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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비평: 문화적 테러리즘과 한국
문화비평: 문화적 테러리즘과 한국
  • 홍성민 동아대
  • 승인 2003.10.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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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대 정치학

이른바 9.11 테러는 아랍권의 소수 과격단체가 미국을 공격했다는 우발적인 무력충돌의 의미를 넘어선다. 심층적으로 보면 그 사건은 그 동안 소외됐던 아랍세계가 국제정치 무대에 등장하게 된 중대한 계기이며, 미국중심의 국제정치질서 말고도 새로운 종류의 국제정치가 가능할 수 있다는 정치적 표상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발단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미국 행정부가 그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은 채, 무리한 군사공격을 감행하면 할수록 아랍세계와 소수 테러집단의 문화적 정체성이 국제정치 속에서 자신의 지지기반을 확충해 나간다는 사실이다. 이제 그 어느 누구도 아랍권의 존재와 그들의 영향력을 무시할 수 없으며, 따라서 학자들은 미국이나 서방 중심의 국제정치담론을 넘어서는 새로운 학문의 언어로 미래의 세계질서를 구상해 보지 않을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  

그런데 한국의 정치인식은 이러한 국제정치의 조류와는 사뭇 다른 것처럼 보인다. 일부 한국 국민의 정서에는 마치 우리 스스로가 참사의 희생자인 것 같은 연민이 깊게 스며 있으며, 여기서 한 술 더 떠서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이른바 반 테러전쟁에 한국 군대가 적극 참여해야만 한다는 목소리가 줄기차게 제기되고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는 군사전문가의 발언 속에서 조속히 한국군을 이라크에 파병해서 미국을 감동시키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이니, 도대체 이 나라 지식인들이 익숙해져 있는 정치언어라는 것이 과연 한국말인지 아니면, 미국말인지 분간하기가 힘들 지경이다.

이런 분위기에서 나는 두 권의 책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나는 보드리야르의 '테러리즘의 정신'(동문선 刊)이고, 다른 하나는 촘스키의 '테러리즘의 문화'(이룸 刊)다. 두 저자는 공통적으로 미국이 추진하고 있는 일방적인 세계화 정책이 제3세계의 반발을 만들어 냈고, 또 테러리즘이란 결국 미국적 정치언어가 조작해 낸 일방적인 표상일 뿐이라는 점을 주장하고 있다.

촘스키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의 기만적인 세계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해서 지식인과 언론들은 제3세계에서 "동의 없는 동의"를 확보하기 위해 동원되고 있다. 때로는 안보의 논리로, 때로는 자유와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때로는 테러를 추방한다는 명목으로,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을 정당화해 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지식인들은 어떤 역할을 해 왔는가. 때로는 전략적 선택이라는 논리로, 때로는 과학적 연구결과는 이름으로, 때로는 국가이익이라는 명목으로, 미국의 제국주의적 침략의도를 눈감아 주고, 더 나아가서는 적극적으로 미국의 입장에 동조해야 하는 것처럼 여론을 몰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물론 시민사회가 성숙해 균형 잡힌 논리로 한국사회가 지향해 갈 바를 제시하고 있는 것은 지극히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아직도 상당수의 대학교수나 지식인 그룹들이 동원하고 있는 학문적 언어와 정치적 표상을 가만히 분석해 보면, 우리의 문제를 독자적인 시각으로 해석하고 풀어갈 수 있는 인식론적 태도가 결여돼 있다. 더구나 오늘날 국제문제를 담당하는 전문가들이나 일반 정치학자들은 지식인이 갖추어야 할 사고의 깊이나 규범적 판단능력보다는 단기적인 차원에서 비용과 효율을 가늠하는 전략전술가로 전락해 버리지 않았는가 의심스러울 때도 있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날 미국이 아랍세계로부터 군사적 테러의 위협에 처해 있다면, 한국은 자국의 정치적 입장을 다른 나라의 언어로 풀어가는 문화적 테러리즘의 위기에 처해있다고 나는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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