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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클럽 아레나』와 아카데미즘
[기고] 『클럽 아레나』와 아카데미즘
  • 교수신문
  • 승인 2020.02.06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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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나욱 작가.
최나욱 작가

지난 3일 노명우 교수님께서 본지에 『클럽 아레나』를 소개해주셨습니다. 해당 글은 이론으로써 바라본 세상이 현실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문제를 지적하며, 그렇기 때문에 이 책이 이야기하는 ‘문제적 장소’를 바라보는 것이 의미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언뜻 이론과 사회운동이 활발해 보여도 세상이 달라지지 않는 이유는 여기에 공감 못 하는 실제가 있기 때문이니까요. 남녀혐오가 극단으로 치닫는 와중에 클럽에서는 전혀 다른 남녀관계가 벌어지고, 사회 불경기가 문제라는데 이곳에서는 하룻밤 주대로 수백 수천만 원이 소비됩니다. 단순히 ‘남 일’로 여기기에는 사회 고위층부터 대학생, 취업 준비생, 연예인, 불법 종사자 등 사회를 구성하는 수많은 사람이 이곳을 오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가 이 책을 쓰면서 주지했던 것은 일련의 상황을 ‘다른 나라 얘기하듯’ 치부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유흥공간인 이곳에서 극단적 양상이 벌어지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겠지만, 사회적 금기나 극단적인 욕망은 특정 장소에서 돌연 생겨나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외모지상주의나 물질주의가 사회 곳곳에서 다른 방식으로 일어나는 것을 종종 목격합니다. 때로는 명예가 권력이 되거나 지식이 재화가 됨으로써 맨스플레인을 비롯한 폭력이 발생합니다. 그래서 저는 역으로 우리가 평소 불편하거나 타락했다고 말하는 것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함으로써 우리 일상을 되돌아보길 바랐습니다. 어떤 범죄행위를 ‘다 똑같은 인간 생리’라고 말하는 것은 윤리에 대한 모독일 테지만, 반대로 모든 걸 ‘그들만의 이야기’로 떠넘기는 건 사회를 파편화시킵니다.

한편으로는 우리가 나쁘다고 단정 짓는 것의 논리를 되묻고 싶었습니다. 막연히 외모와 물질을 밝히는 것은 나쁘다고 말하는데 과연 분명한 근거가 있는지, 오히려 일련의 욕망이 다른 방식으로 변주돼 발현되지는 않는지 말입니다. 예컨대 한국의 클럽에서 외모와 돈이 권력이 되는 게 문제라고 하지만, 반대로 해외의 모 클럽에선 ‘정치적 올바름’을 과도하게 투사한 까닭에 성소수자가 권력이 되어 일어난 역차별이 사회 문제로 부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이 책은 일련의 요소들 또한 그저 매력 자본으로 다루는 등 가치를 평가하기보다 ‘사실’을 담아내는 데 집중했습니다. 

Hush! (The Concert) by James Tissot, 1875
Hush! (The Concert) by James Tissot, 1875

지식이 중요한 권력이 되는 학계에서 가장 하기 힘든 말은 ‘잘 모르겠다’일 것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대상이 클럽과 같이 사회적 편견을 가지고 있을 경우에는 손쉽게 ‘잘 모르겠다’고 발언하고, 잘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그곳은 나쁘다’고 손쉽게 단정 짓습니다. 가치 판단보다 사실 판단이 앞서야 한다는 아카데미의 기본 원칙이 자연스럽게 무너지는 것입니다. 책을 읽을 때나 쓸 때나 미리 결론을 내린다는 것은 학계에서 특히 경계해야 하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입에 담기 부적절한’ 이 책을 통해 할 수 있는 얘기는 단지 내용뿐 아니라 이를 얘기하는 태도도 포함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다 보니 클럽을 매개로 논의하려 했던 동시대 문화는 이야기되기 어려웠습니다. 미처 정리되지 않은 패션이나 음악, 춤과 같은 트렌드 요소들은 뒷전으로 밀려나거나 그 또한 선입견에 따라 분류되었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새로운 브랜딩, 소비문화를 상징하는 수십만 원 대의 명품 모자는 ‘부덕한 돈의 산물’로 기사화되기도 했었습니다. 한때 중요한 공론장이자 많은 예술적 성취를 남긴 ‘살롱’ 또한 남에게 잘 보이고자 하는 욕망에 따라 일궈진 사교 모임이었다는 것을 고려하면 아이러니한 일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살롱 내 은밀한 행위가 이뤄지던 ‘알코브’ 같은 공간은 외면한 채, 그 안의 디제이로 역할을 하던 연주자와 작곡가들, 그리고 상대에게 허영이나 자랑을 뽐내기 위하여 만든 시와 노래를 막연히 고고한 클래식 작품으로 바라봅니다. 무엇이 다르고 같은 걸까요. 모든 가십을 다룰 필요는 없겠지만 선입견은 우리가 보는 역사와 현상을 편협하게 만듭니다.

클럽 아레나 ⓒ최나욱 제공
클럽 아레나 ⓒ최나욱 제공

이 책이 <교수신문>에 소개된 건 무척 영광입니다. 왜냐하면 출간 기획 때부터 이 책은 ‘독자 타깃’을 설정하는 데 많은 고민을 하게 했기 때문입니다. ‘클럽에 다니면 책을 읽지 않고’, ‘책을 좋아하면 클럽에 가지 않는다’는 극단적인 독자 층위는 얼마나 흥미로운지요. 나아가 ‘잘 알아도 말하지 않고’, ‘모르는데 말하려 하는’ 반응은 이를 더욱 복잡하게 만듭니다. 한쪽에서는 ‘어떻게 이런 일이’하고 놀라지만 반대로 다른 쪽에서는 ‘클럽에 대해 뭘 아느냐’고 비웃습니다. 그래서 저는 책으로 정리된 이 내용과 함께 각종 커뮤니티나 유튜브 등이 다루는 더 날 것의 정보와 비교해보기를 추천합니다. 오늘날 세대, 계층, 가치관 등은 얼마나 큰 간극을 빚고 있습니다. 이전까지는 각 주체가 명확히 구분되어 다른 세상처럼 존재했지만, 갈수록 인터넷 등의 이유로 서로가 서로를 의식하게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이론과 실제를 봉합하는 일은 더욱 적극적이고 폭넓은 방식으로 행해져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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