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1970년대에 들면서 아방가르드 운동 등 집단적이며 체계적인 실험미술이 대두되며 이후 ST그룹, 에스프리 등으로 맥을 잇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의 배경에는 자료에 대한 실증적 점검과 국내외의 미술 및 문화 전반의 흐름에 대한 입체적 조망이 부족해 생생하고 객관적인 가치 규명이 되지 않았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이 책은 풍부한 문헌 추적과 인터뷰 및 상대 평가를 통해 그에 대한 파격적 시도를 해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역사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객관화되는 성질을 갖고 있다. 얼마 전에 죽은 정찬승 역시 이 책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가 시도했던 해프닝을 비롯한 전위미술은 당시 독재 체제에 대한 반항이면서 동시에 국전을 중심으로 제도화돼가는 미술에의 항거였다. 미술이 정치나 사회적 체제에 길들여져 등급화되기 시작한다면 이미 그 사회는 정체되며 썩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 책의 단점으로는 이 무렵 미술사를 보는 관점에 있어 1, 2 세대 평론가인 이경성, 이일, 오광수 등의 서술을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과, 몇몇 작가의 활동을 전체적인 주요 맥락으로 삼는다는 데 있다. 이 부분에 관한 비평적 논쟁의 부족과 거론할 만한 작가의 부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저자에게 요구되는 총괄적 관점, 다시 말해 이 시기 한국의 실험미술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바람도 이 책의 장점을 훼손시키지는 못한다. 아직 국내에서 이처럼 간명하고 실증적으로 현대미술사를 다룬 책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쓸 데 없이 외국의 관념적 미술론을 되뇌이거나 외래적 체계를 이식시키는 데 그치는 저술이 태반일 뿐이다.
미술사를 다루는 저술도 더욱 창의적인 방향으로 변화해야 하며, 우리 현대 미술사도 더욱 실증적인 것들로 채워져야만 이로부터 생생한 미술 담론이 배태될 수 있다. 때문에 불모지였던 한국 현대미술에 활기를 불어 넣었던 작가들을 추적해 나간 저자에게 힘을 보태고 싶다. 신화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어설프게 시작됐지만, 그 결과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엄청난 것으로 커져가고 있다. 한국 현대미술의 미래는 곧 아시아 현대 문화가 갖게 될 폭발력과 더불어 미증유의 것으로 도래할 것이다.
장석원 / 전남대, 미술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