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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14 - 페인
박홍규의 아나키스트 열전14 - 페인
  • 교수신문
  • 승인 2020.01.21 14: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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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페인
토마스 페인

18세기의 체 게바라

<세계를 바꾼 아이디어>라는 책에 의하면 인권이라는 아이디어는 루소와 페인에게서 나왔고 프랑스와 미국의 혁명가들은 인권이라는 아이디어에 곧바로 매료되었으나 실현하기는 쉽지 않았다. 1776년 ‘미국 독립선언문’은 이를 “생명, 자유, 행복의 추구”라고 규정했지만 그런 권리는 노예들에게는 적용되지 않았고 프랑스에서도 20세기가 되어서야 겨우 실현되었다. 그러나 미국에서 인권이라는 아이디어는 19세기 후반부터 물질적 풍요를 추구할 수 있게 했고, 그 결과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하고 강력한 나라가 되었다.  

페인은 세계 최초의 국제혁명가이기도 했다. 게다가 그는 수천 년, 아니 수만 년 지속된 왕과 귀족의 정체를 끝장내고 민주주의를 시작한 혁명가였다. 크리스토프 히친스는 페인을 현대 ‘국제 혁명가’인 체 게바라와 비교했지만, 20세기 쿠바 혁명의 아버지인 체를 18세기의 사실상 ‘세계 전체’였던 미국, 프랑스, 영국 혁명의 아버지인 페인과 비교할 수는 없다. 체는 페인의 후배이고, 그것도 지극히 국지적인 혁명을 성공시킨 후배에 불과했다. 체는 페인을 잇는 19~20세기 수많은 혁명가 중의 한 사람에 불과했고, 그가 끝장낸 것은 겨우 작은 섬의 독재였으며, 새로 시작한 것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독재에 불과했다. 그런 점에서 체가 현대의 영웅처럼 여겨지는 것이, 적어도 페인에 대한 대단한 무관심에 비하면 문제가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차이는 체는 총으로 혁명을 했지만 페인은 펜으로 혁명을 했다는 점이다. 이는 의과대학을 졸업한 최고 엘리트 출신이었던 체에 비해 페인은 중학교 중퇴 정도의 학력밖에 갖지 못한 노동자 출신이었다는 점에서 더욱 이상하게 느껴진다. 영국사상가라고 하면 기껏 홉스나 로크, 흄이나 벤담, 스미스나 밀 정도로 대단히 부드러운 부르주아들이 대부분이었다. 문명화 사회를 말한 흄, 보이지 않는 신의 손에 의한 조화를 말한 스미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말한 벤담 등은 모두 신흥부르주아의 사상을 대변한 자들로, 빈곤과 실업, 노예와 여성, 식민지 등의 사회적 모순에 대해서는 모두 저절로 잘 해결될 터이니 아무런 걱정을 하지 않아도 좋다고 말했다. 

그들 누구보다도 후세 사람으로서 페인과 같은 시대를 살았던 벤담이 보통선거권을 제안한 것은 대단한 진보였다. 하지만 그런 그조차 모든 인간에게 1인 1표라는 것을 이유로 노동자가 단결해 경영자에게 대항하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반민주적인 것이라고 반대했 다. 경제학의 아버지라는 스미스조차 자본과 노동의 협동에 의한 생산력 발전을 주장했지만, 자본주의가 낳을 모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런 사상가들이 받들어진 19~20세기에 페인은 당연히 무시되었다.       

미국이 독립하기 전 영국 왕은 상원과 하원에 권력의 일부를 나눠주어 당시에는 범세계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군주로 평가되었다. 그래서 독립전쟁 직전만 해도 대부분의 아메리카 사람들은 영국왕을 부정하지도, 영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하지도 않았다. 여기에 페인이 『상식』이라는 50쪽 정도의 팸플릿 하나로 그런 생각을 근본적으로 뒤집었다. 즉 『상식』은 영국왕이 아메리카를 지배함은 ‘상식’이 아니고, 미국의 독립과 민주주의의 수립이야말로 ‘상식’이라고 최초로 주장하여 그것을 달성하게 한 책이다. 그전에는 독립해야 한다거나 민주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 아니었다. 미국 독립의 아버지라는 워싱턴도 1770년대 초까지 독립에 반대했고 프랭클린도 마찬가지였으며, 심지어 페인 자신도 그러했다고 그 자신『상식』에서 말한다. 1775년 4월 19일, 영국과 싸운 최초의 렉싱턴과 콩코드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까지 그들은 자신들이 아메리카에 대한 영국의 부정을 시정하기 위해 싸우는 것이지 독립을 위한 것이 아니며, 도리어 독립은 재난과 죄악으로 가득 찬 것이고, 독립이란 자신들에 대한 중상모략이라고까지 비난했다. 

