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20:50 (금)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238) 가창오리
권오길의 생물읽기 세상읽기(238) 가창오리
  • 교수신문
  • 승인 2020.01.31 12: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권오길강원대 명예교수/생물학
권오길
강원대 명예교수

티브이에서 가창오리의 찬란한 떼춤(群舞)을 보고 있노라면 참 신비롭다는 생각이 든다. 한 마디로 놀랍고 미루어 헤아릴 수 없이 이상하고 야릇하다(不可思議)하겠다. 전 세계 가창오리집단의 95%쯤이 한국에서 월동하므로 가창오리의 군무를 볼 수 있는 곳은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그리고 가창오리는 10월에 와서 3월까지 머물다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시베리아로 되돌아간다. 
  다시 말해서 시월이 가까워지면 대대적으로 우리나라로 날아들고, 제일 처음 들리는 곳은 충남 서산의 천수만(淺水灣)이다. 거기서 근 한 달 가까이 머물다가 더 추워지면 본격적으로 금강, 고창지역, 영암 영암호, 해남의 고천암호, 아산만, 창원주남저수지 등 남쪽으로 갈라져 흩어진다.  
  가창오리(Anas formosa)는 기러기목 오릿과의 조류로 뺨에 태극무늬가 있어서 북한에서는‘태극오리’라 부른다. 그리고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어‘가창오리’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또한 학명(종명)의 formosa는‘대만’이란 뜻이 아니고 라틴어로“예쁘다”는 뜻이며, 한국에 들리는 오리 중에서 가장 매혹적인 새이다.
  몸길이 약 40cm, 날개길이 21cm남짓으로 오리 중에서 작은 축에 든다. 수컷은 얼굴 앞쪽 절반이 노란색이고, 중앙의 검은 띠를 경계로 하여 뒤쪽 절반은 녹색으로 윤이 난다. 부리는 검고, 홍채는 갈색이며, 다리는 회색이 도는 노란색이다. 가창오리의 특징은 뭐니 해도 다채로운 색깔과 눈에서 시작하여 얼굴, 꼭뒤(뒤통수)로 이어지는 흰줄무늬이다. 수컷은 몸 전체가 화려한데 비해, 암컷은 수수한 갈색이다.
  가창오리(Baikal teal)는 주로 호수?늪지대?저수지?하천들에서 서식한다. 야행성이라 낮에는 안전한 큰 저수지 같은 곳에서 무리지어 잠을 자고, 밤에는 먹이를 얻기 위해 활동한다. 먹이는 주로 식물성으로 곡식낟알이나 수초 등을 먹으며, 수서곤충이나 무척추동물 등의 동물성먹이도 잡아먹는다.  가창오리는 시베리아동부에서 캄차카 반도에 걸친 지역에서 새끼를 치고, 한국?일본?중국?대만 등의 동아시아에서 월동하는 겨울철새이다. 4~7월에 한배에 6~9개의 알을 낳는데, 알을 품는 기간은 26일 안팎이다. 그리고 세계적인 희귀조로서‘멸종위기에 처한 야생동식물의 국제거래에 관한 협약’에 수록되어 세계적으로 보호받는다.  한반도(중부이남)에 월동하는 가창오리 수는 2000년대에는 최대 35만 개체가 기록되었고, 2008년에는 60만 마리까지 증가된 것으로 나타났으며,  2010년 기준으로 근 100만 마리로 늘어난 것으로 추정한다. 물론 이는 먹이를 일부러 뿌려주고, 서식지를 잘 보호한 탓에 마릿수가 늘어난 것이다. 사실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가창오리 떼의 군무
가창오리 떼의 군무

  낮에는 천적이 접근하기 어려운 저수지 한가운데에 자리를 잡은 가창오리들은 거의 움직이지 않아 마치 거대한 검은 줄이 쳐진 듯하다. 그러나 마침내 해가 서산너머로 기울며 어스름한 땅거미(黃昏)가 질 무렵이면 가창오리들은 이쪽저쪽으로 조금씩 움직이며 화려한 비행을 준비한다.
  황혼이야기가 나올라치면 늘 이상은(李商隱)의 唐詩 한 구절이 생각난다. 야속하게도 황혼 길에 접어든 지도 한참 오래 됐으니 그럴 만도하다. “(…) 夕陽無限好(석양무한호, 지는 노을 한량없이 좋은데), 只是近黃昏(지시근황혼, 하지만 황혼이 가깝구나)”라는 시 말이다.  이윽고 어둑해질 무렵에 앞잡이(先頭)가 힘차게 물을 차고 오르면 일제히 날갯짓을 하면서 먹이를 찾아 나선다. 차례대로 떠오른 수십만 마리가 다양하고 화려한 점묘화(點描畵)를 그린다. 떨어진 듯 하다다가도 다시 뭉치고, 소용돌이처럼 밑으로 착착 휘감겼다가 분수처럼 휙휙 솟구쳐 오른다. 붉은 노을을 가로 질러 모였다 흩어지고, 돌고 비틀며, 끊임없이 반복, 변형하는 찬란한 모습을 연출한다. 한마디로 사람 혼을 쏙 빼놓는다.
  때로는 1㎞가 넘는 웅장한 무리를 이루고, 군무는 2∼3분에서 길게는 20∼30분까지 이어진다. 2003년에 BBC의‘살아있는 지구(planet earth)’라는 다큐멘터리에도 나올 정도로 세계적으로 이름 난 군무렷다! 
  이렇게 떼를 지우므로 천적을 피하고, 먹이 찾기나 짝 만나기를 쉽게 한다. 그리고 그 신비롭고 비밀스런 춤의 원리는 아직 확실히 알지 못 하나, 군무를 카메라로 찍어 컴퓨터모의실험(computer simulations)이나 수학모델(mathematical models)을 써서 연구, 분석 중이라 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