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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리뷰: 『한국의 실험미술』(김미경 지음 | 시공아트 刊 | 2003 | 263쪽)
주간리뷰: 『한국의 실험미술』(김미경 지음 | 시공아트 刊 | 2003 | 263쪽)
  • 장석원 전남대
  • 승인 2003.10.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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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 약하나 실증성 뛰어나

이 책은 1960~1970년대에 ‘한국의 실험미술’이라는 이색지대에 대한 실증적?객관적인 접근이 이뤄진 책이다. 특히 1960년대는 아직 실험미술이라는 개념 자체가 모호한 상태에서 기존의 가치 체계를 부정하고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외국의 단편적인 정보에만 의존해 도전적인 미술운동이 펼쳐졌던 때가 아닌가 싶다.

이후 1970년대에 들면서 아방가르드 운동 등 집단적이며 체계적인 실험미술이 대두되며 이후 ST그룹, 에스프리 등으로 맥을 잇게 된다. 그러나 이러한 운동의 배경에는 자료에 대한 실증적 점검과 국내외의 미술 및 문화 전반의 흐름에 대한 입체적 조망이 부족해 생생하고 객관적인 가치 규명이 되지 않았었다. 바로 이런 점에서 이 책은 풍부한 문헌 추적과 인터뷰 및 상대 평가를 통해 그에 대한 파격적 시도를 해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역사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객관화되는 성질을 갖고 있다. 얼마 전에 죽은 정찬승 역시 이 책 속에서 생생하게 살아있다. 그가 시도했던 해프닝을 비롯한 전위미술은 당시 독재 체제에 대한 반항이면서 동시에 국전을 중심으로 제도화돼가는 미술에의 항거였다. 미술이 정치나 사회적 체제에 길들여져 등급화되기 시작한다면 이미 그 사회는 정체되며 썩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반영하는 것이다.

이 책의 단점으로는 이 무렵 미술사를 보는 관점에 있어 1, 2 세대 평론가인 이경성, 이일, 오광수 등의 서술을 그대로 수용한다는 것과, 몇몇 작가의 활동을 전체적인 주요 맥락으로 삼는다는 데 있다. 이 부분에 관한 비평적 논쟁의 부족과 거론할 만한 작가의 부족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저자에게 요구되는 총괄적 관점, 다시 말해 이 시기 한국의 실험미술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 전달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바람도 이 책의 장점을 훼손시키지는 못한다. 아직 국내에서 이처럼 간명하고 실증적으로 현대미술사를 다룬 책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쓸 데 없이 외국의 관념적 미술론을 되뇌이거나 외래적 체계를 이식시키는 데 그치는 저술이 태반일 뿐이다.

미술사를 다루는 저술도 더욱 창의적인 방향으로 변화해야 하며, 우리 현대 미술사도 더욱 실증적인 것들로 채워져야만 이로부터 생생한 미술 담론이 배태될 수 있다. 때문에 불모지였던 한국 현대미술에 활기를 불어 넣었던 작가들을 추적해 나간 저자에게 힘을 보태고 싶다. 신화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 어설프게 시작됐지만, 그 결과는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엄청난 것으로 커져가고 있다. 한국 현대미술의 미래는 곧 아시아 현대 문화가 갖게 될 폭발력과 더불어 미증유의 것으로 도래할 것이다.

장석원 / 전남대, 미술평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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