『상식』 초판본(1776)

그래서 페인이 『상식』에서 영국 정체 자체를 비판하자 독립전쟁에 참가한 많은 아메리카인들이 반발했음은 당시로서는 당연한 일이기도 했다. 왜냐하면 대부분 영국 정체가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식』이 나온 지 6개월 만에 성립된 1776년의 『독립선언서』가 페인의 주장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이었다. 그 책은 1년 만에 15만 부가 팔렸다. 

혁명가의 삶

페인은 무엇보다도 자유를 소중히 여겼다. “독립은 나의 행복이다.”라고 그는 썼다. 38세의 페인이 아메리카에 건너간 1775년부터 그가 죽은 지 6년 뒤인 1815년까지, 즉 미국혁명이 시작되어 프랑스 혁명이 끝나기까지 페인의 후반생 34년은 혁명가의 그것이었다. 흔히 혁명가라고 해도 실패한 혁명가가 많고, 성공했다고 해도 한 나라의 혁명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헌데 페인은 근대역사의 가장 중요한 혁명인 미국 독립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을 성공시킨 혁명가였다. 그리고 영국과 아일랜드에서도 그런 혁명이 일어나도록 촉구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19세기를 장식한 노동혁명의 아버지였고, 20세기 복지국가의 할아버지였다. 그 점에서 우리 모두는 페인의 아들이다. 

그의 혁명가로서의 생애는 근대혁명의 변화를 그대로 보여주는 점에서도 흥미롭다. 18세기 중반에 혁명이란 정부의 변화, 특히 정체의 기본적 원리가 변화하는 것을 뜻했다. 그러나 19세기 초에 오면 그것은 급속하고 근본적이며 진보적인 사회정치적 변혁을 뜻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즉 본래의 고유한 정체나 부패하지 않은 국가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계몽의 확산과 인간의 불가침 인권에 대한 인식을 근거로 하여 인류가 야만에서 문명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확신으로 바뀌었다. 

이러한 변화는 우리의 1960년대 혁명에서 1980년대의 혁명으로 바뀌는 과정에서도 나타났다. 물론 이러한 단순한 비교는 대단히 위험하다. 그러나 어쩌면 정치혁명에서 사회혁명으로 나아가는 과정은 유사하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른다. 물론 1980년대 혁명은 정치혁명과 사회혁명이 동시에 나타난 것이기도 하므로 더욱 분명한 사회적인 혁명은 아직도 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혁명가로서의 페인은 그 짧은 생애에서 그러한 변화까지 보여주는 점에서 흥미롭다. 이는 그의 출신이 당대의 혁명가 대부분과 달리 빈민의 아들이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미국에 건너가기 전 그의 37년 전반생은 빈곤과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다. 그는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은 코르셋 제조공, 간접세 세무서 관리, 담배업자, 교사, 그리고 두 번의 남편으로서도 실패했다. 그가 미국으로 건너가면서 열병으로 거의 죽기 직전 되살아난 것은 그야말로 제2의 삶을 뜻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출발이었으나 그는 결국 미국혁명을 성공시켰다. 

루이스에 있는 토마스 페인 생가 ⓒKto288/wikipedia|CC BY-SA 2.5
루이스에 있는 토마스 페인 생가 ⓒKto288/wikipedia|CC BY-SA 2.5

그런 그가 미국에 이주한 지 1년여 만에 『상식』을 집필한 것은 참으로 기이하게 보인다. 8년 정도의 초중등학교를 다닌 수준인 그의 교육에 비춰보면 그렇게도 간명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정치사상을 전개한 점이 경이로울 지경이다. 그 책을 읽어보면 그가 당대 영국과 미국 그리고 유럽의 모든 정치적 논의를 꿰뚫었고, 누구보다도 날카롭게 그 시대의 문제를 진단했음을 알 수 있기에 더욱더 그러하다. 우리는 그의 독서에 대해 아는 바 없으나,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열심히 책을 사서 읽었음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1772년에 세무 관료의 부패를 척결하는 유일한 방법으로서 그들의 보수를 올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글을 발표하여 세무서에서 해고당한 것은 그가 일찍부터 정의감에 불타 글을 썼음을 보여준다. 또한 『상식』을 쓰기 전에 이미 『펜실베이니아 매거진』에 쓴 「아메리카의 아프리카 노예제」(1775)는 아프리카 노예무역에 대한 통렬한 비판으로서 흑인의 완전한 인권을 주장하고 그 말미에 ‘정의와 인간애’란 서명을 쓴 점도 우리의 주목을 끈다. 이어 그는 5년 뒤 노예해방을 주장했다. 또 여성 해방을 옹호하고 동물 학대를 비난하는 직접적이고 강력한 스타일로 기사를 썼다.  

