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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획-학내연구소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2): 맨파워로 승부한다
연재기획-학내연구소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2): 맨파워로 승부한다
  • 이지영 기자
  • 승인 2003.10.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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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 응집력, 아이디어가 '성장' 도왔다

국내 대학연구소가 서있는 기반은 빈약하기 그지없다. 규모도 각양각색이어서, 개인 연구실에 문패하나 걸어놓고 시작하는 1인 연구소, 개점휴업인 곳이 있는가 하면 단과대학 수준의 위상을 확보한 곳도 있다. 외국의 연구소처럼 자체적인 학풍을 형성해 나가는 곳은 극히 일부다. 기업이나 민간단체를 적극 활용하는 외국과는 달리 연구비 확충 역시 국가기관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연구소 운영에서 맨파워는 가장 기초적인 거름이자 최후의 수단으로 역할이 크다. 제도 속에서 안정적으로 커나가는 시스템이 약하다보니 발벗고 뛰는 한 두 사람을 기반으로 연구소의 미래가 엇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연구소의 맨파워는 몇 가지로 구분된다. 특히 연구소 리더의 역할이 중요한데, 외부활동으로 이어지는 외교적 역능과 내부 구성원들을 독려하고 구성하는 내부운영 능력 또한 조화를 이뤄야 한다.

전폭적인 지지, 그 안에 숨은 노력들
 
단국대 동양학연구소(소장 김상배 국문과 교수)는 거의 단과대학 수준의 규모로 운영되고 있다. 1970년에 설립돼 34년째 엄청난 규모로 확장해온 이 연구소의 성공 이유는 연구를 추진한 한 개인의 학문적 고집이었다. 동양학 연구소는 28년째 '한화대사전'을 만들고 있다. 15∼16권으로 예상되는 규모에 현재 7권을 작업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2백60억원의 연구비가 투자됐고, 사전의 완성까지는 총 4백억의 연구비가 든다. 애초에 이 연구는 장충식 이사장이 총장으로 있을 때, 국내의 사전편찬 작업이 미흡한 것을 지적,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한 것. 대학 내 타 연구소와의 형평성, 대학 자체의 재정난 등 굴곡이 많았지만, 지원금액을 줄일지언정 멈추지는 않았다. 그 결과 한 사립대학의 지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의 투자를 했고, 그 결과 동양학연구소는 단국대를 대표하는 연구소로 성장했다.


연세대 국학연구원(원장 전인초 중문과 교수) 역시 지난 2년 사이 눈에 띠는 도약을 했다. 전환점은 김우식 총장의 취임 직후였다. 교내 특성화 사업 선정을 위해 전체 대학을 대상으로 연구를 공모할 때, 김도형 교수(사학과)를 비롯해 국학연구원 소속학자들이 국학 연구의 필요성을 강하게 어필했다. 기존의 연구와 학내 연구 인프라를 바탕으로 '실학연구'를 하나의 학풍으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확신이 만들어낸 성과였다. 특성화 사업으로 지정되자 대학은 매년 10억의 연구비를 지원했다. 이전의 지원금액이 6∼7천만원 정도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증폭이다. 국학연구소는 이것을 종자돈으로 삼아 10여명의 연구소 전임연구원을 고용했다. 이들을 중심으로 연구과제를 생산해 내고, 다시 외부지원을 유치했다. 현재에는 전임연구원과 학술연구교수의 숫자가 40여명에 이른다.


사실 이 같은 대학의 전폭적인 지원은 극히 일부의 사례다. 그러나 국내 연구자 내부 의기투합으로 지원을 끌어내는 경우는 자주 찾아볼 수 있다.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소(소장 정진상 사회학과 교수)가 대표적인 경우다. 이 연구소는 1999년부터 활동이 활발해졌는데, 그 이유는 당시 '진주사회연구회'에 소속돼 있던 장상환, 정진상, 정성진 교수 등 진보적 성향이 강한 교내 연구자들이 대학 내부에서 연합을 모색했기 때문이다. 이들을 중심으로 유난히 진보성향이 강한 경상대 사회과학자들이 사회과학연구소를 거점으로 적극적으로 모이자, 지원은 의외로 쉽게 이뤄졌다. 당시 콜렉터의 역할을 자임한 정성진 경상대 교수(경제학)는 "비슷한 성향, 파워, 학문적 업적을 갖춘 사람들을 한군데 모아 발언권을 키우는 것도 외부와 교섭하기 위한 좋은 조건 중의 하나"라고 귀띔한다.


전남대 호남문화연구소(소장 윤평현 국문과 교수)는 좀더 구체적인 노하우를 알려준다. 이들은 현재 진행하고 있는 대형 연구과제만 해도 4개다. 지방에 있다는 핸디캡을 고려한다면, 엄청난 성과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되기까지에는 회장인 윤평현 교수의 남모르는 고민과 노력이 있었는데, 주머니돈으로 회의비를 지급해가면서 교내 연구자들의 회합을 자주 만들어낸 것은 그 사연의 일부다. 그리고 개인연구보다는 '참신한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공통연구과제에 승부수를 걸었던 것도 주효했다. 그 결과 이 연구소는 3년 동안 40억원을 지원받고 있다.


한편 조선대 에너지자원신기술연구소(소장 최창주 전기공학과 교수)는 1년에 6번씩 외부초청 강연을 연다. 최신의 연구동향을 알기 위해 국내외의 전문가를 초청하는 것. 최창주 교수는 "이공계 연구소의 경우 대부분 개인 연구로 진행되기 때문에 문제의식을 공유하기는 어렵지만, 외부초청강연을 통해 지적 자극을 받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연구원들을 독려하고 학문적 의지를 북돋는데는 해외의 발빠른 약진과 대면케 하는 것보다 더 좋은 보약은 없다는 설명을 덧붙인다.

척박한 토양을 일구는 마음으로

연구소 운영은 학문을 하듯이 연구계획 세워서 지원을 기다린다고 되는 게 아니다. 그것은 때로는 정치적이기도 하며, 치욕을 감내해야 하는 고된 업무를 중심운영자들에게 부담시킨다.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행동우선주의도 때로는 요구된다. 대학 측과 긴밀히 연결된 몇몇 대형연구소들의 성공사례는 대부분의 연구소들에게 그림의 떡일 수도 있다. 제도적 차원에서 절망감을 안겨주기 때문인데, 그 틈을 파고들 수 있는 힘이 바로 맨파워에 대한 세심한 고려에서 나온다는 점을 위의 사례들은 말해준다.

이지영 기자 jiyou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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