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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44) - 메시아와 포비아
정세근 교수의 ‘철학자의 가벼움’(44) - 메시아와 포비아
  • 교수신문
  • 승인 2020.02.03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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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충북대 철학과
정세근 교수
충북대 철학과

선생이라면 누구든 겪어보았을 만한 일이다. 학기 말 성적을 올리면 학생들이 이러저러한 이유에서 성적 문의를 한다. 그런데 함께 상의해볼 만한 일이 생겨서 학과 교수들에게도, 이공계 교수들에게도 물어보았지만 의견이 조금씩 다르다. 

말이 좋아서 성적 문의지 사실상 항의에 가깝다. 우리 대학은 ‘성적 확인 및 정정 신청’으로 표현되어있는데, ‘정정’(訂正)이란 바로 잡겠다는 뜻이니 단순히 자기 성적이 왜 이렇게 나왔는지를 묻는 것을 넘어 한 번 고쳐보겠다는 의도가 들어가는 것이다. ‘신청’의 주체는 학생이니 말이다. 

장학금을 받아야 하니 올려달라는 것은 애교에 가깝다. 이번에 온 편지는 이곳저곳에 보냈는지 문장 속에서는 다른 과목 이름이 나와, 쉽게 무시했다. 장학금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요즘처럼 상대평가 시스템에서는 공평성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아무리 일정 기준을 넘어서면 절대적으로 주는 장학금이라도 ‘안 되면 말고’라는 식으로 이메일을 띄우면 교수 입장에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다. 

이번 성적파동은 이랬다. T.A.가 학생 온라인 커뮤니티에 내 성적처리에 대해 이슈가 됐다고 알려왔다. 그래도 무시하려고 했는데, 기말고사 시험지에 다시 항의해서 나도 재고할 수밖에 없었다. 

교양과목인데 중간고사에서 ‘메시아’라고 써야 할 것은 ‘포비아’라고 쓴 것인데, 밤늦게 나를 웃겨준 것도 있지만 맥락은 맞는 것이라서 단순한 어휘착각이라고 판단하고 정답처리를 했고, 기말고사 때 이를 공표하면서 ‘철학은 말을 외우는 것이 아니라 뜻을 알아야 하는 것이므로 정답으로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내 의도는 ‘철학적 사고가 중요하지 단순한 암기는 의미가 없다’는 것이었다. 교양 듣는 학생들이 ‘공자’와 ‘순자’를 헷갈리거나,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을 뒤바꿔 쓴다고 해서 큰 탈은 아니다(‘ ’은 말을 가리킨다). 중요한 것은 그 사상을 이해했는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다. 

그러나 학생의 반응은 그렇지 않았다. 틀린 것은 틀린 것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교수들에게 물어보고 학생들에게도 물어보았는데, 교수들은 내편이 많았고 학생들은 나와 상반되었다. 

특히 고등학교 선생님한테 물어보았더니 학생들이 성적에 얼마나 민감한데 그랬냐면서, 성적을 전체적으로 고친 적도 꽤 있다면서 사례를 들려주었다. 차라리 논술식은 교수의 재량이 인정되기 때문에 말이 없지만, 단답식은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결국 감점처리를 하기로 했고, 다른 것도 맞게 한 것이 떠올라 함께 수정했다. 내가 손을 들었다기보다는 요즘 학생들의 인식을 반영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공연히 학생들에게 철학적 활동이 무엇인가 보여주려다가 소동을 치르게 된 것이다. 

재밌는 것 두 가지. 하나, 맞게 된 당사자조차 그것을 맞게 처리하는 것을 의아해했다. 표정이 그랬다. 둘, 감점 처리하다 보니, 이의를 제기한 학생도 감점이 되어야 했다. 내가 전체에게 보낸 단문은 이랬다. 

-다문화와 세계종교 최종공지: 이의를 받아들여 아래의 문장을 틀린 것으로 합니다. 더불어 다른 사람의 것(마하바드→마하비라)도 틀린 것으로 합니다. “신약은 예수가 포비아라고 되어있어 유대교는 예수를 포비아라고 믿지 않기에 그렇지 않은 구약만 믿는다.”(포비아→메시아)

마지막으로 하나 더. 음모론도 있었다. 메시아(구세주)를 딴것도 아닌 포비아(공포병)로 쓴 것에 대해 기독교인이 분노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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