‘대학사회에서의 파병 문제’라 함은 한국이 이라크에 전투부대를 보낼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찬반 표현의 차원에만 묶여 있지 않다. 대학사회는 헐리우드가 아니고 경마장도 아니다. 생각하고 따지고 토론하기 위해 시간과 공간과 자원이 조직되는 곳, 거기가 대학사회다. 생각하고 따지고 토론할 때 대학사회가 지켜야 하는 규칙은 맹목적 다원주의(‘다양한 의견’)가 아니라 합리성과 이성성의 원칙이다.

이성성(rationality)의 원칙이 적용될 때, 대학사회가 파병을 ‘문제’로 다루는 방식은 찬·반 어느 한 쪽으로의 목소리 높이기가 아니라 어느 주장이건 그것의 합당하고 이성적인 근거를 따져 그 주장의 합리성을 테스트하는 ‘심문 절차’에 우선성을 부여하는 일이다. 이것이 어떤 문제에 대한 대학사회의 접근법과 정치사회 혹은 일반 사회의 접근방식을 갈라놓는 중요한 차이다.

파병 문제에 대한 최근의 사회적 논의들 가운데 찬성 혹은 지지론의 근거를 지배하는 것은 ‘국익론’이고, 이 국익론의 핵심은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최대 국익”이라는 것이다. 대학사회적 심문 절차를 가동할 경우 이 국익론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미국이 내세웠던 두 개의 전쟁 명분들(대량살상무기, 테러조직 연계)이 모두 허위였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라크전은 미국의 ‘명분 없는 전쟁’으로 규정되고 있다. 명분 없는 전쟁의 뒤치다꺼리를 위해 한국이 추가 파병한다면 그 파병의 명분은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서 명분을 찾고 명분을 축적할 것인가. “국익이다”라고 국익론자들은 말한다. 그러나 이 국익론의 결론은 극히 몰이성적이고 비합리적인 것이다. 미국이 무슨 짓을 하건, 명분 같은 것쯤 있건 없건 간에 그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우리의 ‘최대 국익’이라면, 그 미국을 따라 지옥도 마다 않고 따라가는 것이 우리 국익이 된다. 국익론의 이런 몰이성적 결론은 한국-한국인에 대한 깊은 능멸과 모욕까지도 담고 있다. 

사회가 제아무리 몰이성주의에 함몰되고 비판적 판단력을 상실하는 경우가 있다 해도 끝까지 이성의 법정을 지켜내야 하는 곳이 대학사회다. 대학이 정말로 우리 사회의 미래세대를 키우자는 곳이라면, 이성적 심문의 절차는 미래세대를 위한 불가결의 훈련 프로그램이어야 한다. 그것은 동시에 대학사회의 문화이고 문화적 역량이다. 대학이 그런 훈련 프로그램과 문화를 포기한다면 대학은 기본적으로 반사회적 집단이 된다. 그런 대학을 가진 사회는 길게 보아 불행한 사회이다. 그 대학으로부터는 시민사회적인, 그리고 세계시민적인 자질과 능력과 자존을 가진 세대가 길러지지 않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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