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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기획―학계의 禁忌를 찾아서① : 스승비판
연재기획―학계의 禁忌를 찾아서① : 스승비판
  • 강성민 기자
  • 승인 2003.10.10 00:0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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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적 미덕에 가려진 '금기의 비판'...생산적 논쟁의 원류 기대

우리 학계의 금기 중의 금기로 여겨지는 스승비판을 다루려 하니 어디선가 불호령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요즘처럼 강의평가다 뭐다 해서 사제지간이 서먹해지고, 명절 때 한번씩 찾아 뵙는 미담도 드문드문해지는 때에 어디서 그런 오랑캐 나라에서 올라온 한랭전선 같은 얘기를 하느냐고 말이다. 스승과 제자는 설사 뜻이 다르더라도 서로 보듬어주고, 외부 적들의 공격에서는 서로를 적극 비호해주어야 할 사이이거늘 하는 타이름도 들려온다.

스승비판은 분명 당위론의 차원에서 논할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스승에 대한 비판이 간절히 필요할 만한 상황에 학계가 직면하고 있다고 보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문제는 다른 식으로 제기돼야 할 것이다. 우리 학계가 공유하고 있는 스승비판에 대한 일반적인 像이 심각하게 일그러져 있는 것은 아닌지, 한번 되돌아볼 필요는 없는지 하고 말이다.

이것은 몇몇 유명한 사례들이 간접적으로 보충해준다. 가령 1997년 "스승의 등에 칼을 꽂았다"는 발언 때문에 법정논란을 빚기도 한 한 언론종사자의 스승비판이 씁쓸하게 떠오른다. 특정한 정치적 의도로 스승의 논문을 왜곡 해석했다는 것이 학계의 결론이었는데 아무튼 이 비판의 결과로 스승은 공직에서 물러나게 됐다. 이 사건의 상징적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 '스승비판'을 '천인공노할 행위'라는 수준에서 조감토록 하는 디딤돌을 제공해줬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그 외에도 스승에 대한 아주 치졸한 수준의 인신공격이 가끔 있어왔고, 이런 사건들은 추문이 돼서 언급하기도 싫어지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런 사례들 때문에 스승비판 하면 이전투구를 떠올리고, 학문적이지 못하다, 속셈이 따로 있다는 식의 선입견을 강화, 고착시킨다.

합리적 비판은 담론융성의 긍정적 계기로 작용
하지만 공론화되지 않은 스승에 대한 제자의 용감한 비판이 학계에 '쓴약'으로 작용하는 사례들도 있다. 이러한 스승비판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눠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학문적 비판이다. 박사학위 논문이나 학술행사장에서 종종 이런 일이 벌어진다. 이것은 학문행위에 대한 비판과 학설의 대립으로 세분화가 가능하다. 둘째는 스승의 행적에 대한 비판이다. 이를테면 군부시절 정권에 봉사했던 학자들에 대한 제자들의 문제제기(고 최종욱 국민대 교수가 대표적 논객으로 꼽힌다)가 그렇다.

이종욱 서강대 교수(사학)의 박사논문에 얽힌 사연을 들어보면 '제자의 고언을 받아들이는 아량'이 때로는 필요하단 걸 알 수 있다. 이 교수의 문제의 논문은 고대사 연구의 패러다임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었고, 당시 지도교수였던 이기백 교수는 그 동안의 고대사 연구의 체계를 집대성한 대표적 학자였다. 직접 스승을 논하진 않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스승의 연구에 큰 문제제기를 한 것이라 볼 수 있다. 하지만 결과는 무사통과였다. 이기백 교수는 "비판의 여지는 있지만 문제제기가 합리적"이라고 오히려 격려까지 해줬다고 한다. 이종욱 교수는 이런 격려에 힘입어 지금껏 줄기차게 주류 고대사학에 도전하는 연구를 십수년간 해올 수 있었고, 이 교수의 작업은 고고학 분야의 최신 연구성과들과 동료 교수들의 참여와 맞물려 고대사학 패러다임 자체를 쟁점화시키는 데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조금 시간이 지난 이야기이지만 '조선유학사'를 저술한 현상윤 고려대 교수에 대한 이상은 고려대 교수의 비판작업이다. 현 교수의 학문적 후배인 이 교수는 '조선유학사'의 서문 '유학의 功罪論'에서 유학의 긍정적 측면에 대해 소극적이라고 맹비판을 펼쳤다. 사실 '조선유학사'란 책은 일제 시기 유학이 뒤집어썼던 망국 책임론을 거둬들이려는 시도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홍원식 계명대 교수는 이 사건을 두고 "이 교수의 정면비판은 당시 의기소침했던 유학전공자들에게 유학의 현재성을 본격적으로 검토할 수 있는 논의의 지평을 제공했다"라고 해석하고 있다.