<상식>의 아나키즘

페인은 영국의 멍에를 벗기 위한 아메리카인들의 전쟁을 옹호했고 미국이 자유의 땅이 되어 유럽의 폭군 아래 사는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것을 희망했다. 그의 국제주의와 자유에 대한 사랑은 <상식>에서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오 인류를 사랑하는 그대들이여, 전제만이 아니라 폭군도 반대하는 그대들이여, 일어서라!
낡은 세계의 모든 곳이 압박에 짓밟히고 있다. 자유는 온 지구에서 쫓기고 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유를 추방해왔다. 유럽은 자유를 이방인처럼 생각하고, 영국은 추방명령을 내렸다. 오! 망명자들을 받아들여라! 그리고 때를 놓치지 말고 인류를 위한 피난처를 마련하라.(졸역, <상식>, 69-70쪽)

미국 혁명의 경험은 페인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식민정부가 해체된 후 새로운 헌법이 수립되기도 전의 미국 사회의 완전함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래서 <상식>의 서론에서, 후대의 아나키스트들처럼 사회와 정부를 구별했다. 그는 그것들이 서로 다르고 기원이 다르다고 느껴 다음과 같이 썼다. 

사회는 우리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국가는 우리의 사악함 때문에 만들어진다. 사회는 우리의 애정을 결합해 ‘적극적으로’ 우리의 행복을 북돋우지만, 국가는 우리의 악을 억제해 ‘소극적으로’ 우리의 행복을 북돋운다. 사회는 상호교류를 조성하지만, 국가는 상호차별을 야기한다. 사회는 보호자지만, 국가는 처벌자다. 사회는 그 모든 상태에서 축복이다. 그러나 국가는 최선의 상태에서도 필요악에 불과하고, 최악의 상태에서는 견딜 수 없는 악이 된다. ‘국가가 없는’ 상황일 때 겪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던 불행을 ‘국가에 의해’ 겪거나 당하게 되면, 자신에게 불행을 끼칠 것을 스스로 만들었다는 생각으로 인해 우리의 비참함이 더욱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국가는 옷처럼 순결의 상실을 나타내는 표식이고, 왕의 궁전은 낙원이 무너진 폐허 위에 세워진 것이다. 만약 양심이 분명하고 한결같이 작용하고 무조건 따를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인간은 다른 입법자를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상식>, 21-22쪽) 

그러나 미국 식민지 주민들이 정부 없이 평화롭게 자신의 일을 조직했음에도 불구하고 페인은 그들이 권리를 보장할 헌법을 기반으로 최소한의 정부를 세우기 위해 사회적 계약을 체결해야 한다고 믿었다. 생명, 자유, 행복 추구의 권리를 보장할 헌법에 확실히 기초한 최소한의 정부를 세우기 위해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미국 독립 전쟁의 성공적인 결과 후, 페인은 철교 건설을 희망하면서 영국으로 돌아왔으나, 1789년 프랑스혁명의 발발은 그의 혁명적 열정을 새롭게 만들었고, 버크의 배신으로 인해 그는 <인권>을 쓰게 되었다. 버크는 <프랑스 혁명에 대한 성찰>에서 정부와 사회가 조상의 지혜에 기초하여 복잡하고 허약하며 유기적인 존재이며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페인은 '살아있는 사람들의 권리와 자유에 대한 죽은 자의 권위'에 대한 버크의 주장을 거부하면서 페인이 '맹렬한 무리'라고 비난한 혁명세력을 대변했다. 그는 특별히 독창적인 사상가가 아니라 로크에서 비롯된 18세기 정치이론의 진보적인 측면을 계승했지만, 그것을 보다 자유롭고 민주적인 방향으로 발전시켰다. 또한 교육을 받은 노동자 농민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직접적이고 강력하며 간단한 스타일로 글을 써서 스타일에서도 지배적인 문화를 위협했다.

<인권>의 아나키즘

<상식>에서 페인은 로크를 따라 국가를 ‘필요악’으로 보았으나, <인권>에서는 아나키즘과 비슷하게 필요한 것은 국가의 개혁이 아니라 국가의 폐지라고 주장한다. 그의 국가 개념은 “사회의 원리에 입각하여 행동하는 인민의 결합에 불과”(242쪽)하며, “전 공동체의 소유물”(212쪽)이며, “국민의 복지를 위해서 수립되어야”(226쪽) 하기 때문이다. 또한 국가의 기능은 법률을 제정하고 시행하는 것으로 국한된다(226쪽). 페인은 “문명이 완전하면 완전할수록 국가의 필요성은 더욱 줄어든다. 사람들이 자신의 일을 자율적으로 처리하게 되고, 자치하게 되기 때문”(239쪽)이라고 본다.