황패강 단국대 명예교수(국문학)는 스승비판의 주체와 객체로 등장한 드문 사례다. 젊은 시절 '처용가' 등의 향가해석에 있어서 스승에 정반대되는 학설로 박사논문을 펴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지난 30여년간 독자적인 향가론의 일가를 일궈왔다. 황 교수의 정년퇴임 모임에는 90명의 제자, 후배들이 모였는데, 그는 이 자리에서 그 동안 자신의 학설에 제기된 제자, 후배들의 비판을 수용해 자신의 논문을 수정한 결과를 발표하는 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중증앓는 학문공동체의 권위적 가족주의
물론 스승비판이 이렇게 아름다운 결과를 맺는 일은 드물다. 대학원생은 논문 주제결정에서부터 지도교수가 허락하는 범위 내에서 찾아야 한다. 석사논문에서 한 저명한 학자의 표절문제를 제기했다가 결국 학교를 떠난 문학평론가 이명원 씨의 사례가 그것이다. 이 씨는 학교를 떠나면서 이런 글을 썼다. "적어도 나 자신의 연구방향과 관련하여 내 모교에는 희망이 없다는 판단이 든다. 정당한 문제를 제기해도 이미 나는 '왕따'다. 금기를 건드린 자는 그 자신이 금기가 된다는 말을 폴 리쾨르는 '악의 상징'에서 적어놓은 바가 있다. 내가 바로 그 금기가 된 셈이다."

이 말과 관련해 저간 사정을 볼 때 대학원은 어떻게 보면 '반대할 자유조차 없는' 공간, 위계화된 봉건적 신분사회의 멘탈리티가 지배하는 곳이다. 스승에게 갑자기 전화라도 오면 일어서서 "예, 선생님" 하고 대답하는 본능적 순종의 습성은 이의제기 자체를 기이하고 낯선 행위로 만들어버린다. 그런 낯선 행위를 하는 이는 시범케이스로 낙인찍히고 추방되는 게 예사다.

이에 비하면 박노자 오슬로대 교수는 노르웨이로 부임해 갔을 때 그곳에서 받은 느낌이 "좌우는 있어도 위아래는 없고, 스승과 제자가 구분이 안 되는" 모습 때문에 한국과 비교가 됐다는 칼럼의 한 대목은 음미할 만하다. 언어 자체에 존대가 없는 문화적 특성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박 교수의 눈에 이 모습은 "스칸디나비아 사회주의의 튼튼한 심성적 바탕"으로 여겨졌다. 외국의 경우 스승비판이 이슈가 될 수 없을만큼 토론문화가 강하기 때문에 비교하기가 머쓱한 측면이 있다.

대학이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모순인 서열주의, 인맥주의를 발원시키는 수원지라는 오늘날 학자들의 견해는 그 밑바닥에 도사린 '원죄의식'으로서 스승비판을 주목하게 만든다. 프로이트식으로 말하면 그것은 극복할 수 없는 슈퍼에고라 할 수 있다. 한 시인은 "아버지를 이긴 날, 바람부는 강가에 나가 갈대밭에 엎드려 꽃뱀처럼 울었다"라고 외쳤다. 한국의 대학에서는 아버지는커녕 고조할아버지도 비판할 수 없는 성역에 모셔져 있다.

김민수 전 서울대 교수는 서울대 미대를 설립한 장발 박사의 친일행적을 비판했다가 재임용 탈락당한 후 아직까지 복직투쟁중이다. 미술학과의 鼻祖를 땅바닥에 내리꽂는 비판을 했으니, 봉건적 가족주의의 틀 속에서 생각해볼 때 학과 교수들에 의한 재임용 탈락은 어쩌면 필연적 응징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친일을 곧 죄악시하는 우리 사회의 풍토를 고려한다면 "역사적 자아"로서 자신에게 드리워진 그늘을 청산하려는 순수한 노력조차도 수용이 되기 위해선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스승비판은 그 내용에 비해 지나치게 부풀려 받아들여진다. 이것이 금기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금기의 영역이 너무 넓다는 것도 문제로 작용한다. 스승 뿐 아니라, 동료들의 저술조차도 언급 자체를 꺼리는 일은 여기서 비롯되는 듯하다. 자연과학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특히 의학계의 경우 같은 학교 출신을 유난히 강조하는 혈통주의에 막혀있다는 보도도 심심치않게 접할 수 있는데, 학자간 비판정신이 실종된 이런 모습은 ㅇ병원의 한 산부인과 교수는 "복강경을 이용한 수술이 세계적 추세인데도 원로교수가 외과적 수술방법만을 고집해 신기술 도입은 엄두조차 못내고 있다"라는 말로 털어놓기도 한다. 또 포경수술이 비인권적이란 의견도 스승과 선후배 사이의 카르텔 속에서 묻혀지고 있다.

학문적 스승비판은 시기상조 의견도
최근에 들어 본격적인 스승비판의 사례라 볼 수는 없겠지만, 학계의 세대청산 차원에서 대가들을 비판적으로 조명하는 자리에서 스승을 논하는 풍경들이 생겨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고 박종홍 서울대 교수(철학)에 대한 학계의 비판적 문제제기가 최근 김석수 경북대 교수를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는데, 김 교수는 그러나 "평소에 맑시즘 철학을 하는 등 몇몇 손자뻘 서울대 교수들이 박종홍 선생에게 비판적 생각을 갖고 있었으나, 대회 당일날에는 별다른 의견을 보여주지 못했다"라고 그 한계를 지적한다. 몇 년 전에는 '무애'라는 문예지가 창간특집호에서 황병하, 문흥술, 방민호, 신철하 등 소장비평가들이 작심하고 김우창, 백낙청, 김윤식, 유종호 등을 비판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런 '넘어서기' 차원의 비판은 작위성이 너무 두드러지고 일종의 쇼로 기능하는 측면이 짙다. 안타까운 것은 박종홍 교수에 대한 비판 역시 그의 행적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학문 내부의 체계에 대해서는 손을 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저간의 사정에 비춰볼 때 "스승비판이 문제가 아니라, 스승을 넘어서지 못하는 게 문제"라는 이병천 강원대 교수(경제학)의 말은 일리가 있다. 또한 진정한 의미의 학문적 넘어서기로서 스승비판이 갖는 역할을 주목해볼 때, 한국의 경우 스승으로 표상되는 학문적 기득권이 하나의 학파나 흐름조차 제대로 형성하지 못한 상황에서, 개개인에 대해 학문적 비판을 가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의미가 있겠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국 학계의 문제는 비판을 통한 넘어서기보다는, 자체심화의 단계가 더욱 시급한 문제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다.

하지만 과거에도 현재에도 금지선을 넘는 호루라기 소리는 계속 들려온다. 역사적으로 봐도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을, 프로이트는 샤르코를, 아이슬러는 쇤베르크를, 윤증은 송시열을 비판하고 넘어서면서 자신의 세계를 구축했다. 스승비판이 단순히 몹쓸짓이나 불필요한 일로 치부될 게 아니라, 학자로서 한단계 상승하기 위한 관문으로 인정되는 똘레랑스가 아쉽다. 오늘날 스승이란 이름으로 옹호되는 것이 진정 스승의 가치인지, 아니면 그걸로 포장된 집단 이기주의인지를 냉철하게 성찰해볼 때다.
강성민 기자 smkang@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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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2003-10-16 16:24:40
"아마 '스승비판'을 '천인공노할 행위'라는 수준에서 조감토록 하는 디딤돌을 제공해줬다고 한다면 과장일까"

-- 이한우 기자의 최장집 교수 비판 사례를 위의 주장에 끼여 맞추려는 것은 여러 면에서 다소 무리가 있다고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