페인은 <인권> 2부에서 아나키즘의 직전까지 나아가 <상식>의 처음에서 했던 사회와 정부의 구별로 돌아와 다음과 같이 주장한다.  

인류를 지배하는 질서의 대부분은 국가가 만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회의 원리와 인간의 자연적 본질에서 비롯되었다. 그것은 국가 이전에 존재했고, 국가라는 형식이 없어진다 해도 존재하리라. 인간이 인간에 대해, 그리고 문명사회의 모든 부분이 서로에 대해 가지는 상호의존과 상호이해 관계는 그들을 하나로 통합시키는 거대한 연쇄를 만들어낸다.… 공동의 이해관계가 그들의 관계를 규정하고, 그들의 법을 형성한다. 이렇게 일반관습으로부터 형성되는 법률은 국가가 제정하는 법률보다 더 큰 영향력을 가진다. 요컨대 국가가 한 것으로 간주되는 모든 일은. 사실은 사회가 스스로 수행하는 것이다.(졸역, <인권>, 236쪽)  

페인은 루소처럼 인간은 자연적으로 선하지만 정부에 의해 타락했다고 주장한다. “사람은 정부에 의해 부패하지 않았으며 자연스럽게 사람의 친구다.” 그러므로 인간 본성은 그 자체로 악이 아니다. 정부가 유용하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정부 없이 사회의 공통된 동의에 의해 수행되었다. 그러나 페인은 사회적 화합의 신화적인 황금시대로 되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고, 보다 문명화된 사회를 지향한다. 그는 총체적인 원칙으로서 “완벽한 문명이 더 많을수록 정부에 대한 기회는 적다. 왜냐하면 더 많은 것이 자신의 업무를 규제하고 스스로 지배하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사회의 모든 위대한 법은 자연법이기 때문에, 문명화된 삶은 법을 거의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본다. 

존 박스터의 공정한 영국사에 실린 인권의 저자 토마스 페인 소개 그림(1796) ⓒDas48/wikipedia|CC BY-SA 4.0
존 박스터의 공정한 영국사에 실린 인권의 저자 토마스 페인 소개 그림(1796) ⓒDas48/wikipedia|CC BY-SA 4.0

그러나 그의 동시대인인 윌리엄 고드윈과 달리, 페인은 정부가 항상 불필요한 악이라는 아나키즘 결론에 이르는 대담한 추리를 하지는 않았다. 자유와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가 필요로 하는 개인의 힘보다 인간의 자연적 욕구가 더 크다고 생각한 그는 인간의 자연권을 보호하기 위한 몇 가지 일반법을 갖춘 최소한의 정부('국가 차원의 협회' 이상이 아닌)를 제안한다. 그 목적은 제한적이고 단순하며, “모두의 이익을 개인적으로는 물론 집단적으로도” 보장하는 것이다. 페인은 다수결에 근거하여 공화주의와 대의정부를 확실히 선호했으며, 헌법에 확고히 정착시키길 원했다. 그는 심지어 미국 헌법을 '국가의 정치적 성경'으로 칭찬했다. 

그는 영국인들에게 미국과 프랑스를 따라 새로운 사회 계약을 맺고 헌법에 근거한 제한된 정부를 설립하도록 촉구했다. 심지어 <인권>의 끝에서 진보적인 상속세를 통해 정부가 젊은이를 교육하도록 돕고 늙은이를 부양하는 정부의 분배적 역할을 부여하기도 했다. 그는 1796년에 쓴 <토지 정의>에서 토지의 공유라는 관념에 기초해 모든 사람에게 배당한다는 아이디어로부터 오늘날 모색되고 있는 기본소득을 최초로 주장하기도 했다.  

페인은 영국 사회주의의 아버지라고 불렸지만, 실제로는 기업을 충실하게 옹호하고, 보편적이고 자유로운 상업이 전쟁을 없앤다고 했다. 그는 결코 경제적 평등을 옹호하지 않았으며 사유 재산이 항상 불평등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인해 그는 시민 주주들과 함께 제한된 회사의 관점에서 대표 정부를 변호하도록 이끌었다. 페인의 최종 비전은 모든 시민이 자신의 재능을 개발할 수 있는 동등한 기회를 가진 독립 부동산 소유자의 대의 및 공화주의 민주주의였다.

페인은 아나키즘의 문턱까지 자유주의 이론을 발전시켰지만 국가나 정부를 완전히 부정하는 아나키즘을 주장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그는 전제정과 귀족정으로부터 부르주아 민주주의의 나아가는 과정의 위대한 대변자로 살았다. 그러나 미국과 프랑스 혁명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사람들이 스스로 통치할 수 있는 능력을 인식하여 아나키즘과 사회주의가 나오는 아이디어와 가치의 발전에 기여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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